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미학’이 가린 제국주의의 그림자
이시바 메시지 담론에 드리워진 덫
반성의 외피로 제국주의 본질 은폐
1. ‘보수의 성찰’이라는 매혹
2025년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시바 시게루가 발표한 전후 80년 메시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지식사회에서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제도적 실패가 전쟁을 불렀다”며, 군 통수권의 독립과 문민통제의 부재, 언론의 타락과 의회의 무력화를 비판했다. 일본 보수 정치의 중심에서 “전쟁은 제도의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한국의 일부 논자들은 그 메시지를 “보수 내부의 자기반성”이라 평가하며, 일본 정치의 자기갱신 가능성을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 ‘감동의 수용’ 속에는 하나의 착시가 있다. 그것은 ‘성찰’이라는 언어가 내포한 도덕적 면죄의 장치, 그리고 그 언어가 가리는 식민지 폭력의 현실이다.
이글은 이시바 담론이 보여주는 ‘성찰의 미학’이 어떻게 제국의 기억을 비가시화하며, 한국 지식사회가 왜 그 언어에 쉽게 매혹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2. 제도적 실패론의 한계: '도덕적 비가시화'의 수사학
이시바 시게루의 메시지는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은 원인을 “제도적 결함”으로 규정한다. 그는 제국주의의 폭력을 ‘체제의 오작동’으로 환원시키며, 마치 일본 사회가 악의적 가해자라기보다 ‘시스템의 희생자’였다는 듯 서술한다.
이러한 서사는 일본 근대사의 폭력성을 ‘도덕적 의지의 문제’에서 제거함으로써, ‘가해의 의도’를 ‘구조적 오류’로 대체한다. 다시 말해, “잘못된 제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진단은 결과적으로 “제도가 정상화되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생산한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비가시화'의 수사학이다. 식민지 침략과 전쟁범죄는 더 이상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체제의 고장’으로 기술된다. 제국의 욕망은 망각되고, 책임은 제도의 균열 속으로 흡수된다.
이 점에서 이시바의 언어는 반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제국주의의 본질적 폭력을 제도적 실패의 그늘 속으로 숨기는 효과를 낳는다.
3. ‘보수의 성찰’이라는 연출: 반성의 정치적 관리
이시바 담론은 일본 보수 정치가 오랜 침묵을 깨고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도덕적 신선함’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 반성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자원'으로서의 반성에 가깝다.
즉, 반성의 행위가 윤리적 실천이 아니라 보수의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퍼포먼스로 기능하는 것이다. ‘성찰하는 보수’라는 이미지는 일본 보수 정치의 구조적 역사부정을 희석시킨다.
이는 일본 현대정치가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도덕적 재배치(moral redistribution)”의 전형적 사례이다. 가해자였던 일본은 ‘반성하는 주체’로 재구성되고, 피해자들은 그 서사 속에서 점차 사라진다. 반성의 주체가 다시 도덕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순간, ‘성찰’은 면죄로 전환된다.
이시바의 담론은 바로 이러한 ‘반성의 정치적 관리’의 한 형태로 읽혀야 한다.
4. 피해의 부재와 기억의 편향 - ‘내적 성찰’의 윤리적 공백
이시바 메시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피해의 비대칭성’이다. 그는 “일본 국민이 다시는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일본이 다시는 타인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문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서술에서 전쟁의 피해자는 오직 일본 국민이며, 식민지 조선·중국·동남아시아 민중의 고통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식 평화주의가 지닌 고질적 결함-타자의 부재 속에서 형성된 평화의 자기중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적 성찰’이라는 프레임은 결국 외적 폭력의 기억을 가린다. 그리하여 일본의 전후 담론은 끊임없이 “자기 치유의 서사”로 순환하며, 타자의 목소리는 그 내부로 흡수되지 못한다.
이시바의 반성은 바로 이 윤리적 공백의 언어, 즉 ‘자기반성의 형식’으로 포장된 ‘타자 망각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5. 리버럴 보수의 이중 언어 - 성찰의 형식과 권력의 실천
이시바 시게루는 종종 ‘리버럴 보수’로 분류되지만, 그의 정치 행보를 면밀히 보면 그가 지지한 것은 자위대의 역할 확대, 헌법 9조의 해석 변경, 군사적 자율성 강화 등 ‘보통국가화’의 노선이다. 즉, 그의 반성은 ‘전쟁의 실패’를 말하지만, 군사주의의 정당성에는 침묵하는 언어이다.
이런 점에서 이시바 담론은 ‘반성’의 외피 아래 ‘군사적 정상화’를 정당화하는 전략적 언어로 작동한다. 그는 문민통제를 강조하지만, 자위대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며, 일본의 국제적 군사 개입에 대한 윤리적 반성도 제시하지 않는다.
‘성찰의 언어’가 실제로는 ‘권력의 자기갱신’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 순간, 반성은 다시 제국의 언어로 회귀한다. 이것이 바로 일본 리버럴 보수 담론의 근본적 모순이자, 이시바 담론의 정치적 이중성이다.
6. 한국 지식사회의 수용과 ‘반성의 낭만주의’
이시바의 메시지에 대한 한국 지식사회의 반응은, 일본 내부에서 나온 반성의 언어에 대한 ‘지적 낭만주의’를 보여준다.
일본의 보수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지는 순간, 우리는 그 반성의 내용이 무엇을 누락했는지를 잊는다.
한국 지식사회는 종종 일본의 ‘성찰의 미학’을 동아시아 지성사의 진전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착시이다.
그것은 일본식 ‘자기반성’이 사실상 ‘가해 책임의 재배치’임을 간과한 결과이며, 동시에 한국 지성 내부의 ‘타자의 윤리’에 대한 감수성의 결핍을 드러낸다.
진정한 평화의 담론은 일본의 ‘자기 성찰’에 감동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언어가 가린 피해의 기억과 권력의 재배치를 비판적으로 해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7. ‘성찰’은 시작일 뿐, 면죄가 아니다
이시바 시게루의 전후 80년 메시지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일정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도덕적 진전’이나 ‘역사적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성의 언어가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타자의 고통을 호명하고, 피해자의 기억을 다시 사회적 윤리의 중심에 세울 때에만 가능하다.
한국 지식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의 ‘성찰’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윤리적 경계와 역사적 공백을 지적하는 일이다.
‘성찰의 미학’이 제국의 기억을 덮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기억의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시바의 언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단순한 일본 비판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성의 자기 성찰-“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기억하고, 누구의 침묵을 소비하는가”-라는 물음의 출발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