WP “중대한 실수들로 구조 지연”…이태원 참사 시간대별 재구성
350개 비디오와 사진 분석, 목격자들 인터뷰…국내언론 무색
“사고 시작은 오후 10시8분, 인파속에서 뭔가 휙 지나가자 비명”
“효과적 빼내기 시작까지 26분 지연…사상자 수 증가 초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길에서 압사 사고가 시작되기 거의 4시간 전부터 핼러윈 축제 참가자들이 인파를 다른 곳으로 돌려줄 것을 경찰에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 보도했다.
WP는 이날 ‘중대한 실수들 탓에 서울 골목에서 구조가 비극적으로 지연됐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입수한 350개 이상의 비디오와 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으며, ‘여러가지 치명적 요인들’이 비극을 낳고 사망자 수를 늘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긴급신고 전화목록 검토와 수십 명의 목격자 인터뷰를 통해 참사 현장에 인파가 몰려 압사 위험에 처한 시점은 10월 29일 오후 6시 28분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몇 분후 인파가 골목에 들어차면서 부상자가 생겼으며, 갈수록 상황은 악화될 것 같다는 최초의 신고가 적어도 13차례 있었다. WP는 사고 시작 시점을 오후 10시 8분으로 판단했고, 이는 최소 신고로부터 대략 3시간 40분 지난 시점이었다.
WP에 따르면, 압사 사고 시점부터 긴급구조 요원들이 인파를 효과적으로 빼내기 시작할 때까지 최소 26분이 걸려 구조 지연이 치명적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희생자는 구조팀이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갇혀 있었다.
비디오를 보면, 압사 사고가 시작된 시점에 몇몇 경찰관들과 시민들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골목길 끝에서 인파를 되돌리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또한, 오후 10시 8분과 22분 사이에 최소 16번의 긴급신고가 있었고, 다섯 명의 경찰관들이 의식을 잃은 희생자들을 빼내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도 있었다.
긴급구조 요원들이 골목길 양쪽 끝을 막은 때는 오후 10시 39분이 되어서였다. 관련 자료를 분석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30분 정도 지연되는 동안 골목길로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구조 작업을 방해하고 사망자 수를 늘린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경찰 당국의 기록을 보면, 경찰이 본격적인 대응을 하기까지는 여기에서 11분이 더 흘렀다.
비디오를 보면, 오후 10시께 핼러윈 축제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오후 10시 8분께 골목길에 있는 108힙합라운지 옆에 꽉 들어찬 인파 속에서 뭔가가 휙 지나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장면이 잡혔다.
대규모 모임 안전기획 전문업체인 세이프 이벤츠의 마크 브린 국장은 그로부터 10분 동안 군중의 밀도가 높아져 임계점을 넘으면 유체(流體)로 변하는 현상의 증거를 보았다고 했다.
생존자인 영어교사 자라 릴리와 해양공학자 윤진형은 당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서로에게 밀렸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사람들이 앞으로 넘어지고 다음은 뒤로 넘어졌다”고 전했다.
압사 사고가 골목길 전체로 확대된 것은 오후 10시 17분께이고, 그 이후부터 골목길 양쪽 끝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라는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디오에서는 또한, 힙합클럽 출구 근처에서 사람들이 꽉 끼어 고통스러워 하고, 거칠게 숨을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비디오 판독 결과, 구조 요원들이 주변부에서부터 사람들을 빼내기 시작한 시점은 압사 사고가 시작된 지 26분~31분이 지난 뒤였다. 오후 10시 22분께 가장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밑에 깔리고 쌓이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다섯 명의 경찰관은 그 사람들에게 접근해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러나 비디오를 보면, 오후 10시 34분까지는 압사 사고가 난 북쪽 끝에는 구조팀이 도착하지 않았고, 오후 10시 39분이 되어서야 5명의 소방관과 4명의 경찰관이 나타났다. WP는 “이어지는 비디오는 구조작업이 얼마나 느리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오후 10시 58분에는 워키토키를 통해 “모두 뒤편으로 가라. 심박정지가 된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난다”고 말하고, 5분 정도 후에는 긴급구조원들이 부상자를 인근 세계음식거리로 빼내는 장면도 있었다.
압사 사고가 시작된 지 1시간이 넘는 오후 11시 22분이 되어서야 구조팀은 모든 부상자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골목에서 빼내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WP는 “전문가들은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면서 예방하지 못한 데는 부분적으로 한국 법 집행기관의 톱다운(상명하복) 문화가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