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혹 떼려다 혹 붙였나…'더 센 양곡법' 온다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지만 정부‧여당 '부메랑' 될 듯

야권 "반드시 후속 입법…'완전한 양곡관리법' 추진"

원안보다 후퇴했던 누더기법 대신 대체입법 예고해

윤준병‧강은미 의원 등 훨씬 강화된 내용으로 발의

여권, 총선 앞 정치적 부담감 더 커져…자충수 된 셈

2023-04-14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감표위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감표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날 다시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으나 결국 부결됐다. 2023.4.13. 연합뉴스

부결된 양곡관리법은 부메랑이 돼 정부‧여당에 돌아올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에 의해 폐기 수순을 밟게 됐지만 이대로 마침표를 찍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대체입법'을 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 탓에 원안보다 후퇴했던 '누더기법'이 아니라 훨씬 강화된 '완전한 양곡관리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윤 대통령으로선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4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권이 결국 쌀값 정상화 법을 가로막았다. 농민의 생존권을 짓밟고 식량 주권을 위협하는 정부·여당의 무책임한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민주당은 농민단체들과 긴밀하게 소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쌀값을 정상화하고 농촌과 식량 주권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며 거듭 의지를 천명한 뒤 "본회의에서 재의결이 부결됐을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이해는 안 되지만 혹여 '일본산 멍게는 사줘도 한국 촌로들의 쌀은 못 사주겠다'라는 것이냐는 국민들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하기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무책임한 갈지자 행보로 용산 하수인의 끝판왕을 보여준 국민의힘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동안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확인했듯 국민은 대통령의 거부권이 잘못됐다고 지적했고, 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훨씬 높았다. 농민의 절박한 생존권 앞에서 '밥 한 공기 더 먹기'를 대안으로 내세우던 집권당, 개점휴업 상태인 '민생119'는 즉시 폐업 선언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후속 입법을 통해 반드시 양곡관리법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의당도 양곡관리법 재추진 의사를 분명하게 공언했다. 류호정 원내대변인은 부결 직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한 국민의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 여당은 양곡관리법을 포퓰리즘 입법으로 매도했지만, 법안 재의가 올라온 오늘까지도 대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조차 사실상 허위임이 드러난 상황에 대안조차 내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쌀값 폭락과 농민 생존권의 대안은 양곡관리법뿐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원내대변인은 "정의당은 강은미 의원 대표발의로 쌀 최저가격 보장을 더한 양곡관리법을 발의했다. 야당의 입법은 막고 봐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통치'에 농민의 생존권이 저지될 수는 없다"면서 "정의당은 완전한 양곡관리법으로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거부권 통치에 맞설 것임을 경고한다"고 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쌀 판매대 모습. 2023.4.13. 연합뉴스

이번에 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안정을 위해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시장격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정부 매입 요건을 초과 생산량 3%에서 3~5%로, 평년 가격 대비 5% 이상 하락에서 5~8% 이상 하락으로 원안보다 느슨하게 만들어 수정 발의한 것이었다. 수정안은 또 쌀 재배 면적 증가 시 의무 매입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둬 정부의 매입 조건과 재량권을 확대했다.

이 때문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같은 농민단체들은 수정안을 '누더기'로 표현하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전농은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누더기가 될 대로 되어버린 개정안으로 생색을 내는 민주당도 꼴불견이지만, 거기에도 의무수매 조항이 있다고 거부해야 한다는 국무총리의 무책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성토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수정안에 대해서조차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민주당은 '더 센' 법안을 새롭게 발의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당장 윤준병(전북 정읍·고창) 의원은 14일 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보다 강력한 '쌀값 정상화 대체 3법'을 발의했다. 윤 의원은 "양곡관리법 부결에도 불구하고 쌀 재배 농가의 소득 안정과 식량안보 확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므로 대체입법을 통해 쌀값 정상화를 구현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대체 3법'은 양곡관리법은 물론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가한 것인데, ▲정부가 쌀 생산비를 매년 고시한 후 농민이 쌀 생산비보다 10% 높은 가격으로 매입을 요청할 경우 매입 의무화 ▲쌀의 시장가가 정부 목표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목표가격 공시 및 변동직불금제 부활 ▲농수산물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오르지 않으면 비축용 농수산물 판매 금지 등을 규정한 조항이 담겼다. 모두 부결된 법안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11일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역시 더 강화된 내용으로 ▲3% 이상 과잉 생산, 5% 이상 가격 하락 시 시장격리 의무화 ▲공공비축양곡 및 시장격리 매입가격에 대해 생산원가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최저가격 보장 ▲다른 작물 재배로 인해 농가 소득이 감소할 때 정부 지원 의무화 등이 담겼다.

농민단체들도 부결된 양곡관리법보다 이 같은 대체입법을 더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과 관련 단체들 협의를 거쳐 확정된 개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민의힘이 재차 부결시킬 수도 있으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감이 훨씬 커져 결정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결국 이번 부결이 정부·여당의 자충수가 된 셈이다.

 

앞서 국회는 13일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재석 의원 290명 중 찬성 177명, 반대 112명, 무효 1명으로 부결이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데, 재적의원(299명) 중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기 때문에 재의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표결 전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의원 겸직 국무위원 3명 중 해외 출장 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제외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까지 표결에 참석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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