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포탄 '한국 표지' 지우고 미국에 수출했다

국방부 지시 따라 로트번호 사포로 갈아 없애

포장박스도 출처 식별 못하게 페인트칠

'최종 사용자 미국' 단서 달고도 우크라행 우회로 터놔

'살상무기 제공 않는다' 정부방침 사실상 헛말

2023-04-19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육군 9사단 장병이 K-55A1 자주포 포탄 장전 훈련을 하고 있다. K-55A1 자주포는 155㎜ 포탄을 사용한다. 2023.4.19. 연합뉴스

지난해 정부가 미국에 155㎜ 포탄 10만 발을 수출하기로 결정한 뒤, 한국산 포탄이라는 것을 알 수 없도록 그라인더(원판형 숫돌을 회전해 공작물의 면을 깎는 기계)와 사포 등으로 포탄 표면의 고유번호를 지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해 수출 당시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란 전제하에 포탄 수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변함없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미국이 용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우회로를 열어놨던 것이다.

19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그라인더와 사포 등을 이용해 155㎜ 포탄 겉면의 로트(LOT) 번호 등을 지우도록 각 탄약 부대에 지시했다. 포탄을 담는 박스도 페인트 등으로 칠해서 한국산임을 식별할 수 없도록 했다.

155㎜ 포탄 표면에 도색된 로트 번호는 생산공장과 생산날짜 등을 알 수 있는 고유 번호로, 통상 'LOT PS-10XXX-XXX' 등의 방식으로 영문과 숫자를 조합해 표기된다. PS라고 적혀 있는 경우 한국 방산업체인 풍산 제품이라는 의미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해 10월 수출이 결정된 이후부터 탄약창에서 군무원을 동원해 그라인더나 사포로 'PS' 등 글자를 지우는 작업을 하고, 탄 박스도 칠했다"면서 "겨울에도 작업을 진행했으며 보안을 위해 병사는 작업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다른 소식통도 "지난해 수출한 155㎜ 포탄 10만 발은 그라인더와 사포로 갈고 박스를 칠해서 보냈다"고 전했다.

정부가 수출 당시 '최종 사용자(end-user)를 미국으로 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음에도 로트번호를 지운 것은 사실상 미국이 용처를 밝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우회로를 열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에서 사용 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고육지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과는 달리 애초 수출 당시부터 우회 지원으로 판단하고 '꼼수'를 쓴 셈이다.

방위사업관리규정(199조)은 대한민국에서 수출된 방산물자, 군용물자품목, 국방과학기술자료·용역과 이에 의해 제조되거나 생산된 당해 제품은 대한민국 정부의 사전 서면승인 없이는 제3국이나 제3자에게 수출·판매·양도 기타 처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우크라이나에서 불발탄이 생기거나 탄피가 발견되어도 한국산인지 알 수 없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상은 작년부터 이미 지원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소식통은 최근 군 탄약창 기지에서 경남 진해 부두까지 컨테이너 화물차 20여 대가 포탄을 운송했다는 <MBC>보도와 관련해선 "최소 세 군데에서 반출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관련 작업은 모두 종료됐다"고 전했다.

<시민언론 민들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포탄 반출은 <MBC>가 보도한 충북 영동 제8탄약창과 <뉴스공장>에서 운송기사가 증언한 전북 임실 제6탄약창 외에 천안 제3탄약창 등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인 물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영동 제8탄약창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물량이 한국에서 미국에 대여하기로 한 50만 발에 해당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소식통은 "미군 송장이 있다"며 "미군이 자신들의 포탄을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산 155㎜ 포탄 30만 발 이상이 해외로 반출된 정황과 관련, "우크라이나의 자유 수호를 위해 한미 정부는 그동안 지원 방안에 대해서 협의해 왔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우리 정부도 군수물자 지원을 포함해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적극 추진해 왔다"면서 "이런 지원이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어떤 문제를 주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