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땅을 치고 통탄할 2023년 대한민국"
안 의사 순국 113주년 '비통한 추모식'
독립운동가 후손, 울먹이며 추도사 읊어
"일본 굴욕적 저자세 외교로 역사 역행"
"일제 준엄히 꾸짖던 안 의사님이 그리워"
'동양평화 만세만만세' 미공개 유묵도 공개
안중근 의사가 하늘에서 지금, 2023년 3월의 대한민국을 보면 어떤 심정일 것인가.
2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 의사 묘역에서 거행된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 추모식'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적인 3·1절 기념사와 한일 정상회담을 통탄하는 구한말 의병장과 독립 운동가 후손들의 비통한 추모사가 이어졌다. 후손들은 추모사를 읽다가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전쟁위기 고조와 대통령의 굴종적인 저자세 외교, 정치인들의 친일적 발언에 대해 탄식하며, 안 의사가 옥중에서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의 '동양평화(東洋平和)'를 이룩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아오십시오"…복받친 어느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물
김태원 의병장의 후손인 김갑제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이국 땅 중국의 하르빈 역에서 의로운 선비의 총소리가 울린 지 백 년 하고도 열세 번의 해가 바뀌었건만 안 의사님이 그토록 염원하시던 진정한 광복은 요원하다"며 "친일청산도 동양평화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오히려 사망한 줄 알았던 신자유주의가 부활하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노동자와 빈곤층을 버량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역사의 지평에서 지워진 줄 알았던 수구 보수들이 다시 돌아와 지배권력으로 재등장하면서 냉전시대로의 회귀를 획책하고 있다"며 "전쟁 이야기도 일상화됐고,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는 참사로 기록될 만큼 역사를 역행시키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부터 시작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죄 등 열다섯 가지 죄목을 낱낱이 열거하시며 법정에서 일본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던 안 의사님의 그 기개와 목소리가 오늘 너무도 그립다"며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신 안중근 의사님의 그 거룩한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라도 친일을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역사왜곡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안중근 의사님이 천국에서라도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염원한다"며 "항상 옛날과 지금과 미래는 맞물려 돌아간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김영진·이정현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김충한 광복회 광명시지회장은 "의사님께서 그렇게 염원하셨던 소원 두 가지 모두 이뤄지기는 틀린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라며 "70년 동안 38선은 더욱 강고해지고 무기는 첨단화돼 킬체인이니, 선제타격이니, 불바다니 하면서 험한 말만 쏟아내고 있다"고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우려했다.
이어 "정작 전쟁이 나면 우리 8000만 한민족은 서로가 서로를 멸종시킬 것"이라면서, 안 의사를 향해 "이럴 때 의사님께서 양쪽 위정자들을 혼내주시라. 싸우지 말고 통일하라고 귀 싸대기 한 대씩 올려붙여 주시라"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들이 한국 전쟁 때 돈을 좀 벌더니 기고만장해서 '정한론'을 앞세워 다시 군국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쿼드니, 삼각 동맹이니 하면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독도 근해에서 북한을 견제한답시고 한미일 해군 합동훈련을 했다고 한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구한말 때 동학군을 진압한다고 청나라, 일본이 기어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미국한테는 귀싸대기 두 대, 일본에게는 귀싸대기 세 대를 때려달라"고 했다. 고령인 독립운동가 후손의 절절한 외침에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김 지회장은 "(의사님의) 두 번째 소원이셨던 '독립 되면 데려가 달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울컥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잠시 울음을 머금은 뒤, "안씨 고집 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젠 고집 좀 누르시고 여기로 돌아오시라"고 했다. 대일 굴종외교 사태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시기 안 의사의 정신이 되살아오길 바라는 후손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는 추모식에 맞춰 추모사를 쓰며 여러 번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재차 안 의사를 향해 "이제 113년이 지났다. 이제 못 이기는 체 '나 여기 있다'하시고 돌아오시라. 뤼순 어디엔가 쓸쓸히 홀로 계시지 말고 오시라"고 간곡히 기원하며 "언제까지 허묘(虛墓·빈 무덤)에다 절을 시키시려고 하시느냐. 하루 빨리 돌아오시라. 저희 (후손들) 모두 힘을 모아 남북이 하나 된 진정한 독립을 이룬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인 조정식 의원은 "거꾸로 흐르고 있는 역사의 시계 앞에서 부끄러움과 함께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 한마디 없이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일변도로 동양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조 의원은 "마땅히 이를 견제해야 할 윤석열 정권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굴욕적인 대안을 자처하고 위안부와 소녀상, 독도·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사안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주권국가이길 포기하고 일본의 속국을 자처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안중근 의사께서 땅을 치고 통탄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안중근 정신이 절실할 때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아, 우리 국민 한명 한명 모두가 안중근이 될 것을 제안한다"며 "저와 더불어민주당은 친일굴욕외교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반드시 바로잡아 진정한 주권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유지인 한반도 번영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약속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함세웅 신부는 이날 '안중근 의사가 대통령 윤석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공개했다. 정동영 전 의원이 대표로 편지를 낭독했고, 추모식에 참석한 200여 명의 시민들도 정 전 의원과 함께 편지를 따라 읽었다.
안 의사가 윤 대통령에게 직접 쓴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편지 글은 "진정한 반성이 확인되기 전에는, 강도가 내 땅을 한 치도 탐내지 못하도록, 내 동포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대일 굴종외교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 대통령을 향해 "만일 언론, 재벌, 부자 등 기득권과 손잡고 노동자, 농민, 장애인, 청년, 여성 등 약자들을 적대시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유혹에 빠졌다면 한시바삐 정신 차려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네의 처와 장모 등 가족의 잘못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꾸짖었다.
안중근 의사 묘역에 울려퍼진 "동양평화만세 만만세"
이날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 추모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유묵이 새롭게 공개됐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부터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많은 유묵을 남겼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안중근 유묵이 200여 편에 이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57점에 불과하다. 이번에 1점을 추가해 58점으로 늘었다.
이번에 공개한 유묵은 가로 35㎝ 세로 135㎝ 크기(액자 포함한 크기는 가로 45㎝, 세로 150㎝)로 비단 천에 '東洋平和萬歲萬萬歲 庚戌 二月十八日 旅順監獄在監中 大韓國人 安重根書(동양평화만세만만세 경술 2월18일 여순감옥재감중 대한국인 안중근서, 동양평화 만세만만세 1910년 2월 18일 여순감옥 재감 중에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라는 글귀가 먹으로 쓰여 있고,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인 장문(掌紋)도 확인할 수 있다.
기념사업회 측은 안 의사가 가장 처음에 쓴 유묵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1심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흘 뒤 이 글귀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안 의사는 사형선고 사흘 뒤 히라이시 우지히토 법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할 시간이 필요하니 사형 집행을 한 달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히라이시는 이를 수락했다.
특히 이번 유묵의 특징은 안중근 사상의 중심에 있는 '동양평화'를 실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묵이라는 점이다. 안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은 뒤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다가 순국함으로써 원고는 미완에 그쳤다. 사형이 집행될 당시에도 '동양평화' 만세 삼창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형무소에서 거부해 기도로 대체됐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휘호 가운데 작성한 연월(年月)이 들어간 유묵은 다수 확인되지만 날짜(日)까지 기록한 유묵이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현존하는 유묵 가운데 가장 선명한 장문도 확인할 수 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 유묵은 국내 소장자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소장자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도쿄 유학 중 이 유묵을 입수했다고 한다. 소장자가 최근 기념사업회에 연락하면서 유묵의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번에 대중에 공개하게 됐다. 기념사업회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통해 추가적인 공식 확인 작업을 거칠 예정이다.
이날 유묵 공개가 끝난 뒤, 추모식 참석자들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문화예술위원인 배우 황건 씨의 "동양평화 만세" 선창에 맞춰 '만세 삼창'을 하며, 안 의사가 끝내 부르지 못한 '동양평화 만세'를 대신 외쳤다.
이 밖에 이날 행사에서는 안중근·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지휘 정경화)의 핀란드 독립군가 '핀란디아', 아리랑, 독립군가 연주 공연이 펼쳐졌다. 독립군가를 연주에 맞춰 시민들은 노래를 불렀다. 거문고 연주자 박성미 씨는 '장부가' 거문고 병창을 선보였다. 추모식 본행사 전에는 선비문학학회가 추모제례를 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