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가' 탓하는 친일 궤변…진보 일각 '이중성'도 문제다

일본 충분히 사과? 사과의 기본 무시한 가해 논리

강제동원 자체를 인정 안 해…'강약약강'의 이중성

배타적 민족주의? 전쟁범죄 분노가 '반일'로 표출

죽창가만 부르다 한일관계 망쳤다? 사골 우려먹기

당시 상황 의도적 왜곡…아름다운 시와 노래 모독

2023-03-26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 3. 21. 연합뉴스

거듭 말하지만 이번 강제동원 '해결'은 죽은 아베 신조(일본 전 총리)가 무덤에서 웃을 일이다. 일본 국가와 지배층은 이제 '평화헌법'으로 묶여 있던 족쇄를 풀어버리고 '적 기지를 선제공격하고 전쟁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향해서 더 성큼 전진하게 됐다. 윤석열 정부와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일본의 우익 지배자들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하위 파트너로 스스로를 집어넣었다.

이번 역사적 만행의 더 큰 책임자는 미국 바이든 정부라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해결'을 계속 압박하고 가장 크게 환영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 일본을 앞세우고 한국의 팔을 비틀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이제 한미일이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면서 이 지역에서 온갖 가공할 첨단무기를 동원한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 연습을 벌이는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연히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반작용을 낳고 있고, 한미일은 그것을 더 큰 전쟁 연습의 핑계로 사용하지만, 누가 봐도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전쟁 연습이고 압박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더욱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식민지배의 역사와 우리의 평화로운 미래를 송두리째 짓밟아 놓고서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20분 넘게 쏟아낸 억지 논리와 궤변들을 보고 또 많은 사람이 뒷목을 잡고 분노했을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논리들이 그동안 보수우파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인사들이 하던 빗나간 주장들을 교묘히 가져간 점이었다.

첫 번째가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사과해 왔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어떤 진보정당의 활동가조차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기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제발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해야 하고, 변명이 아니라 구체성과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실제 행동과 재발방지책이 이어져야 한다'는 사과의 기본적 원칙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성폭력 사건 등에서도 피해자들이 항상 강조해 오던 것이다.

"첫째, 사과한다고 말한 뒤 '하지만'이나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마라. 변명으로 들린다. 둘째,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라. 과오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라. 사과를 했는데도 상대방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사과에 책임 인정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충분한 보상책을 제시하라. 피해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면 더할 나위 없다. 다섯째,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사과가 갖추어야 할 6가지 충분조건', 정재승·김호)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가짜 사과를 해놓고 '나는 이미 사과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하라며 나를 괴롭히는 것이냐'면서 도리어 화를 내고 끝없이 2차 가해하는 가해자들을 우리는 이미 지겹도록 봐 왔다. 대표적으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선 사과는커녕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조국 교수 같은 검언카르텔의 피해자에게는 끝없이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던 이들이, 이런 일본에게는 '외교적 현실주의'까지 운운하며 너그럽기만 한 것을 보면 그 강약약강의 이중적 태도에 할 말이 없어진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왼쪽)와 김성주 할머니가 강제동원 정부 해법을 규탄하고 일본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3.7. 연합뉴스

두 번째가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이 문제다'라는 논리이다. 민족주의는 진보가 아니라며 좌파적 순수성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어떤 분들은 '반일'도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속에서 청산하지 못한 피해와 가해라는 명백한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속에도 당연히 계급과 젠더는 연결돼 있었다.)

이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대개 '반일'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를 무시하고 '반일도 문제고 혐한도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을 삭제하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다. '민족'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지도 놓친다. 예컨대 최근 가장 문제적 '민족' 논리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최저임금 이하로 데려와 저출산을 해결하자는 조정훈 의원에게서 볼 수 있다.

반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보상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양금덕 선생님 같은 분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면서 우러나오는 이런 울분을 '반일감정'이라고 탓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이다. 지금 정말로 '배타적'인 것은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덮어버리며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일본 정부와 우익들의 국가주의이다.

세 번째, '죽창가만 부르다가 한일관계를 망쳤다'는 논리다. 이것은 정말 지긋지긋하고 야비한 상징조작 프레임이다. 족벌언론과 보수우파들은 2019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조국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을 꼬투리 삼아 5년 동안 지겹도록 이런 공격을 반복해 왔다. 그야말로 사골 국물처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려먹는 것이다.

당시에 일본 정부는 반도체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통해서 한국에 먼저 시비를 걸고 공격을 해 왔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먼저였다고 우기지만 적반하장일 뿐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피해에 대한 정당한 판결일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역 보복에 나선 일본 정부를 보고 한국의 시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끝내 공식 파기하지 않거나, 강제동원에 대해 문희상안을 제시하는 등 지나친 타협까지 모색했지만, 일본 정부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따라서 한일관계를 망친 것은 식민지배 가해국가인 일본 정부의 도발적 만행과 경제적 보복이었지, 피해국가인 한국 정부나 시민들이 아니었다.

 

드라마 '녹두꽃'과 '죽창가'에 관한 짧은 글을 올렸던 조국 교수의 당시 페이스북 화면

2019년 당시 조국 교수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이런 상황과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 게시물은 당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드라마 <녹두꽃>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린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었다. <녹두꽃>은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아마도 요즘 같으면 종북이라며 압수수색 당할 내용일 수 있다(?). 드라마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정으로 잔인하고 야만적인 폭력은 일본군의 조총이었지 농민들의 죽창이 아니었다.

더구나 김남주 시인의 시의 원래 제목은 '죽창가'가 아니라 '노래'였다. 죽창으로 사람을 찌르자는 폭력적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남주 시인의 많은 시처럼 언제 읽고 들어도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이 시와 노래를 툭하면 끄집어내서 조리돌리는 이들에게 분노하며, 그것에 동조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노래>

-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아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고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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