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의 역설…중-러 결속시켜 고립 자초하는 미국

발걸음 빨라진 중국-러시아 군사협력

“100년 동안 보지 못했던 큰 변화”

중국과 러시아에겐 달리 선택지 없어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 상황

2023-04-19     한승동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리샹푸 중국 국방부장(왼쪽)이 17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의 러시아군 총참모부 육군사관학교에서 방문록을 작성하고 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리 부장은 19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한다. 2023.04.18.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6일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리샹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중-러 양국이 군사분야에서 매우 신뢰성이 높다면서 “양군이 정기적인 정보교환, 군사기술 분야 협력, 극동과 유럽 등지의 육해공 합동군사연습 등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샹푸 국방부장은 시진핑 주석의 인사말을 전한 뒤 “양국 원수가 관계발전 방향을 잡아 전략협력 파트너십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세계와 지역의 안정에 공헌할 것”이라고 했다. 리 부장은 또 지금의 중-러 관계는 “냉전시대의 양국 군사 정치적 동맹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양국관계는 매우 안정돼 있으며 “이미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4월 16일)

리샹푸 부장의 말은 지난 3월 20일 러시아를 공식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문 끝머리에 했다는 “우리가 100년 동안 보지 못했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 주석은 “그 변화들을 함께 밀고 나가자”고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했고, 푸틴은 “좋다”며 화답했다. (<포린 어페어즈> 4월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6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리샹푸 중국 국방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서방 국가들과 맞서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을 강조하며 "양국이 전략적 상호 신뢰를 지속적으로 심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2023.04.17. AP 연합뉴스

상대를 단결시켜 고립 자초하는 미국

“함께 밀고 나가자”고 한 시진핑 주석의 말처럼 지금 중국과 러시아를 하나로 결속시켜 미국에 대항하게 하는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미국 자신이다.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에 미국은 원래 동맹관계로 결속했던 중국과 소련(러시아) 간의 다툼인 ‘중소 분쟁’을 이용해 중국과 손잡음으로써 소련을 고립시켰다. 결국 소련은 1991년에 무너졌고 미소 대립을 축으로 한 동서냉전도 붕괴했다.

그런데 지금 이른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이들 3자간의 관계가 위치만 바꾼 채 되풀이되는 듯한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미국과 중국이 다투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았다. 3자만의 관계로 좁혀 보면 이번에 고립되고 있는 건 미국이다. 그런데 그 미국의 고립 구도를 미국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다. 반세기 전에는 미국이 중소 사이를 떼어내 중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고립시켰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중러를 결합시키면서 자기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리샹푸 중국 국방부장 등 중국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러시아 방문이 보여주는 중러 간의 최근 급속한 접근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중-러 군사협력과 무기거래

항공우주 분야 엔지니어 출신으로 중국군 군사장비 분야 책임자로 있으면서 러시아제 전투기와 방공미사일을 구입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리샹푸 부장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 국방부장으로 임명됐다. 국방부장이 된 뒤 첫 외국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한 것은 시진핑 주석 체제에서 5년마다 교체된 국방부장이 모두 그랬던 전례에 비춰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지난달 하순의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뤄진 데다, 지난 2월의 왕이 당 중앙위 정치국원이자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의 모스크바 방문까지 더하면 세 번째의 연이은 고위관리 방문이니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미중 분쟁이 심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동맹국들을 한 편으로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또 한 편으로 한 신냉전적 대결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접근하면서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서방국가들은 최근의 중국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러시아 방문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무기 제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4일 중국을 방문한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은 “전쟁 당사국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장의 러시아군이 사용할 무기를 보낼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낮아 보이지만, 지난 3월의 시진핑 주석 모스크바 방문 때 두 나라 정상이 내린 결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양국간 군사협력 강화와 무기 거래에 관한 합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샹푸 부장이 모스크바를 향해 떠나기 사흘 전인 지난 12일 <포린 어페어즈> 온라인에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What’s Really Going on Between Russia and China)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알렉산더 가부에프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소장의 주장이다. 3월의 시진핑 모스크바 방문 때 바로 그 며칠 전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어린이 1만 6천여 명을 불법으로 이주시킨 사건의 책임자로 푸틴을 지목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굳이 시기를 바꾸지 않은 채 예정된 방문을 강행해 푸틴에 대한 정치적 응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서 결정된 시진핑-푸틴 간의 군사협력 방향과 무기 거래에 관한 합의라고 가부에프는 주장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13일(현지시각)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열린 제4차 아프간 주변국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2023.04.13. 로이터 연합뉴스

다른 선택지가 없다

가부에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푸틴의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경제 및 기술 의존도가 전례없이 높아졌다. 거기에다 미중 분쟁으로 중국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 러시아를 ‘주니어 파트너’로 삼아야 할 사정도 생겼다. 중국에겐 그만한 이득을 안겨줄 친구가 달리 없다. 장기간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대적해야 할 시진핑에겐 도움이 될만한 것이면 모두 끌어와야 한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러시아를 더 가까운 파트너로 끌어들일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미국이 중국의 대두를 막기 위해 점점 더 적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친강 외교부장이 시진핑의 러시아 방문 뒤 중국 관영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파트너십은 “패권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를 고창하는 일부 세력들의 “냉전 멘탈리티(의식)”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그렇게 나오면 중국으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이 푸틴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떨어진 시기를 피하지 않고 굳이 모스크바행을 강행한 것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중국은 최고 수준으로 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것, 서방이 뭐라든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중국은 나름 정교한 외교전략을 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이었던 2월 24일 발표한 정책지침은 국가의 주권 및 영토보전(현상변경 반대)이라는 서방 쪽 요구와 일방적인 제재에 반대한다는 러시아 요구를 두루 담았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내지 평화에 관한 구체적인 제안 같은 건 없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지금은 휴전 얘기에 관심이 없으며, 우선 휴전협상에 대비해 서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데 골몰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크렘린이 발표한 14개 항목은 두 정상과 양국 장관들이 주고 받은 대수롭지 않은 각서 목록처럼 보일 정도로 새로운 게 보이지 않았다.

군사협력 앞장선 러시아 고위관리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가부에프의 주장이다. 발표된 중러 정상회담에 관한 크렘린의 문서에는 일반적인 관행과는 달리 회담에 참석한 고위 관리들과 재계(비즈니스) 수장들 명단이 들어 있지 않다. 누가 참석했는지는 정상회담 동영상과 사진들, 그리고 푸틴의 외교정책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가 언론매체들에게 한 논평들을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시진핑과의 제1차 공식회의에 참석한 푸틴 팀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의 무기 및 우주개발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자들임이 드러난다. 거기에는 푸틴 대통령 직속의 군사산업위원회 부위원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그리고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연방 군사기술협력청장 드미트리 슈가에프, 러시아우주공사 사장이자 2020년까지 국방장관과 부총리로 10년간 러시아 무기산업을 이끈 유리 보리소프, 중러 정부간위원회 의장이자 과학 및 기술담당 각료인 드미트리 체르니셴코 부총리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핵심 목표, 즉 중국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위해 모아 놓은 듯하다.

3월의 시진핑 방러 때 양국은 공식적으로 눈에 띄는 새로운 거래를 한 게 없다. 그럼에도 그 정상회담을 새로운 방위(군사협력)협정을 맺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가부에프는 주장한다. 그런 협정은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두 정상끼리 서명했고, 나중에 그 사실이 드러났다. 무기 거래에 관한 문서들에도 두 정상은 서명했는데, 예컨대 2014년 9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뒤 크렘린은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을 중국에 팔았다. 중국은 러시아의 최첨단 방공무기를 구입한 첫 번째 외국이 됐다. 그 거래는 8개월 뒤에야 러시아의 주요 무기제조업체 로소보로넥스포르트의 CEO 아나톨리 이사이킨이 <코메르상트>와 한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는 대러 독자제재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책임 있는 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2023.03.22. 신화 연합뉴스

중국에 팔 수밖에 없는 러시아 첨단무기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거래를 숨긴 것은 미국 의회가 2017년에 미국의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통합제재법을 통과시킨 뒤부터다. 그때부터 그들은 군사계약 공개를 중단했다. 리샹푸 국방부장이 제재를 받은 것도 그 법 때문이다. 그럼에도 푸틴은 2019년 모스크바가 베이징에 미사일 조기경보시스템 개발을 돕기로 한 것과, 2021년 하이테크 무기를 공동개발하기로 한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군사 하드웨어에 의존해 왔다. EU와 미국이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함에 따라 러시아는 중국이 현대적 무기를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이 자체 군수산업을 발전시켜 대외 의존도를 낮췄다. 드론 등 일부 현대 군사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이 러시아를 능가한다. 하지만 자체 연구와 개발, 생산을 높이기 위해 베이징은 여전히 모스크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방공미사일이나 제트 전투기 엔진, 잠수함과 수중 드론 같은 장비들을 이용하려면 러시아 기술이 필요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군사기술 판매를 꺼렸다. 러시아는 그때 중국이 러시아 무기 기술을 역설계해서 자체 생산하는 법을 알아낼까 우려했다. 또 인구 희박하고 자원이 풍부한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등에서 국경을 접하는 이웃 강대국의 첨단무기 무장도 걱정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균열이 깊어지면서 그런 계산이 바뀌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러시아는 최신의 값비싼 군사기술들을 중국 외에는 팔 데가 없어졌다.

대학과 연구소들 개방과 중-러 통합

옛 소련 시절 한국이 빌려 준 돈(부채)을 승계한 러시아가 돈 대신 무기들을 한국에 넘겨 준 ‘불곰사업’도 국가부도 상태에 가까웠던 어려운 시절의 러시아가 첨단 군사기술을 판매하던 통로였던 셈이다. 불곰사업으로 한국이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뿐만 아니라 우주로켓 기술과 첨단 산업기술까지 다수 흡수했다. 지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방위산업뿐만 아니라 항공우주 개발산업 등에서도 그 덕을 봤다는 얘기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확인해 볼 수는 없으나, 미국과 선두를 다퉜던 옛 소련시절의 군사 및 항공우주 분야의 뛰어난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방의 제재로 다시 어려움에 봉착한 러시아가 엄격히 통제하던 첨단 군사 및 항공우주기술 등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였고, 이번엔 중국이 최대이자 거의 유일한 판매대상국이 됐다. 적극적으로 미국 편을 든 한국은 러시아에서 거의 완전히 밀려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일부 러시아의 중국 방위산업 분석가들은 중국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중국의 군수공급망에 러시아가 자리를 잡고 들어가야 하며, 그것만이 러시아의 군수산업을 현대화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의 빠른 R&D(연구개발)가 금방 러시아의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지금 그들의 그런 주장이 모스크바에선 일반적 통념이 돼 있다고 기부에프는 지적한다.

이제 러시아는 대학과 과학연구소들을 중국의 파트너들에게 개방하고, 연구시설들을 중국의 그것들과 통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이 중국의 IT 대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자 그 피해 당사자인 화웨이는 러시아에 보낸 기술자들을 3배로 늘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상화가 들어간 마트료시카(러시아 전통 목각인형)가 21일(현지시각) 수도 모스크바의 한 기념품 가게에 전시돼 있다. 시 주석은 전날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이날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2023.03.22. AP 연합뉴스

위안화 결제 증대와 ‘탈달러’

러시아 업체들에게는 중국 금융시스템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정상회의에 엘비라 나비올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 대상국가가 중국이고 주요 기술 수입 대상국가 역시 중국이 돼 가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의 위안화가 러시아가 선호하는 교역 결제 및 저축, 투자 수단이 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중국 위안화가 국제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는 예들이 늘면서 그것이 중국의 ‘탈달러’, 새로운 기축통화 모색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달러 결제를 막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면 될수록 탈달러 움직임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달러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탈달러뿐만 아니라 미국의 패권 추구 역시 그것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취약해지는 자기파괴적인 역설적 현상에 직면할 수 있다. 동서냉전에서 ‘승리’했던 미국이 일극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20년 전인 2003년에 감행했던 이라크 침공이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발판을 잃게 만들고 패권적 지위를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역설도 마찬가지다.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가스, 석유 등 러시아 천연자원의 중국 판매 확대문제도 논의됐다. 하지만 그것이 별로 부각되진 않았다. 눈에 띄게 드러내서 푸틴의 전쟁금고를 중국이 채워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걸 중국도 러시아도 바라지 않았으니까.

주도권 쥐고도 일방적일 수 없는 중국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중동의 전통적인 파트너들 외에도 아프리카, 남미 등에 잠재적인 거래 상대들이 있지만, 러시아에겐 그런 존재들이 거의 없다. 러시아는 다만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자신보다 더 힘이 세어진 이웃의 뜻에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처럼 중러 관계는 비대칭적이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중국에게 러시아는 미중 간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러시아만의 특정한 자산들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다. 가장 앞선 러시아의 무기와 군사기술을 구입하고 러시아의 뛰어난 과학적 재능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안전한 육지 국경을 통해 더 수월하게 입수할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필수적인 파트너다.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미국에 대적하고 있는 러시아는 또한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게는 거의 없는 친구들을 미국은 다수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마음대로 러시아를 통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마치 중국과 북한의 관계나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관계와도 닮았다. 북한은 중국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으면서 미국에 대한 대항의식을 공유한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통제하진 못한다. 북한을 자기편으로 가까이 두기 위해 중국은 늘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야 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관계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04.18. AP 연합뉴스

한국은 다르다?

그러나 한쪽이 마음대로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될 때도 있다. 한쪽이 자존적 독자성을 버리고 스스로 무장해제한 채 투항하거나 자기중심을 잃어 버릴 때다. 최근의 한국과 미국·일본의 관계가 그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동서냉전 시절에도 그렇지만 신냉전 시절에도 대립하는 대국들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 일본 등은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당하면서 더 어려운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과거 한반도처럼 나라나 민족 자체가 양 진영의 이익이라는 자장에 끌려 분열되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빨려들어가 분단되거나 해체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특히 더 그러했지만, 미국은 근대 이후 줄곧 동아시아에서 이권을 추구하면서 일본을 대륙에서 분리시켜 자국의 영구적인 기지로 삼았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 뒤 남쪽 절반을 그 기지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럴 경우 선택지가 좁아진다. 편입되거나 거부하거나.

지금 중러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는 얘기들이 있다. 미국의 압박 속에 지금 추세로 가면 러시아는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에서 경제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중국의 속국이 되든 두 나라가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든 미국은 애초 의도와 달리 오히려 자신이 고립될 수도 있다. 그것은 득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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