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 한국에 온 캄보디아 청년
같은 신자유주의 비극을 왜 다른 눈으로 보는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초에 개봉한 〈시민 덕희〉라는 영화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한 여자 주인공이 중국 보이스 피싱 조직 내 중간 간부의 구조 요청으로 보이스 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이었다. 라미란 배우가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한 여자 주인공으로, 그리고 배우 공명이 라미란에게 보이스 피싱 사기를 행한 자이자 구조를 요청한 보이스 피싱 사기범으로 나온다. 블랙 코미디 영화이기에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에게 장기 적출 당하는 한국 청년
아무리 실화라지만 영화를 보면서 실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의 죽음 관련 뉴스를 접하고 의심을 거두었다. 한국 청년 2000~3000여 명이 고수익 일자리를 찾아 캄보디아에 갔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 사기 조직에 감금된 채 각종 피싱 등 범죄행위를 강요받고 있고, 실적을 못 채운 자는 장기까지 적출된다는 무시무시한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언론은 한국 정부의 무능과 함께, 캄보디아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4천억 원(올해 예산 기준)을 한국으로부터 지원받았음에도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비판 기사를 실었다. 감금에서 겨우 탈출한 한국 청년과의 인터뷰 기사를 배경으로 캄보디아 내 한국 청년의 안위를 걱정하는 최루성 르포 기사 또한 쏟아졌다. 인터넷에서도 캄보디아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게시글이 넘쳐났고 일부 국회의원은 캄보디아 내 범죄조직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서슴없이 뱉어내기도 했다. 필자는 고수익 일자리라는 달콤한 구인광고에 속아서(?)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 뉴스를 보면서 ‘이제는 범죄조직도 글로벌 가치사슬을 만드는구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귀국 앞두고 차가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캄보디아 청년
한국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캄보디아로 갔듯이 한국에도 일자리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 캄보디아 청년이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바다를 건넌 것은 동일하지만 수입에는 차이가 컸다. 비록 허위 광고이지만 캄보디아는 ‘월 1000만 원 수입 보장’이라면, 한국에 온 캄보디아 청년의 수입은 딱 최저임금이었다. 그럼에도 캄보디아 청년은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2016년 3월, 26세의 나이에 한국에 온 누온 속헹(Nuon Sokkheng) 씨.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 땅을 밟은 그녀는 4년 10개월을 채워 2021년 1월 초 귀국을 앞두고 귀국 비행기 표까지 예매했지만 살아서 귀국하지 못했다. 2020년 12월 20일, 자신이 일하던 포천 지역 농장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속헹 씨는 농업국가인 캄보디아 출신으로 2016년 한국에 온 뒤 줄곧 수도권 근처 농촌에서 각종 채소 재배 일을 했다. 농업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연장, 야간, 휴일, 휴게 등 노동시간 조항을 적용받지 않기에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했다. 농촌이다 보니 기숙사 숙소도 변변치 못해 비닐하우스로 된 가설물에서 숙식을 했다. 속헹 씨가 머물렀던 비닐하우스 기숙사 숙소 내부는 곰팡이와 결로로 뒤덮여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마감처리도 안 된 시멘트 바닥이었다.
월급에서 13만 9000원이라는 기숙사비를 공제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숙사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2018년부터 일한 속헹 씨는 포천 지역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던 2020년 12월 20일 사망했다. 가설 시설물이기에 전기가 자주 끊어졌고 전기온돌이 꺼지면서 한파로 혈관이 급속히 수축·파열되었기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인 듯하면서 하나로 겹치는 괴이한 두 장면
이 두 사건은 돈의 가치가 최고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을 집약하는 이정표적 사건들이다.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효율’과 ‘유연성’을 내세우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의 안정성과 권리를 희생시켰다. 시장으로 내몰린 노동은 더 이상 한 국가의 제도적 보호 아래 머무르지 않고, 국경을 넘어 이동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캄보디아 불법조직의 감금 사건과 한국의 이주노동은 같은 구조적 논리 위에 서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인 청년들이 ‘높은 수익’을 미끼로 불법 노동에 포섭되어 국경을 넘었고, 한국에서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합법적 비자’ 아래에 국경을 넘어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내몰렸다. 전자는 비공식적·불법적 착취, 후자는 합법적·제도화된 착취지만, 모두 노동을 비용이자 수익원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의 동일한 구조적 힘이 작동하면서 한국인과 캄보디아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 한국에 온 캄보디아 청년 모두 한국 노동시장 분단 구조의 희생자라는 점이다. 한국 노동시장은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간 격차가 크다. 전자는 고임금의 양호한 노동조건인 반면에 후자는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집약된다. 한국 청년에게는 장시간-저임금의 위험한 2차 부문 일자리에 취업하느니 캄보디아의 월 1000만 원 일자리가 더 매력있게 보였을 것이다. 이는 속헹 씨 죽음으로 증명된 것이기도 했다. 한쪽은 고수익을 꿈꾸며 캄보디아로, 또 한쪽은 집안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허위 광고에 속았든지 지인 소개이든지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은 감금된 채 중국 범죄 조직의 압박・협박 속에서 보이스 피싱, 로맨스캠 등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행위에 가담했다. 그렇더라도 정말이지 범죄조직의 허위 구인 광고에 속아서 간 이들이 다수라 믿고 싶다.
같은 처지 두 나라 청년을 보는 극과 극처럼 다른 우리들 시각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2024년 1인당 GDP가 2700달러, 한국 돈으로 38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농업국가 캄보디아에서 월수입 500~1000만 원을 주는 일자리가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평생을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삶을 산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나는 히틀러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강변하는 아이히만을 보고서 ‘아이히만은 생각하지 않은 잘못, 의심하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언급했다. 캄보디아로 건너간 한국 청년이 한번이라도 합리적 의심을 했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생각하지 않았기에 범죄자이자 피해자로 전락한 한국 청년을 연민하면서 한국 정부가 이들을 방기했다고 언론과 여론은 비난했다.
그런데 월 2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벌겠다고 4천 킬로를 건너온 캄보디아 농업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사람이 살 수 없는 기숙사, 급기야 사망한 사건에는 대다수 한국민과 언론은 침묵했었다. 필자는 언론의 위선과 이주노동자를 하대하는 한국민의 허위의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 청년의 고통에 관심 갖고 주목하는 것만큼이나 한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나아가 이주노동자의 고통을 한국 사회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 한국으로 온 캄보디아 청년.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인식은 극과 극이었고 결말도 달랐다. 캄보디아로 간 한국 청년 중 일부는 살아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 온 캄보디아 청년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10년 세월도 국내 농업 이주노동자 처지 바꾸지 못했다
속헹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농업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은 나아졌을까?
“오늘도 저녁 7시에 해남에서 오는 캄보디아 친구들 세 명을 보기로 했어요. 전화로 얘기해 보니 고구마 밭에서 일한다고 하던데, 임금 얘기랑 산재 얘기 같은데 자세히 들어봐야 알겠죠. 농업 이주노동자는 5인 미만은 산재도 미적용하고 근로시간도 예외여서 정말 열악해요. 몇 년 전 속헹 씨 사건처럼 숙소도 아직 열악하고. 그게 기숙사입니까? 개집도 그렇게는 안 해요.”
두 달 전 만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소장의 얘기이다. 얼마나 다급하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전라남도 해남에서 경기도 안산까지 찾아와 상담하려고 할까? 속헹 씨 사망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