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돌격대장’ 노릇 하나
프놈펜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천명
시진핑, 경제의 정치화, 범안보화 반대
관급 ‘전속 자료’만 배포한 정부
비판뿐만 아니라 언론 취재도 평가도 차단
윤석열 대통령이 11일부터 16일까지 4박 6일 간의 동남아 국가들을 순방했다. 그 결과를 보면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미일동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억제)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정부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확고한 참여 의지 천명, 그리고 또 하나는 한일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 배상문제 조기해결 무산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부활이다.
16일의 중국 <인민일보> ‘시진핑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회견’에는 15일의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중한 양국은 서로 이사갈 수 없는 이웃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파트너”임을 강조하면서 수교 30년을 맞은 두 나라의 안정적 발전을 바란다는 시 주석의 얘기가 실렸고 그것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중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가속화하고 하이테크 제조, 빅데이터, 녹색 경제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며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함께 수호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원활한 글로벌 산업망·공급망을 보장하며,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이 문장 맨 뒤의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함께 수호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원활한 글로벌 산업망·공급망을 보장”과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와 그 다음 문장에 나오는 “진정한 다자주의”에 시 주석, 또는 중국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압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것에 반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을까.
이는 한중 정상회담 이틀 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뒤에 발표한 3국 공동성명에서 강조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의 대중국 견제장치들을 의식하고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PEF가 바로 경제의 ‘정치화와 범안보화’다.
성명은 정상들이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경제안보와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규칙에 기반한 경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우리 정부도 △3국 간 경제안보대화체 신설,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한 3국 간 연대, △한국의 인태전략에 대한 미일 양국 정상의 환영 및 향후 이행 과정에서의 협력 확보, △공급망 교란, 기후변화, 디지털 경제 도래 등 복합적인 도전과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3국 간 협력 강화 등에서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독자적인 ‘인태전략’에 관해 설명하였으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인태전략 발표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고 향후 인태전략 이행 과정에서 3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이 문맥으로 보면, 우리 정부는 미일의 중국 견제전략에 제동을 걸거나 균형을 취하려 했거나, 아니면 수동적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거기에 가담했고, 이를 공동성명 형태로 공표하는데에도 앞장선 것으로 보인다.
성명은 대만문제나 대북 확장억제 정책에 대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그런 자세를 앞으로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성명의 앞 부분은 북한의 최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대북 확장억제 정책 강화와 핵우산까지 포함한 미국의 대일·대한 방위정책 강화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의 내용들은 새로운 디테일이 거의 없는 통상적인 레토릭으로 가득차 있다. 북에 대해 한층 더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고 있지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부활(정상가동)을 염두에 둔 것 정도를 빼고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그런 면에서 북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위협은 한미일 3국을 한 자리에 모으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만드는 계기 내지 명분 또는 윤활유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느낌을 준다. 초점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세는 결국 미일동맹의 중국 견제에 한국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나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미일의 중국 견제에 ‘행동대장’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IPEF에서 중국은 배제돼 있다. 아니 IPEF는 미국과 일본이 인도와 호주를 끌어들이고 영국까지 끌어들여 만든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과 함께 중국을 배제해서 약화시키기 위해 만든 경제안보 장치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 주석이 반대한다고 천명한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공표한 한중 정상회담 관련 자료에는 중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이 그 간의 협력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향후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으며, FTA 협의도 더욱 가속시키기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그런 언급에 대한 우리 정부의 논평도 생각도 전혀 읽을 수가 없다.
정부 발표자료에 중국정부나 중국 관영매체의 관련 보도나 그것을 분석하는 내용을 넣어야 할 이유는 물론 없다. 중국도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회담 당사국들은 각기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만을 담기 마련이다. 매체나 전문가들은 이런 자료들을 토대로 나름의 취재를 보태서 종합하고 분석해서 평가·비판한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정상회담 등 정부 주요행사들 소식을 접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통로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정부는 국익에 반한다는 자의적 판단을 근거로 MBC 취재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한일, 한미, 한미일, 한중 정상회담 때 회담을 전후한 통상적인 브리핑도, 다른 나라 정상들은 으레 하는 회담 뒤의 기자회견이나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순방기간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 등의 언론 취재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현지에 동행한 순방 취재진은 대통령실 직원들이 제공한 ‘전속 자료’로만 회담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미디어 오늘> 11월 16일) MBC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에 항의하며 전용기를 타지 않고 민항기로 현지에 취재하러 간 <한겨레> 기자의 취재 전말기(11월 17일)를 보면, 전용기 탑승을 막았을 뿐 취재 자체를 막진 않았다는 대통령실 해명도 결국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실 직원들이 제공한 ‘전속 자료’로만 회담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이는 사실상 언론매체들의 취재 자체를 막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럴 양이면 취재기자들이 많은 비용 들이면서 현지에 따라갈 이유가 없다.
한미일 프놈펜 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 것은, 우리 정부가 균형외교나 전략적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의도적 ‘모호’나 ‘애매’조차 버리고 미국·일본에 확실히 ‘올인’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세로 한중 정상회담을 했을 때 정부는 어떤 전략이나 자세를 가지고 중국 수뇌부를 대했는지, 중국의 대응은 어떠하였는지, 우리 정부 관리가 내 주는 ‘전속 자료’만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미국·일본과 확실하게 손을 잡으면 중국이 화를 낼지 굽힐지, 중국이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미국·일본 편에 확실히 서면 모든 게 술술 풀리는 더 높은 묘책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무대책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돌격대장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으니 제대로 된 이해도 비평도 비판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일까. 하지만 제대로 모르게 하면 비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대응도,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