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년] 작은 통 속에 거인을 가두는 교육정책
윤석열 정부 1년을 말한다: 교육분야
시장주의 테크노크라트가 콘트롤타워 맡아
교육을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보아 경제에 종속
지방대 살리기 명분 내세운 교육자유특구 발상
선거용 또는 광역지자체에 실패책임 전가 우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시민언론 민들레는 창간사 첫 마디에서 윤석열 정권 6개월을 '거대한 퇴행의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 상황을 집중 분석하는 '윤석열 정부 1년을 말한다' 기획 기사를 8일부터 닷새간 연재합니다. 12일에는 마지막으로 전문가 좌담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초기 교육정책의 혼란은 권위적인 테크노크라트 집단과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시장주의의 테크노크라트 집단 간의 관계 문제로 보아야 그 혼란의 본질이 보인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이래 강력한 미국 일본 모델 따라가기 산업화를 추진했는데 이 산업화를 초기에 주도한 것은 군부 등 권위적인 테크노크라트 집단이었다. 후기로 가면서는 성공적 산업화로 시장이 커지면서 시장주의의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테크노크라트 집단이 성장했고 김영삼의 3당 합당을 계기로 보수진영의 정치적 주도권을 넘겨 받았다.
결국 교육 콘트롤 타워 맡게 된 시장주의 테크노크라트
윤석열 정부 초기 교육정책의 콘트롤 타워는 ①대선과 인수위 시기에는 시장주의 성향 전문가 집단 ②박순애 장관 전후 시기에는 권위적 성향의 윤석열 대통령 자신 ③현재는 시장주의 성향이고 집권 경험이 있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으로 바뀌어 왔다. 권위적 테크노크라트 집단의 교육정책과 관련된 특징은 교육을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보아 경제정책에 종속시키며 교육정책에 대한 정치공학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의 상대적 독자성과 중립성, 전문성을 주장하며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시장주의 전문가 집단과는 결이 좀 다르다. 따라서 교육정책 콘트롤 타워가 ①에서 ②로 바뀌는 과정은 권위적 테크노크라트 집단이 정권 창출 과정에서 연합했던 합리적 시장주의 테크노크라트 집단을 배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권위적 테크노크라트 집단의 일방적 인사행태와 정책추진을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우리 국민이 어리석지는 않다. 결국 박순애 장관은 갑작스러운 유보(유치원+어린이집)통합을 추진하다가 낙마하여 윤석열 정부는 출발부터 곤경에 처한다.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선택적으로 시장주의 테크노크라트와 연합하는데 교육 부문에선 그 대상이 이주호 장관이다. 이주호 교육부가 대선 교육공약과 국정과제를 교육부 정책과제로 수용한 비율이 현재까지 각각 17%, 22.6%로 저조한 것은 이러한 우여곡절의 결과이다. 이주호 장관은 집권 경험도 있고 경제관료 출신의 교육전문가인 만큼 시장주의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정치공학적 개입과 중산층의 교육을 통한 계급·계층적 구별짓기 요구를 수용하는 선에서 교육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방 살리기’ 내세운 교육정책들, 정치공학적 발상 의심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에서 좀 특이하게 느껴지는 점은 주요 정책들의 명분으로 ‘지방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유초중등 교육정책의 실질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육자유특구’ 사업은 그 추진 근거를 노무현 정부 이래 추진되어온 정부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사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원인이 좋은 학교가 없기 때문이었다는 데서 찾고 있다. 고등교육 핵심정책인 ‘RISE(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와 ‘글로컬대학 30’ 역시 목적을 ‘지역과 대학 공동위기 극복, 지역발전을 위한 대학의 역할 강화’에 두고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공동화는 서구 모델 따라가기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이다. 학교교육이 총력을 기울여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나 서구의 어느 나라고 네가 사는 곳은 변방의 변방의 변방이다. 그러니 학교교육에서 성공해서 도시로, 대도시로, 서울로, 가능하다면 미국이나 서구의 어느 나라로 떠나라. 네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이곳에 남아있으면 너는 패배자고 낙오자”이다. 이러한 인식을 제도화한 중앙집권의 행정시스템, 경제·사회시스템은 그간 모든 에너지를 중앙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 추격형 산업화 경제·사회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몇 가지 보완적 정책으로 수도권 집중과 지방 공동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이것이 그간 막대한 예산을 지역균형발전 사업에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공동화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서구 모델 따라가기 산업화 패러다임 자체를 뒤집는 정책적 발상과 한국 사회 전반을 재구조화하겠다는 수준의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제기되었던 메가시티 구상은 그러한 수준의 정책 발상 예라 할 수 있다. 메가시티 구상은 예컨대 부산, 울산, 경남을 초 광역 단위로 묶어 수도권에 버금가는 하나의 메가시티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전국을 수도권을 포함하여 네다섯 개의 메가시티로 발전시켜 나가면 다원적인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기회발전특구와 그 일환으로 제기된 교육자유특구는 일정 지역에 한정하여 대폭 규제를 푸는 특례를 허용함으로써 지역 발전의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이미 전 정부들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시행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정책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것을 만들어낸 서구 추격형의 중앙집권적 인식과 행정시스템, 경제·사회시스템이 엄존하는 상태에서 보완적 정책만으로 수도권 집중과 지방 공동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구 정책은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국회의원 선거나 자치체장 선거에 써먹기는 좋은 정책이다. 정치공학적 발상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이다.
중산층 계급·계층 구별짓기 욕망 위해 지방 죽이는 정책
윤석열 정부의 교육자유특구 정책은 주요 내용으로 ①교대와 사대가 중심이 되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국립아카데미고 제도 도입 ②학교-교육청-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협약범위 내에서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협약형 공립고 ③혁신도시 교육력 제고를 통한 지역 정부 여건 개선을 위해 협약형 공립고 운영 ④기업의 지역 내 자사고 설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서열화 체제를 본격화한 ‘고교 다양화 300정책’(자사고 100개+기숙형 공립고 150개+마이스터고 50개)과 유사하다. 특히 국립아카데미고나 혁신도시의 협약형 공립고 등의 학생 모집 단위가 광역 단위나 전국 단위로 확대되면 블랙홀이 되어 우리나라 초중등교육 전반을 학력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학력 경쟁은 고교 교육을 다양화하는 게 아니라 획일화한다. 획일적 기준으로 차별화하여 고교 서열체계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러한 정책은 중산층의 학교교육을 통한 계급·계층적 구별짓기 욕망에 부응하는 것이지 지역 살리기에 부응하는 정책은 아니다.
교육자유특구정책이 진정 지방 살리기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일단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있는 군단위로 한정하여 시행하고 비슷한 위기를 겪는 지역으로 확대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은 학교-교육지원청-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 전체가 합심하여 지역의 학교교육을 살리는 재구조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방대 사석작전이 되는 게 아닐까?
윤석열 정부의 RISE(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는 “지방대학에 관한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로 대폭 이관하여 지방정부와 지역대학의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지역과 대학간 협력을 통한 인재양성, 창업 , 취업, 정주에 이르는 선순환 발전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정책이다. ‘글로컬대학 30’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RISE를 선도할 대학 30개를 선정하여 지원하는 정책이다. RISE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RIS(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차이점은 RIS는 사업대상 범위가 메가시티 구상과 연관하여 초 광역단위인데 RISE는 시도 광역자치체 단위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본질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RISE 사업은 캘리포니아 모델을 참고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는 인구가 4500만이고 국가 수준의 독자성을 갖는 자치주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시도는 중앙집권의 행정체계가 편의적으로 구획한 행정단위여서 산업권 생활권과도 맞지 않고, 대학이 그 안에서 성장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다.
아이를 작은 통에 가두어 키워 난장이를 만드는 잔혹동화가 있는데 RISE는 지방대에게 이 잔혹동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을 그렇게 작은 통에 가두면 난장이가 되는 게 아니라 죽는다. RISE 정책이 교육부가 지방대 살리기 실패 책임을 광역자치체에 떠넘기며 지방대를 선거에 한 번쯤 써먹고 버리는 사석으로 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국교육은 언제까지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나 서구의 어느 나라고, 우리가 사는 곳은 변방의 변방이고, 그래서 서구 모델을 빨리 빨리 쫓아가 변방을 탈출해야 한다”는 서구 추격형 산업화 시대의 인식과 시스템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이것은 조선조 후기 멸망한 지 백년도 넘은 명나라 모델을 고수하며 나라를 몰락시킨 사대부들의 소중화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이미 다원화된 세계에서 과거의 일원주의에 머물러 그 우상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윤석열 정부와 교육부는 정말 국민이라는 거인을 작은 통 속에 가둘 수 있다고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