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대동아 공영권'의 핵심 군사기지로서의 독도

2023-03-30     김민웅 칼럼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 촛불행동 상임대표​

윤석열 외교가 독도 문제를 급부상시키고 있다. 기시다의 독도 거론이 일본 언론에 등장하면서 대통령이 어떤 대응을 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영토보전 의무를 저버린 헌법 위반으로 탄핵사유가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사태 직후 일본 초등교과서 역사날조 문제가 터지면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일관계의 기본을 규정하는 중대 현안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조금도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독도를 불법점거한 한국"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이번 교과서 파동 이전에 이미 확정된 것이다.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불법 점거" 또는 "점령"이 그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명시적으로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고 있으나 일본에게는 자신들의 영토를 침략, 점거한 ‘가상적국’의 지위에 해당하게 된다. 이걸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자라는 세대는 자국 영토 탈환을 위해 한반도에 개입해 들어가는 무력행동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강점도 합법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배우고 있는 일본국민들에게 이와 같은 '불법 점거'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일본의 행위는 합법이고 한국은 불법이다. 따라서 이런 나라와의 외교는 정상적 근거 위에 할 수 없다. 도리어 피해국가는 일본이며 그에 따른 조처가 당연해진다. 

한일교섭사 초기, 우리가 청구권 주장을 하자 일본이 한국에게 해준 게 더 많고 이제 종전으로 일본의 재산을 빼앗겼으니 피해는 일본이 입었다면서 이른바 '역(逆)청구권'을 내세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도 한 일본 정치인이 일본이 피해국이라고 강변했던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다. 기시다의 오만한 태도와 주장은 모두 이런 식의 발상에서 근거한 것이다. 

그런 자세를 가진 일본이 "독도 내놓아라"라고 한다든지 또는 "강제동원은 무슨" 하면서 근대적 노무관계에 따른 문제에 불과한 걸 가지고 뭔 난리냐고 큰 소리치는 것도 다 자기들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과연 타당한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전쟁체제의 조건에서 독도의 핵심 군사전략적 위치

독도는 모두 알다시피 러일전쟁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한 준비과정에서 1904년 체결된 한일의정서에는 “군략상(軍略上) 필요한 지점(地點)을 수기수용(隨機受容)함을 득(得)할 사(事)”라고 되어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군사행동과 토지수용을 일본 자의대로 하겠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수기수용(隨機受容)'의 뜻은 그 시기에 요구되는 걸 조선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작전상 필요에 따른 군사적 점거 대상은 일본 마음대로이며 독도가 바로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당시 일본 군사력 중심은 해군이었고, 이후 러일 전쟁 때 러시아 발틱함대를 침몰시킨 현장이 바로 동해였다. 따라서 독도라는 거점 확보는 군사전술상 핵심적인 선제행동이 된다. 그래야 일본 해군의 활동범위가 자동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 국방보고서에 독도를 일본의 영유권 대상으로 규정한 것도 단순히 영토문제를 넘어선 군사전략적 발상의 결과다. 

이러한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군사적 지배체제를 승인해준 것이 태프트-카츠라 조약인 것은 다 알고 있는 바이며, 이러한 미국의 승인과 지지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의 국제적 토대가 된다. 이와 같은 구도는 지금도 달라진 바 없다. 이른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라는 전쟁동맹체제의 공식화 과정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승인과 이로써 이뤄지는 일본해 표기로 독도는 일본 영해에 속하는 도서(島嶼)가 되는 셈인 것과 동일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체제의 조건 구비에 따른 독도의 지위가 이렇게 결정된 것이며, 지금도 그런 흐름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체제 진입의 1차적 전쟁이 되었다면 러일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동맹체제의 기초가 마련된 계기다. 이를 통해 1910년 조선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가면 일본은 전 세계 해군력 제3위가 되는 가운데 조선을 병참기지로 해서, 10년 뒤 만주침략과 중일전쟁, 그리고 마침내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1930년대부터 일본의 패전이 확정되는 1945년까지 이른바 '15년 전쟁체제'가 작동되는 동안 우리가 당한 고통과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강제동원과 위안부 성노예화는 이 시기의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만행의 증거다. 일본은 자신들이 주축이 되는 '대동아 공영권'을 세워 이걸 지키는 성전을 벌이겠다고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돌입한 것인데 당시는 미국과 대결하면서 치른 전쟁이라면, 오늘날 일본은 미국의 승인 아래 다시 중국을 포위한‘신판 대동아 공영권’의 패자(覇者)가 되겠다는 것이다.  

독도는 그런 구도 속에서 중대 군사거점이 된다. 과거와는 달리 이곳은 군사기술의 발달로 레이더 기지로부터 해군기지 인프라 구축까지 가능해진다. 단순히 영토 문제 정도가 아닌 것이다. 동해라는 바다에 대한 제해권(制海權) 일체의 장악이 그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위협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쟁체제의 무기고가 되는 상황이다. 그 겨냥의 목표물은 광대하다. 

한-미-일 동맹체제 속에서의 독도는 그런 까닭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군사적 비중과 의미를 갖는 지역이 된다. 그리고 일본은 다시 온 몸을 던져 죽을 각오로 전쟁을 벌일 일억옥쇄(一億玉碎)의 ‘가미가제 소년단’을 기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과거로 멈춘 것이 아닌, 미래를 향해 현재진행형으로 작동하는 사태다.

우리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전쟁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평화를 지켜낼 것인지. 그 일차적 과제는 한-미-일 전쟁동맹 구성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독도는 그 구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판 대동아공영권'의 등장은 또 다른 '15년 전쟁'의 시작이다. 그 끝은 핵전쟁의 파멸이다. 히로시마는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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