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중국, 일본기업인 스파이 혐의로 체포
'스파이활동 혐의’지만 혐의내용 몰라
중국현지 일본 기업인들 불안감 확산
봉쇄정책 해제 뒤 교역·투자 확장기에
미국 오커스, 나토전략 동조 일본견제?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 대기업 아스테라스 제약 현지법인의 일본인 간부가 스파이 활동에 종사한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돼, 미중 분쟁 격화와 함께 냉각기미를 보이고 있는 중일관계에 한층 더 그늘이 지면서 정치와 대중국 투자 및 경제교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스파이 혐의’지만 구체적 혐의내용 몰라
2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이날 정례회견에서, 이번 달 베이징에서 체포, 구속된 이 남성이 “스파이활동에 종사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 당국이 이 남성을 형법과 반스파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혐의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최근 일본인에 의한 유사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서 일본 쪽은 자국민에 대한 교육과 주의 환기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은 이 일로 “중국의 일본계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커져 가고 있던 중에, 중국을 이해하고 비즈니스를 통해 중일 교류를 증진시키려고 애쓰던 일본계 기업인에 대해 법치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처사”라며 반발하는 현지 일본계 기업 간부 출신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체포된 이 제약회사 현지법인 간부는 중국에 20년 이상 체류해 온 50대 나이의 일본인 남성으로, 일본의 중국 현지기업들의 조직인 ‘중국일본상회’의 간부도 지낸 ‘중국통’으로 알려졌다. 그는 베이징의 일본계 기업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며 의료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정부 요인들과도 만나는 등 풍부한 인맥을 갖고 있다.
현지의 일본계 기업의 한 관계자는 “(체포당한 간부가) 그 정도로 위험한 다리를 건넜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거침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긴 하나 (스파이활동 등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퍼져가는 재중 일본 기업인들 불안
그러나 일본계 기업의 한 간부 출신자는 “중국정부 내부의 정보수집이 주요 업무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가) 호랑이 꼬리를 밟아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중일관계에 오래 종사해 온 기업 간부의 구속에, 일본기업의 베이징 지사에 근무하는 한 남성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기업활동 중에서 어떤 부분이 ‘반스파이법’ 위반인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이것이 중국 비즈니스의 리스크인가.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가”라며 탄식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이번 구속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나, 제약회사 사원이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제약회사들은 중국 소비자에게 직접 약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국영기업에 약을 도매로 넘기기 때문에, 업무상 정부 관계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최근 중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재난으로 경제가 피폐해져 국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치료약 등과 관련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단순한 잡담조차 정보수집이나 스파이활동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제약회사 사원이 당국이나 국영기업 관계자와 이야기할 때는 언동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일본의 미국 밀착 NATO구상에 대한 경고인가?
중일 간에는 과거에 양국관계가 악화됐을 때 중국 당국이 일본인을 체포한 경우들이 있다. 2010년에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근해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감시선이 충돌사고를 일으켰을 때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인 선장을 체포하자, 중국은 일본계 건설회사 후지타 사원 4명을 허베이성에서 체포해 구속했다.
이번 제약회사 간부의 체포도 최근의 미중분쟁 심화와 일본의 대미국 밀착 강화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 않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는 오는 5월의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도와 유럽,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데 이어 G7 올해 의장국 자격으로 인도와 한국,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을 G7 정상회의에 초청하는 등 외교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기시다 정부의 이런 외교활동 강화를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대중견제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본은 최근 영국과 '원활화협정'에 서명하고 양국 합동군사훈련을 확대하기로 하는 등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동맹체제 오커스(AUKUS)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인도와 한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인도태평양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구상을 실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제약회사 간부의 체포가 이와 연관돼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일본의 미국 밀착과 대중 견제 움직임 강화에 대한 중국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시진핑 체제 사이버 보안 강화
중국은 2014년부터 반스파이법을 시행하는 등 ‘국가안전’을 명분으로 외국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왔다. 그 배경에는 구미와 일본 등이 공산당 정권의 안정을 흔들려 한다는 음모론적인 경계감이 퍼져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2014년에 시행된 반스파이법에서는 국외 조직이나 개인이 국가기밀을 훔치거나, 공무원을 책동해 배신하게 하는 행위 등을 ‘스파이 행위’로 정의했다.
중국정부는 최근 국가기밀 취급 등 전통적인 스파이 행위 외에 기업활동에 따르는 데이터 취급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 중국 쪽의 사이버 시큐리티(사이버 보안) 결함정보 누설 등을 범죄행위에 추가하는 반스파이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도 사이버 보안 결함에 관한 정보 누설을 ‘스파이 행위’로 규정하는 반스파이법 개정안을 심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새로 정의된 스파이 행위는 ‘중요정보 인프라’의 사이버 보안의 취약성에 대한 정보를 스파이 조직에 넘기거나, 국가안전에 관한 데이터를 훔치거나 수집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2017년에 시행된 ‘사이버 시큐리티법’에서는 통신이나 에너지, 교통, 금융 등의 분야가 ‘중요정보 인프라’에 포함됐다.
지금까지 일본인 17명 스파이 혐의로 구속
2015년 이후 스파이 행위와 관련돼 구속된 일본인은 지질조사공사, 대기업 상사 사원, 대학 연구자 등 모두 17명이다. 지난해 6월에도 상하이 시에서 50대 남성이 스파이 활동 혐의로 체포당했다. 그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반스파이법 위반인지 밝히지 않았는데, 이번 제약회사 간부 체포 뒤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는 현지 일본계 기업인의 얘기처럼 중국 내 일본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일 우호단체 간부인 일본인 남성(65)이 반스파이법 위반으로 6년간의 징역형을 살고 만기 출옥했다.
이 남성은 2016년 7월 국가 안전에 위해를 가했다는 혐의로 베이징 시내에서 중국당국에 체포, 구속됐다. 그는 1980년대부터 30년 이상 중일 교류사업에 관여하면서 빈번하게 중국을 방문했고, 베이징의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근무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2015년 이후 스파이 행위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기소된 일본인은 10명이며, 그 중 9명이 실형 판결을 받았다. 형기 만료로 석방된 사람은 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