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감산' 결행한 사우디, 반미 아닌 국익 먼저
사우디 경제구조 개혁 중대시기…국익 외교 충실
사우디 석유 의존도 GDP 40%…구조 개혁 추진
'롤러코스터' 사우디 국민소득, 유가와 연동된 탓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미국의 정책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음달부터 실행될 산유국의 추가 감산 결정을 주도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민들레 기사: 사우디, 거침없는 탈미국 행보…헤어질 결심했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원래 친미 국가이다. 그동안 고비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여 왔다.
걸프전 때에도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에게 자국 영토를 군사 전진기지로 이용하도록 허용했다. 이런 친미국가가 최근들어 반미 행동을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우디의 이런 행보는 반미 행동이라기보다는 국익 외교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추가 감산에는 사우디가 국익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첫째, 사우디는 원유 감산 → 석유가격 상승 → 석유 수입 증대(국민소득 증대)로 이어져 자국의 국익에 부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롤러코스터' 사우디 국민소득, 유가와 연동된 탓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유가 상승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아래 그림 참조>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시기와 1980년대 초반 이란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 사우디 국민의 1인당 소득은 3만 달러를 상회했다.
그러나 곧바로 석유 가격이 안정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은 절반에 가까운 1만6천 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1년 걸프전 시기 전후에 2만 달러선까지 올랐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후반, 석유 가격이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1인당 국민소득도 회복으로 돌아서는 듯했다. 그러나 2014년 중반부터 국민소득은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2021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못미치고, 30여년 전 걸프전 시기에도 뒤진 1만8700 달러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 추이(2015년 미 달러 불변가격)
이런 사정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산유국의 고통과는 달리 자국 입장을 견지해 유가 인상을 강력히 바라고 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점차 안정을 찾아가자, 국익을 추구하고자 감산 카드를 빼든 것이다.
사우디 석유 의존도 GDP 40%…구조개혁 추진
둘째,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 구조 다원화를 추구해 왔지만, 여전히 원유 판매에 국가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
독일의 국영방송 도이체 벨레(DW)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출액의 80%를 석유로 벌어들이고,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 등을 자랑하는 에너지 자원 부국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광물 자원에만 의존하는 경제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석유자원 의존도는 같은 걸프 국가들과 비교해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 참조>
사우디아라비아는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처럼 국내총생산의 40%를 석유 관련 분야에 의존하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합(30%)과 바레인(18%)은 석유 수입의 의존을 벗어나고 있다.
걸프 국가의 석유관련 자원의 국내총생산(GDP) 비율
셋째, 사우디 석유 자원의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지만, 현재의 채굴 속도를 계속할 경우 앞으로 60년 정도 후에는 매장량이 바닥이 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더군다나 세계는 재생 에너지를 포함한 대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석유 소비가 줄어들 전망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는 2040년쯤부터 전 세계의 석유 수요 감소에 따라 산유국의 석유 수익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입 감소를 대비해 경제 대형 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사막 위의 미래 도시 '네옴 시티'의 건설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네옴 시티의 건설에도 예상 비용은 5000억 달러(약 600조 원)로 추정될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석유 수입의 감소를 앞두고 있는 사우디는 이번 기회를 통해 석유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을 안고 있다.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제 발 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처지다.
사우디 경제구조 개혁 중대 시기…국익 외교 충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국익 외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국의 국익을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는 것이다. 타국의 국익에 대한 배려는 외교정책의 논쟁거리이다.
특히 보수주의 정권이나 현실주의 정치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과거 정권의 안정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국가 경제의 중대한 시기를 맞이해 국익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