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의 부동산 투기 막으려면…백지신탁제가 해법
고위 공직자 절반이 집 2채 이상 보유
보유 주택은 서울·강남 3구에 집중돼
모두가 부동산 불로소득 탐하는 나라
백지신탁제는 강력한 투기억제 효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임명직 고위 공직자의 절반 가까이가 2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보유한 주택이 서울과 강남에 집중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기실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보유 실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제에 부동산백지신탁제를 도입해 고위 공직자들을 투기꾼 오명에서 해방시키고,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4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 48.8%가 2주택 이상을 소유해
18일 리더스인덱스가 선출·임명된 4급 이상 고위직 2581명의 가족 재산 공개 내역을 분석한 결과, 48.8%가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했고, 3채 이상도 17.8%나 됐다.
전체 재산(5조 7134억 원)의 58.7%인 3조 3556억 원이 건물 자산이었고, 이 중 실거주가 가능한 주거용 부동산은 4527채였다. 가액으로 따지면 2조 3156억 원이다.
주택 유형별로는 아파트가 2665채(58.9%)로 60%에 가깝고, 가액은 1조 7750억 원(76.7%)에 달했다. 이어 단독주택(16.6%), 복합건물(8.6%), 오피스텔(6.9%) 등의 순이다.
직군별 1인당 보유 주택 수를 보면 정부 고위관료가 1.89채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지자체장이 1.87채, 지방의회와 공공기관·국책 연구기관 공직자가 각 1.71채 수준이다. 국회의원은 평균 1.41채를 보유했다.
서울과 강남에 몰려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주택
고위 공직자들이 소유한 주택은 서울 중심, 그 중에서도 특히 '강남 3구' 집중 양상이 두드러졌다. 서울 소재 주택은 1344채(29.7%)로, 높은 집값이 반영되면서 가액은 1조 3338억 원(57.6%)에 달했다.
서울의 구별로는 강남구(229채), 서초구(206채), 송파구(123채) 등 이른바 강남 3구가 전체의 41.5%를 차지했다. 여기에 용산구(74채)가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 중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공직자는 총 42채를 보유한 조성명 서울 강남구청장이다. 본인 명의 강남구 아파트 1채, 고양시 오피스텔 38채, 속초시 오피스텔 1채와 배우자 명의 강남구 복합건물 2채 등을 보유했다.
국회의원 중 최다 보유자는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관악갑)으로 13채를 보유했다. 배우자 공동명의 서초구 아파트 1채와 관악구 오피스텔 11채, 충남 당진에 본인 명의 복합건물 1채 등이다.
리더스인덱스는 "다주택자일수록 아파트 1∼2채를 기본으로 두고 여러 단독주택과 오피스텔, 복합건물 등을 결합해 보유하는 경향이 뚜렷했으며, 서울과 강남에 집중되는 현상이 여전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투기는 고위공직자들의 전유물인가?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및 과다 보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질문을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당신이 성공한 엘리트고, 소득이 남들보다 많으며, 물려받은 재산도 적지 않다고 할 때, 당신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아마 열에 아홉은 '강남 아파트'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강남 아파트는 다른 자산에 비해 하방 경직성도 높아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적어 최고의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대상이다. 강남 아파트에 비해 정도가 약하긴 하지만 다른 유형, 다른 지역의 부동산도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이런 상식에 기반해 추론해보면 대한민국 엘리트 가운데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사정은 이해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쉽게 버는 경로가 확고하게 구축된 상황에, 투기는 선택이라기 보다는 재산증식을 위한 필수코스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부동산 투기를 해 치부를 한 행위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는 생각을 가진 마당에 '자금'과 '정보'라는 투기에 최적의 조건을 구비한 엘리트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외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허망하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고위 공직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엘리트 가운데 선발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고위공직자 선발 방식은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을 노정한다. 청문회 등을 통해 고위 공직자 후보에 대한 검증절차가 투명해지고 공개되면서, 고위 공직자 후보 중 상당수가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리게 됐다. 복기해보면 금방 알 일이지만,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청문절차가 도입된 이래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려 낙마하거나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기준으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을 걸러내기 시작하면 온전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고위 공직자 인력 풀이 매우 좁아질 것임을 의미한다. 투기공화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인력 풀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도 해소시키는 방법이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는 일석삼조의 정책목표 달성 가능
'고위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가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인력풀을 유지하면서, 투기 의혹도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입법발의까지 됐던 이 제도는 고위 공직자 후보가 취임 시에 실수요 아닌 자신 및 배우자, 직계 비속 소유의 부동산을 중립적 위원회에 신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탁가액은 과거 그 부동산을 매입했을 당시의 시가의 원리금과 신탁 시점의 시가 중 적은 금액으로 한다.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고위 공직자 후보도 이를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실수요에 대한 소명 책임은 고위 공직자 후보가 지도록 하고, 소명에 실패하면 당연히 신탁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통상 부모들이 자녀에게 증여할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경우가 많으므로 자녀 명의의 부동산도 실수요 소명 및 신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고위 공직자가 그 직을 마칠 때에는 신탁한 부동산의 신탁운용금을 그에게 교부하며, 고위 공직자가 퇴임한 후 몇 년 간은 실수요 목적이 아닌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직무와 관련된 개발 정보 등을 이용한 부동산 취득을 방지해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고위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이렇게 설계하면 고위 공직자의 과거 투기의혹도 깨끗히 세탁(?)되고, 개발 등과 관련해 고위 공직자가 직무상 행한 결정의 공공성도 확보된다. 한 마디로 일거양득이다.
또한 앞으로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던지는 효과도 부수적으로 기대된다. 기실 '고위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만큼 강력한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도 드물다. 대통령이 읍찹마속의 심정으로 솔선수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들이 민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늘 사용하곤 하는 '내로남불' 프레임도 완벽히 무력화될 수 있다.
한편 '고위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가 시행되면 실수요 이외의 부동산을 많이 가진 고위 공직자 후보자에겐 세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취임 후 일정 기간 안에 실수요 이외의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위원회에 부동산을 처분신탁하거나, 고위 공직을 포기하고 부동산을 선택하는 등이다.
물론 부동산백지신탁제의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자의 범위, 직계비속 포함 여부, 백지신탁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의 범위, 신탁부동산의 운용 및 처분 등에 관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있다.
지금 중요한 건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힘을 합쳐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 본격화다. 그 논의가 본격화됐다는 소식만 들려도 시장은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