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이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는가
더 멀리, 더 오래 날 수 있는 국방전략 세워야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이하 핵잠) 건조를 승인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으나, 이는 기술·외교·안보 현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핵잠은 단순한 전력 증강 수단이 아니라 국가 전략 구조, 핵기술 운용능력, 외교적 책임이 결합된 고위험 플랫폼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보유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핵잠은 고도의 핵기술과 군사기밀이 집적된 핵전투 플랫폼
고대 그리스의 이카루스 신화를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아주며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날개가 녹고, 너무 낮으면 바닷물에 젖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젊은 이카루스는 상승 욕망에 사로잡혀 경고를 무시하고 더 높이 날다가 태양 가까이 접근했고, 결국 날개가 녹아 바다로 추락했다. 핵잠 논의 역시 이카루스의 날갯짓처럼 욕망이 앞서고 준비가 부족한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핵잠은 보여주기 위한 장비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운용 체계, 전략적 판단 구조, 외교적 관리 능력까지 갖추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핵잠 기술의 핵심은 단순히 핵연료나 원자로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이 검토 중인 핵연료에는 지난 70여 년간 전시·평시 축적된 출력 제어 방식, 열·응력 거동, 연료 수명 관리, 사고 대응 프로토콜 등 실전 운용 정보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핵확산 규제 수준을 넘어 미 해군 핵추진정보(NNPI)로 분류되는 군사기밀이다. 핵연료만 제공받아서는 정상 운용이 불가능하며, 이를 위한 원자로 설계값, 열수력 조건, 운전 변수까지 모두 이전되어야 한다. 이들은 모두 NNPI 영역이며, 단순한 외교 협의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설령 호주의 AUKUS 사례처럼 미국이 핵잠 전체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핵잠은 단순 장비가 아니라 핵전투 플랫폼이며, 작전 투입 기준과 기동 원칙, 위기 대응 체계 등은 미국의 군사작전계획(OPLAN)과 연결된 전략 기밀 정보다. 따라서 한국이 핵잠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려면 미국이 한국을 핵전력 운용 파트너로 공식 인정하고 NNPI 및 일부 OPLAN 연계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 또는 독자 핵전략 추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핵잠 보유 논의는 AUKUS 사례처럼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수십 조 원 핵잠보다 국방비의 미래 지향적 재정비 더 절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 한국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핵잠을 ‘보유하는 나라’가 아니라 ‘기여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방산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핵잠 및 전략 수상함 생산을 지원하는 산업·기술 파트너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미국에게는 생산 역량 확충과 공급망 강화 효과, 한국에게는 실질적 산업 수익, 기술 축적, 미래 독자 플랫폼 개발 기반 확보라는 실익을 제공한다.
핵잠 도입에 수십 조 원 규모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 이를 계기로 국방비 구조를 전략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국방비는 세계 11위 수준임에도 병력 유지와 기존 체계 운용 중심이어서, 무인잠수정(UUV), 수중 감시체계(SOSUS), 위성·AI 기반 지휘 체계, AIP 기반 차세대 잠수함 등 미래 전력 분야 등에 보다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핵잠은 힘의 과시 수단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책임의 크기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군사력 상승이 아니라, 그 날개를 지탱할 전략적 근육과 균형을 키우는 일이다. 핵잠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제한된 자원을 소진하기보다는, 한미 협력을 기반으로 한 기술·산업 참여와 국방비의 미래지향적 재편으로 진짜 힘을 키우는 전략적 선택이 절실한 것이다. 지금 당장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오래 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