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회의 '트럼프 쇼' 될라…'초청 철회' 요구 확산
'거래적, 일방적, 대결적' 트럼프주의에 반감
동남아 시민사회‧청년층 "자유민주주의 공감"
"트럼프, 예측 불가한 의제를 지닌 인물"
"관세 전쟁, 아세안에 가장 즉각적 위협“
공급망 교란, 부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26일 개막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이제라도 초청을 철회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제사학자이자 정책 분석가인 림텍기 박사는 '아세안 정상회의의 트럼프 대통령, 동남아 상점 안의 황소'란 20일 자 <유라시아리뷰> 기고를 통해 서방 언론과 아세안 주류 매체들을 쉬쉬하고 있지만, "트럼프 초청 반대 여론이 역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초청 철회 요구 배경에 대해 림 박사는 "역사적 선례, 현 경제적, 지정학적 우려와 그의 정치적 스타일과 정책들에 대한 거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트럼프, 26일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예정
아세안 시민사회서 '초청' 철회' 요구 확산
림 박사는 "초청 철회 요구는 '아세안 방식'(합의, 조용한 외교, 중립성, 제도구축)과 '트럼프 방식'(거래적, 일방적, 대결적, 인물 중심적) 간 근본적 불일치에 대한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진행될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이 기간에 별도로 개최될 태국과 캄보디아 평화 협정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트럼프 초청 철회를 요구하는 아세안 지식인들 눈에 트럼프는 △ 변덕과 제도적 규범 무시 △ 미국-중국 경쟁 구도 속에서 아세안 대부분이 원치 않는 선택 강요 △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상징되는 미국의 새로운 패권으로 비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의 참석은 △ 아세안의 결속과 중심성을 훼손하고 △ 논의 초점을 아세안 지역의 현안과 협력에서 미 국내 정치와 미‧중 간 지정학적 대결로 이동시키고 △ 아세안 지역과 세계의 안정성을 해치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 및 정치 스타일을 정당화해줄 우려가 큰 만큼, 아세안의 이익과 원칙 수호를 위해 초청을 철회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동남아 시민사회‧청년층 "자유민주주의 공감"
'거래적, 일방적, 대결적' 트럼프주의에는 반감
동남아 시민사회와 교육받은 청년층의 성향에 대해 림 박사는 "다수는 자유 민주주의 가치에 공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발현돼야 하는지, 외부 세력이 자기 버전을 어떻게 다른 사회에 강요하는지에 대한 모든 형태의 외부 압력에 반대한다"라고 소개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에게 트럼프는 당연히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비친다.
이른바 '트럼프주의(Trumpism)'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기후변화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세안 국가들엔 중대한 생존 문제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또한 세계 여러 독재자에 대한 트럼프의 칭찬은 해당 지역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을 악화하는 것으로 비친다. 특히 인종과 종교, 이민 등에 관한 그의 '분열적' 수사는 대다수 동남아 사회의 다문화 특성과는 배치된다. 그리고 트럼프의 선거 제도 합법성 부정과 군 동원을 통한 독재화 행보, 베네수엘라에 대한 자의적 군사행동에도 부정적이다.
림 박사는 "트럼프 초청은 많은 사람이 글로벌 안정과 민주적 규범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인물을 정당화해주는 걸로 비친다"면서 "반대자들은 자기들 지역(아세안)이 트럼프의 정치적 지배나 새로운 형태의 미국 패권을 위한 발판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관세 전쟁, 아세안에 가장 즉각적 위협"
공급망 교란, 부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당장은 트럼프의 '관세 폭력'이 촉발한 막대한 경제, 산업적 피해와 민생난이 반감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림 박사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아세안의 중단기 경제 전망에 가장 즉각적이고 강력한 위협"이라며 "내부 도전들이 중대하지만, 미국 주도의 글로벌 무역전쟁은 이들을 쉽게 압도하고 지역 발전에 최대 부정적 요소가 될 정도의 외부 충격이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아세안은 특히 전자, 자동차, 섬유 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다. 많은 제품이 아세안, 중국, 기타 아시아 및 유럽 전역에서 제조되며, 부품들이 국경을 여러 번 넘나든다. 트럼프가 발동한 관세는 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교란해 비용을 높이고 물류 체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공급망을 끊은 것이다. 그 결과, 기업들은 수입 부품의 가격 상승과 막대한 공급망 재구성 비용,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급변동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자연히 실업률 상승과 빈곤율 증가, 취약계층 확대 등 민생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트럼프 외교에 대한 불안감도 작지 않다. 트럼프가 집권 1기에 이어, 2기에도 주요 7개국(G7)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등에서 보였던 △ 동맹국 공개 질책 △ 다자주의 무시 △ 일방주의 △ 거래주의 등의 특징을 지닌 MAGA 외교를 구사해왔다. 이런 접근법은 합의, 조용한 외교, 주요 강대국 간 중립과 균형 등을 중시해온 아세안의 중심성과는 배치된다.
"트럼프, 예측 불가한 의제를 지닌 인물"
아세안 정상회의 '트럼프 쇼' 전락 우려
아세안은 또한 이번에 트럼프가 관세 협상을 하면서 아세안 전체가 아닌, 개별 회원국과 '일대일'로 거래함으로써 아세안 내부 결속 약화를 부추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한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국과 비분쟁국 간의 갈등 같은 내부 분열을 이용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감으로써 아세안의 결속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봤다.
그간의 행동거지를 볼 때 트럼프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특정국 정상을 상대로 무역과 안보 사안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압박하거나, 미중 관계에서 택일을 요구함으로써 분위기를 깰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림 박사는 "트럼프는 전통적인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매우 개인적이고 예측 불가한 의제를 지닌 인물"이라며 "트럼프의 참석 목적이 기후변화, 디지털 경제, 인프라에 관한 지역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역 관련 위협과 불만을 던지고, 본인의 정치적 발언 지지를 요구하거나, 중국을 향해 새로운 비난을 하기 위해서란 우려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자칫 '트럼프 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림 박사는 "이번 정상회의가 동남아가 직면한 실질적 도전과 현안이 아닌, 트럼프 본인, 즉 그의 발언, 논란, 대립에 관한 것으로 변질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세안 자체의 목표와 우선순위는 가려지게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