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통과 땐 건강권 침해” 복지부장관의 궤변

27일 간호법 상정 앞두고 반대 뜻 밝혀

의료서비스 부족한데도 의사 편들어 반대

기재부 출신으로 보건행정에 대한 무지 드러내

민주당은 강행 의지… 의사들 파업 여부 등 주목

2023-04-25     민병선 에디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오후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간호법 관련 논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간호법에 대해 반대의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법 제정 취지가 보건의료 서비스의 확대인데, 국민 건강을 책임진 주무 부처 장관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조 장관은 “의료현장은 직역 간 유기적 협력이 중요한데,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간호법 제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통과되면) 협업을 어렵게 하고 의료현장의 혼란이 야기돼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 침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호법이 하려고 하는 의료 여건 변화에 따른 의료인의 역할 변화, 법률과 현장의 괴리 해소, 간호사의 근로 여건·처우 개선 등을 해결할 때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이 최선인지 회의적이다”라며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각 직역들의 독립법 제정 요구도 분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의 발언은 간호법 입법의 취지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21년 3월 25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등 여야 3당 의원 49명의 법 제안 이유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였다. 의원들은 제안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2026년에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인구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의료 및 간호 서비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간호ㆍ돌봄 인력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같은 1급감염병 대응 및 치료를 위한 숙련된 간호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

그러나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한 의료인과 의료기관 규제 중심의 법률로서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료시스템에서 변화되고 전문화된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숙련된 간호사 등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환경의 개선과 지역간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정책의 시행이 필요하나, 현행 의료법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미비한 상태임.’

실제로 의대 정원이 18년째 동결되고 자격증이 있지만 일하지 않는 간호사가 많아 보건의료 인력은 향후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30년 의사는 7600명, 간호사는 15만 8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장관이 밝힌 ‘의료현장의 혼란 야기’란 의사들의 반대로 인한 진료 거부 사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대는 설득력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법의 어디에도 간호사들의 독립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간호법은 1조에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의사들은 조항 가운데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문제 삼아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의사 지도 없이 단독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단초가 생긴다고 여긴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법 제정이 최선인지 회의적’이라는 장관의 말도 문제가 있다. 간호법은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간호 업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추진됐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간호의 업무 영역이 방문 건강관리와 가정간호 등으로 넓어졌는데, 이런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 업무를 낡은 의료법이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이 높은 업무강도와 인력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연합뉴스.

또한 간호법은 간호사협회가 1977년부터 입법을 추진한 것이며, 그동안의 여러 차례 입법 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충분히 논의된 사안이다. 법이 제정되면 25만 명에 이르는 간호사들의 처우와 업무를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2019년 기준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21만 3904명이며, 보건기관·장기요양기관·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인원도 3만 5000여 명이다. 간호법은 △간호사·전문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지자체 지원 △간호사의 권리와 책무 등을 담고 있다.

조 장관이 언급한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다른 직역들에 대한 법제정도 간호법 제정 뒤 순차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2021년 현재 자격증 소유자 기준으로 △간호사는 45만 7000여 명 △의사는 13만 2000여 명 △치과의사는 3만 3000여 명 △한의사는 2만 6000여 명으로 간호사가 제일 많다. 간호사 관련 입법을 우선 순위에 놓는 게 맞다.

조 장관의 이런 발언들은 간호법을 반대해 온 의사들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보건복지 분야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27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2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야당이 제정안을 강행 처리를 할 경우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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