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전시 성범죄 처벌' 주장한 일본, 자격 있나?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는 부정하며 러시아군 겨냥
이시카네 유엔대사 "성범죄‧전쟁범죄 면죄부 안돼"
위안부는 조직적으로 자행된 '전시 성폭력 범죄'
유엔인권기구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관행" 규정
올해 UPR서 위안부 거론…중국·북한, 일본 맹폭
“성범죄 등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면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를 다루고자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너무 당연한 주장이지만, 발언자가 일본 대표라고 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참혹한 ‘전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모르쇠로 일관해온 게 일본이어서다.
이시카네 유엔대사 “성범죄‧전쟁범죄 면죄부 안돼”
안보리 긴급회의는 6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미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을 비롯해 15개 이사국이 다 모였다. 현재 일본은 비상임이사국이다.
발언자는 이시카네 키미히로 유앤 주재 일본대사이다. 유엔 안보리 브리핑에 따르면, 이시카네 대사는 먼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불법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런 다음에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자행되는 성범죄 처벌을 주장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 대표인 이시카네 대사는 “무력분쟁(우크라이나 전쟁) 기간에 발생하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들은 아마도 전쟁범죄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모든 당사자가 국제인도주의법을 엄격하게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위안부는 조직적으로 자행된 전시 성폭력 범죄”
이어 이시카네 대사는 “성범죄와 젠더에 기반한 범죄(sexual and gender-based crimes)를 포함한 전쟁범죄와 다른 잔혹 행위들에 어떤 면죄부도 주어져선 안 된다”고 말해 특히 전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관용 없는 처벌을 주장했다.
이날 회의 분위기로 볼 때, 주로 러시아군의 범죄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일본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과거 전범국이었던 일본은 지금까지도 극구 부정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이자 조직적으로 자행한 ‘전시 성폭력 범죄’라는 게 국제사회의 지배적 견해다.
심지어 2012년에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한일 과거사 관련 보고받을 때 ‘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라고 하자 그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강제적인 일본군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쓰라고 지시했던 일화도 있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차치하고 범죄 자체를 숨기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게 바로 일본이었다.
피해자를 배제한 채 졸속으로 이뤄졌던 2015년 박근혜 정부 때의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다 해결됐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그리고는 세계 곳곳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제거하고 추가로 건립하는 국제사회의 시민운동을 저지하는데 거의 사활을 걸고 있을 정도다.
유엔인권기구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관행” 규정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식민지 과거사 문제로서 현재진행형인 사안일 뿐아니라, ‘전시 성폭력 범죄’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국제인권기구에서도 깊이 관여해왔다.
실제로 위안부 합의 2년쯤 후인 2017년 10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 OHCHR)은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일본의 인권상황 심사용 기초자료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관행’으로 법적 책임이 있다고 보고 실행자의 소추와 처벌을 요청했다. (산케이신문 2017년 10월 28일자)
또한 2주 후인 그해 11월 14일 유엔인권이사회(UNHCR)는 일본에 대한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를 거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성의있게 사죄하고 희생자에게 보상하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교도통신 2017년 11월 16일자). 유엔이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정부 차원의 공시 사죄를 정식으로 권고한 것이다.
이듬 해인 2018년 11월 19일 유엔고등판무관실 산하 강제적실종위원회는 일본의 ‘강제적 실종 보호협약’ 준수 여부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소위 ‘위안부’라는 강제적 실종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통계정보가 부족하고, 조사가 없었으며, 이런 범죄의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와 유죄 선고가 없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해 2015년 위안부합의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에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오마이뉴스 2018년 11월22일자 ‘박근혜가 맺은 위안부합의 재앙’).
올해 UPR서 위안부 거론…중국·북한, 일본 맹폭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김없이 올해도 다시 거론됐다. 지난달 31일 유엔 사무소에서 진행된 일본에 대한 UPR에서였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포문을 연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 대표는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등에게 저지른 역사적 죄책을 경시해왔다. 책임있는 태도로 반성을 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일본 UPR과 관련,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 군국주의의 심각한 반인류 범죄”라고 못박았다. 이어 마 대변인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할 수 없다”며 “우리는 일본이 침략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위안부 강제동원 등 역사가 남긴 문제를 성실하게 처리하며 실제 행동으로 아시아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에 응당한 설명을 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북한 대표가 나섰다. 방광혁 제네바 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에 행해진 강제징용과 성노예(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 책임하에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진솔한 사과를 하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의 한일 정부 간 밀착을 반영하듯, 위안부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기보다는 ‘의례적인 언급’을 하고 넘어갔다는 인상을 주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성미 제네바 주재 차석대사는 유엔이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 등을 권고한 점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되찾고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귀를 기울이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일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일본 대표는 “2015년 12월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이뤄진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셈이다.
한편, 윤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9개월 동안 전임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를 배제한 채 밀실합의를 했다면서 파기했던 한일 위안부합의 복원에서 시작해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대위 변제 추진, 독도 근해에서의 한·미·일 군사훈련, 한국 해군의 일본 욱일기 경례 허용, 일본의 대대적 방위력 증강과 전쟁 가능한 군사대국화 묵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양국 현안에서 대일본 저자세 굴욕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