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생계비 인기 빌미로 법정 최고금리 손보나

15.9% 고금리에도 1천억 재원 7월 소진 예상

불법 사금융에까지 내몰리는 취약층 많다는 뜻

대부업계 등에선 '연동형 최고금리' 검토 주장

금융위, "당장 최고금리 논의 재개할 계획 없다"

2023-04-05     유상규 에디터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 및 신청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다. 2023.3.27. 연합뉴스

정부가 운용하는 소액 생계비 대출의 조기 소진이 예상되자, 이를 빌미 삼아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거나 탄력적으로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액 생계비가 연 15.9%의 높은 금리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예상보다 흥행되면서 당초 정부가 설정한 재원 1000억 원이 오는 7월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5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급전이 필요한 취약 계층에게 최대 100만원을 당일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이 하루에 6억~7억원 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오는 7월께 재원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설정한 소액 생계비 재원은 1000억 원으로, 은행권 기부금 500억 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기부금 500억 원 등으로 조성됐다.

금융당국은 기부금 확충 등 소액 생계비 대출 재원을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민간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연 20%로 고정된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시 고개 들고 있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대부업조차 이용할 형편이 못돼 불법 사금융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을 신청 당일 즉시 대출해주는 정책 금융으로, 지난달 27일 출시됐다.

시행 당시 정부가 설정한 금리(연 15.9%)가 지나치게 높고, 한도(최대 100만원)도 적은 편이란 비판이 일었지만 의외로 출시 초반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렸다. 사전 예약을 받은 첫날 이미 한 주간 상담할 수 있는 인원인 6200여명에 대한 예약이 마감되기도 했다.

이는 금리 수준에 관계없이 당장 100만원도 빌리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정해져 있지만 이보다 몇 배, 몇십 배나 되는 불법 사금융에 노출된 저소득·저신용층의 실상을 드러낸다.

금융당국은 소액생계비 대출 창구에서 이미 법정 최고금리 이상의 불법 사금융에 노출된 차주들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상담 연계나 금감원 신고 조치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이처럼 서민들의 자금줄이 얼어붙은 것은 작년 금리 인상 및 조달 비용 급증을 이유로 2금융권·대부업권이 대출 문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가 되레 서민들의 대출 기회 자체를 박탈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26일 정부세종청사 제1공용브리핑실에서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최고금리 운용 방안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2022.7.26. 연합뉴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인하되면서 최대 3만 8000명이 대부업 시장에서도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고 분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결국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 상단을 높여야 서민들의 급전 수요를 채우고 불법 사금융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지난해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연동형 최고금리'를 검토했으나,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로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연동형 최고금리'는 법정 최고금리를 고정하지 않고 시장금리에 연동시켜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연동형 최고금리를 도입하면 시장금리에 따라 금리가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지만, 결국 대출 금리 전반을 상승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그만큼 제도금융권에서 배제돼 대부업자의 고금리 또는 아예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는 어려운 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일부 진보 금융단체들은 오히려 취약계층의 대출 문제를 채무 탕감 등 정책서민금융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는 "당장 연동형 최고금리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 없다"면서 기부 재원 추가 확보 등으로 소액 생계비 대출을 이어가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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