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력 붕괴 참사, 7명을 잃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사고 부른 불합리한 법제도·관행 혁파 시급
대한민국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에서 최고 S등급까지 받았던 한국동서발전의 울산화력발전소에서 지난 11월 6일 발생한 붕괴 사고는 사고 발생 뒤 8일 만에 마지막 매몰자가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모두 7명이 사망한 산재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노후 보일러 타워(5호기)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올해 들어, 그리고 이재명 정부 들어 현재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수사나 처벌, 직접 원인 찾기만큼 중요한 간접 원인 찾기
앞서 지난 2월 14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에 있는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 리조트 건축 공사장에서는 마무리 내장 작업을 하다 발생한 화재로 6명이 숨진 사고가 있었다. 또 2월 25일에는 세종포천고속도로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구간 교량 건설 현장에서 론처(발사장치) 가설기와 상판이 잇달아 무너져 내리면서 작업자 가운데 4명이 숨졌다.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 참사는 공정률 80%에 불과한 상태에서 사용승인이 이뤄졌고, 감리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됐음에도 현장 확인을 하지 않는 등 부실 관리가 문제 됐다. 사고 당일에도 인근에 인화성이 강한 물질과 자재를 쌓아둔 채 용접 작업을 하는 등 총체적 안전 불감증을 보였다. 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도 넘어짐 방지 장치를 멋대로 없애고, 안전 지침으로 론처를 뒤쪽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이를 어겼다. 관리 감독 부실도 드러났다.
산업재해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예방하는 일이다. 따라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기관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수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보다 직접적인 원인과 함께 간접적 원인을 면밀하게 다각적으로 살펴야 한다. 수사는 주로 직접적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간접적 원인은 잘 살피지 않는다. 이런 후진적 산재 수사가 우리나라에서는 팽배해 있다. 간접적 원인까지 찾아내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영세 중소기업이 발파·해체 작업을 하도급 받는 현실
우리나라에서 대형 보일러 타워가 해체 과정에서 붕괴해 노동자가 숨진 사고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경우 이번 우리 사고하고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 사례로 2016년 영국 디드콧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붕괴 사망 사고가 있다. 당시 해체 작업 중 보일러 타워를 발파식으로 해체하기 위해 발파 시 쉽게 무너지도록 취약화 작업을 하던 중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은 이 사고를 계기로 해체 공정별 실시간 모니터링, 잔존 안정성 평가, 절단 순서 검토 기준 등을 마련하는 등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미국에서도 대형 발전소 해체 중 붕괴 사고가 있었다. 2020년 오하이오주에서 오래된 킬런 발전소를 폭파하기 전 사전작업 중 14층 규모 보일러동이 무너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그 뒤 해체 작업 중 구조 안정성 조사, 임시 지지 설계 승인, 변경 관리 절차, 붕괴 반경 격리 등의 법적 의무사항을 도입해 재발 방지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선진국의 대형 구조물 안전 관리 제도를 잘 파악하고, 이와 함께 이번 사고 원인을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제도적 측면까지 포함해 매우 꼼꼼하게 파헤쳐야 한다. 기술과 제도가 제대로 되어 있더라도,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발파·해체업체들 대부분이 영세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업체들이 우수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만들어주어야 한다.
울산 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이후 매몰된 노동자를 안전하게 찾기 위해 붕괴 보일러 타워와 함께 폭파·해체할 예정이던 양 옆 두 개의 노후 보일러 타워를 사고 발생 5일 뒤인 지난 11일 폭파·해체했다. 폭파 장면을 방송으로 보면서 그렇게 안전하게 순식간에 해체할 수 있었는데 왜 붕괴 사고가 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공허한 선전
울산화력발전소는 울산에 본사를 둔 공기업인 동서발전이 운영하는 곳이다. 동서발전은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해체 공사 시공사로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을 선정했고, HJ중공업은 이를 다시 해체전문 중소기업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을 주었다. 코리아카코는 사고 당일 작업자 9명을 작업 현장에 투입했으나 실제 직원은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일용직 등이었다.
코리아카코는 구조물해체 비계공사업·토공사업·토목공사업 등록업체로 1997년 설립한 해체전문업체이다. 이 회사는 구조물 발파해체와 일반해체뿐만 아니라 석면해체, 토공사, 시설물유지관리업까지 사업 영역을 다양화했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코리아카코는 "고층구조물 발파해체 첨단기술로 가장 경제적이며, 안전한 발파를 수행하는 고층구조물 발파해체 선두기업" "구조물 발파해체 기술 첫 해외 수출기업" "각종 난이도 높은 발파 해체공사도 코리아카고와 함께하면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전문기업" "다양한 현장 여건에 최적화된 최첨단 친환경 해체공법과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공법 시공기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이런 자부심과 자랑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울산에서는 지난해 3월 24일 일요일 오전 울주군 온산읍 온산항만에서 정일울산컨테이너터미널(주)한테 도급을 받은 김해의 두성테크가 고용한 노동자 2명이 컨테이너 화물을 하역하는 크레인 수리를 위해 고소작업대에 탑승하여 수리 작업을 하다 크레인이 바다 쪽으로 넘어지며 바다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구조물을 보강하는 대각선 방향의 구조부재(部材)인 브레이싱이 작업 중 흔들리자 이를 보강·수리하기 위해 산소절단 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을 지지하는 힘이 약해져 중심이 바다 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져 일어났다. 두성테크는 직원이 한 명뿐인 회사였다. 이런 곳에 작업을 맡긴 것과 함께 전문성에도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법제도에는 문제가 없나? 관행은? 안전 기준은?
울산에서는 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참사 4일 뒤인 11월 10일 오전 동구 방어동 염포부두에서 곡물을 하역하는 180톤 규모의 크레인이 하역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2명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참사가 인근에서 벌어졌음에도 이런 사고가 며칠뒤 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일터의 안전 의식이 낮다는 방증이다.
노동부를 비롯해 관련기관·업체들은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참사를 계기로 대형 크레인 등 대형 기기와 대형구조물 해체 작업 등과 관련한 일제 점검을 벌이고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일어났던 관련 사건·사고를 집중적으로 조사해 하루빨리 법제도 개선과 관행 철폐, 안전 기준 재정비 등을 통해 유사 사고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