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나 한국이나 "국익 손상시킨 건 늘 우익세력"

“난 미국이 좋다. 허나 일본은 미국 노예가 아니다”

아쿠타가와 수상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칼럼

나카소네, 고이즈미, 아베…우익정권서 국익 손상

‘좌파가 나라 망친다’는 거짓 선동, 한일이 닮은꼴

한국 경제 발전, 좌우 어느 쪽이 집권하느냐와 무관

2025-11-09     한승동 에디터
일본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마이니치신문 11월 7일

“다카이치 정권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를 답습하면 세상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는 잊고 있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우파적인 인물이 총리가 되면 거꾸로 국익이 손상당해 온 역사가 있다.”

일본 아이치 현 도카이 시 출신의 1977년생으로, 2005년에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고, 2010년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상을 받은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48)가 지난 7일 <마이니치 신문>에 쓴 칼럼의 한 구절이다.

 

1983년 한국방문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악수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총리.  나무위키

“우익이 정권 잡으면 국익 손상” 첫 사례 나카소네

나카무라는 우익이 정권을 잡으면 국익이 손상당한 역사적 사례로 몇 가지를 드는데, 먼저 나카소네 야스히로(1918~2019) 정권. 나카소네 정권(1982년 11월~1987년 11월) 때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을 위해 감행한 부자연스런 ‘플라자 합의’로 일본은 불경기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나카무라는 썼다. 지금까지 이어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당시 팽대한 무역적자, 재정적자(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일본 엔과 독일(서독) 마르크 대비 미국 달러 가치를 강제로 끌어내린(환율 상승) 플라자 합의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일본과 독일의 수출을 억제하고 미국 수출을 늘려 쌍둥이 적자에서 벗어나려 강제로 일본 엔 가치를 단기간에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게 한 것이 ‘플라자 합의’였다. 그 결과 일본 엔 가치가 치솟고 초저금리 정책이 실시되면서 일본 전역이 전대미문의 부동산 투기에 휩싸였다. 일본 자본이 뉴욕의 록펠러센터와 할리우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 등을 마구 사들인 일본 사상 최대의 거품경제가 조성됐다. 그 잘 나가는 듯 보였던 자민당 우파 나카소네 정권 시절이 일본 장기 쇠락의 전조였던 것이다.

 

2006년 미국 방문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 위키피디아

두 번째 사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다음은 고이즈미 준이치로(1942~ ) 정권(2001년 4월~2006년 9월). 나카무라는 “‘우정(郵政) 민영화’는 미국이 요망하던 것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지금은 고통이 따르지만 장차 좋아질 것이라고 (당시 고이즈미) 정권은 말했으나, 사회는 고통만 받았을 뿐 좋은 미래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우정공사(우정)는 우편(체신)공사 같은 것으로 일본우정주식회사를 필두로 우편, 은행, 보험 사업으로 구성된 일본 최대의 금융집단이었다. 그 거대 금융집단을 사업 대상으로 삼기 위해 미국 금융자본은 엄청난 개방 압박을 가했고, 마침내 ‘민영화’란 이름으로 그 문을 연 것이 고이즈미 정권이었다. 경제의 활성화, 효율화, 서비스 향상을 모토로 내걸었으나 나카무라가 보기에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끌어들인 그것 또한 일본의 국익을 손상시킨 대표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다.

 

TV 토크쇼에 출연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 나무위키

세 번째 사례는 아베 신조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베 신조(1954년 9월~2022년 7월) 정권(2006년 9월~2007년 9월/ 2012년 12월~2029년 9월). “아베노믹스의 사실상의 실패로, 지금의 물가고에 대처하는 유연한 금융정책을 쓸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무기도 필요없는 것까지 막대하게 사들이고, 나라의 모든 근간이 무너져 지금은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국회의원들이 기소도 되지 않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 나카무라 작가의 아베 정권 평가다. 높은 물가고에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베노믹스로 일본 GDP의 2.5배가 넘는 국채 발생을 통해 쌓아 온 팽대한 정부부채 때문에 쓸 수 있는 정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는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으로 디플레 상태에 빠진 일본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일념으로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는 초저금리의 무제한 금융 양적완화를 강행해 수출을 늘리고 소비도 늘려 장기 디플레 상태에서 탈출하겠다는 정책이었으나, 나카무라가 지적했듯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결과 아베는 암살당하고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 정권을 거쳐 “절대 총리가 될 수 없을 것”이라던 자민당 내 ‘좌파’이자 비주류 이시바 시게루가 집권했다. 이시바의 집권은 말하자면 자민당 내 주류 우파의 연속집권이 망쳐 놓은 일본경제의 실패가 가져다 준 ‘반사이익’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년만에 무너지고 다시 등장한 것이 ‘제2의 아베’ ‘여성 아베’라는 다카이치 극우 정권이고, 다카이치를 총재, 총리로 선출한 자민당은 이른바 ‘도로 아베당’이 됐다.

‘좌파가 나라 망친다’는 거짓 선동, 한일이 닮은꼴

“애국을 강조하는 국회의원일수록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모순. 다카이치 정권은 방위비를 더 늘린다고 하니, 일본은 더 가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로 동서냉전기의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이른바 ‘좌파’가 몰락했다. 일본 보수합동의 1955년 체제(자민당 단독 장기집권 체제)에서도 국회의원 의석 약 3분의 1을 유지했던 일본 사회당은 냉전 붕괴 뒤 급속히 무너져 지금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한국에서처럼 ‘좌파’ ‘진보’에 대한 야유와 경멸이 유행처럼 번지고, ‘좌파는 무능하다’ ‘좌파가 집권하면 나라 망친다’는 우파의 프로파간다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먹혀들었다.

일본사회에서 그런 ‘좌파’ 내지 ‘진보’ 경멸을 더욱 조장한 것이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북(도후쿠)지방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멜트다운과 폭발사고였다. 하필 그때 집권한 정당이 민주당 정권(2009~2012)이었고, 경험해 보지 못한 대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민주당은 집권 3년여 만에 총선에서 대패하고 물러났다. 아베 신조가 그때 총선에서 압승해 기사회생해서 2기 정권을 출범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2011년 3월의 그 대재난 덕이 적지 않았다.

이후 아베는 모든 불행이나 경제난을 ‘무능했던 민주당 탓’ 또는 ‘좌파(진보) 탓’으로 돌리는 선동정치를 일상화했다.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가 애용하는 ‘모든 불행은 바이든과 민주당 탓’이라는 정치 프로파간다의 원조는 아베 신조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아베는 근대 이후 일본 정치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일본의 쇠락은 혁신적 ‘좌파’ 부재 탓

모든 것은 ‘좌파 탓’ ‘진보는 무능’이란 상투어는 한국에서도 일본 이상으로 유행했는데, 그것은 종종 군사정권 시절의 총통제적 장기집권 독재자와 그 측근들을 나라를 일으킨 유능한 영웅으로 재창조 내지 조작한 이른바 (이승만) 건국파 및 ‘5.16혁명’론자들의 경제 기적 성장 신화와 맞물려 있다. 그 신화는 ‘좌파’와 ‘진보’는 ‘위험하고 무능하다’는 상투적 레토릭과도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일본의 쇠락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대재난 시기에 집권했던 민주당 탓이 아니다. 그것은 동서냉전기에 미국의 절대적 지원 아래 한국전쟁을 계기로 ‘고도성장 기적’을 현출해낸 자민당이 바로 그 성공 때문에 거기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세습적 장기집권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요 해석이다.

나카무라가 지적했듯이 일본의 장기 쇠락은 잘 나가는 듯 보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그리고 아베 신조 집권 때부터 본격화했다. 일본은 좌파 때문이 아니라 우파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혁신적 좌파 부재 때문에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일본제국을 전쟁과 패망 쪽으로 몰아간 것도 우익 민족주의 세력이었다.

 

한국 GDP(국내총생산) 실질 성장률과 성장 추이. 통계청 자료

한국 경제 발전, 좌우 어느 쪽이 집권하느냐와 무관

한국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국내 총생산 실질 성장률 추이’ 그래프를 보면, 성장률 변화 추이와 국내총생산(GDP) 성장 추이가 간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 두 가지 그래프 중 오렌지색 성장률 추이 그래프는 한국경제가 1955년 이후 최근까지 다소 들쭉날쭉하긴 했으나 5~10%의 성장률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준다.

들쭉 날쭉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GDP 성장(녹색 그래프)은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급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장률 곡선(오렌지색)에서 이례적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 1979년과 1997년이었다. 1979년은 이른바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유신권력 내부의 암투와 ‘박정희 살해’라는 비극적 사건이 터진 해다. 그보다 성장률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진 1997년은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터진 해다. 모두 3공, 5공의 우파 장기집권 시기 또는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좌파’나 ‘진보’ 집권 때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녹색의 GDP 성장 곡선이다. 녹색선 그래프는 1997년의 ‘IMF사태’ 당시 잠시 주춤거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다 금방 다시 오른쪽 위로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해 그 추세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우파 정권이 ‘빨갱이’ ‘친북 좌파’, 심지어 ‘북한 간첩’, ‘적화’ 등등 입에 담기도 어려운 선동문구로 매도했던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 때도 녹색 그래프의 상승곡선은 거의 아무런 변동없이 일관되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이 그래프는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어느 정권이나 집단이 권력을 잡느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이런 그래프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 당이 집권하면 흥하고 저 당이 집권하면 부패하고 망한다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전선동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 그래프만큼 간단명료하게 보여 주는 것이 있을까. 한국의 경제성장은 누가 또는 어느 세력이 집권하느냐와는 상관없이 생산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일반 ‘백성’과 유능한 기업들, 기업가들이 주로 창출해낸 것이다. 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별 상관이 없다는 애기가 나올만하지 않은가. 저 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썩어 문드러져 ‘적’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이 당이 집권하면 깨끗하고 흥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정치선동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 산업화는 우파가, 민주화는 진보가 했다는 식의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놈이 그 놈’식의 허무주의에 빠져, 선악과 청탁의 구분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물론 결코 아니다.

“나는 미국이 좋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 노예가 아니다”

<그의 왼손은 뱀>이라는 소설을 쓰면서 뱀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나카무라는, 일본에서는 조몬(縄文)시대(기원전 1만 3천년에서 1만년 전의 신석기 시대)까지 뱀 신앙이 퍼져 있었으나 사회가 시스테믹하게 바뀌는 야요이(弥生) 시대(기원전 3~4세기 이후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그것이 배경으로 밀려났다면서, 그것을 다수파 지배세력 종교로부터 탄압받은 역사와 연결시킨다. 뱀이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것도 새로 등장한 주류 지배세력의 종교나 신앙에서 그렇게 몰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요이 시대를 만든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다. 그들이 조몬시대의 토착 뱀신앙을 밀어내고 한반도에서 번성하던 불교 등을 정착시켰다. 뱀을 간교하고 때로 지혜롭지만 이브를 꼬드겨 인류를 타락시킨 악의 화신으로 묘사한 기독교문화도, 거칠지만 자유롭고 생명력으로 충만했던 조몬의 토착 뱀 신앙을 밀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나카무라는 생각한다.

나카무라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괴물인 큰 뱀 ‘야마타노오로치’ 꼬리에서 나온 칼이 일본천황에게로 계승된 ‘3종의 신기’ 중 하나라며, 그 야마타노오로치가 부활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부활한다면) 지금 일본의 최대 권력자에게 칼을 겨눌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최대 권력자)은 일본정부도 천황도 아닌 미국”일 것이라면서 이렇게 글을 맺는다.

“나는 미국이 좋고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은 노예가 아니다. 최근 일본은 뭐든 너무 미국이 시키는대로 한다.” 우익 다카이치 총리가 경주 APEC 정상회담 직전에 일본을 찾아간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에서 ‘노예적 굴욕감’을 느낀 모양이다.

나카무라는 그 글의 서두에서 다카이치 정권 하의 미일관계를 걱정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불경기 탓도 있겠지만 사회가 숨쉬기도 힘들 만큼 답답하다. 이럴 때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방출하듯 사람들은 강행(강압)적인 우파적 정권을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정권은 부유층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서 불경기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데도, 생활의 고통을 주는 원흉이 (자신이 지지한) 정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외국이나 국내의 약자들을 공격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늘 되풀이돼 온 일이다.”

자신들 고통의 원인이 자신들이 지지한 우익 정권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피해자들이나 약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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