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30명 증원하면 1조4천억 든다며 어깃장
법원행정처, 대법관 증원 요구에 청구서 제시
신축 요구 대법관 집무실 1인당 '75평' 수준
대법관 집무실이 고법 종합민원실보다 커
전용기 의원 "부지 매입만 1조원…황당무계"
"사법부, 자신들의 권력 분산 극도로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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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데 1조 4000여 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관 증원을 하려면 '금싸라기 땅'인 서울 서초구 한복판에 신(新) 청사를 지어야 한다 논리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전국 법원장들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대법관 증원이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역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개혁 논의의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전용기 의원은 15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법관 증원과 관련,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에게 물어봤더니 1조 4000억 원에서 1조 7000억 원 가까이 든다고 답변을 했다"며 "부지 매입비를 1조원 이상 잡아놨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대법관을 증원해야 된다고 하니까 서초동 땅값을 가지고 왔다"며 "(기존 대법원) 그 앞에다 대법원을 더 지어서 본인들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야 되기 때문에, 1조 4000억 이상 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대법관 증원 시 대법원 신청사 신축 필요성 및 소요 비용'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대법관을 증원하면 부지 면적 4만 9586.78㎡(약 1만 5000평), 연면적 11만 6456.68㎡의 청사 신축을 해야하고 이를 위해 총 1조 4695만 14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부지 매입에만 1조 819억 8400만 원(개별공시지가 ㎡당 2182만 원, 평당 약 7200만 원)이 들어가며, 그 외 기본·설계비 137억 원, 공사비·감리비·시설부대비로 3738억 3000만 원이 투입된다고 단가를 잡았다.
법원행정처는 총사업비 15% 증액 등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대상이 될 경우 "사업기간이 1~2년 추가 소요될 예정"이라면서, 1조 4000억 원대에서 신축 공사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원행정처는 필요한 연면적에 대해 ▲대법권 30명 집무실 등 7245㎡ ▲재판연구관, 일반직 등 824명 필요면적 10만 9031.68㎡라고 계산했다. 법원행정처는 "정부청사관리규정 및 법원청사설계지침 기준면적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의 자료를 통해 유추하면 대법관 1명당 247.5㎡의 공간이 집무실로 제공된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75평 수준이다. 이는 신축 중인 다른 법원 청사 설계와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의 크기다.
서초동에 신축을 추진 중인 '서울법원 제2청사 설계 과업지시서'에 나온 서울고등법원장실 면적은 132㎡이며, 일반 판사실은 36㎡다. 법관 집무실만 단순 비교하면, 법원행정처가 요구한 대법관 1인당 집무실 공간이 일반 판사실에 거의 7배에 달한다. 심지어 14명이 근무하게 될 청사 종합민원실(237.81㎡)보다 법원행정처가 요구한 대법관 1인당 공간이 더 크다. 물론 대법관의 업무 성격이나 지위 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대법관 집무실 크기만 보면 '호화 청사'라 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대법관 증원에 대한 '청구서'격으로 1조 4000억 원 이상을 제시했지만, 조희대 대법원장 발언이나 전국법원장 회의 등을 통해 사법부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사를 거듭 나타내고 있어 이들의 요구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대법관 증원의 경우, 대법관 1명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수가 3000건 안팎으로 과도해 구체적인 심리도 없이 심리불속행 되거나 사건이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한 만큼 법원 내부에서도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고심을 통해 재판 받을 기회를 늘리길 원하는 국민의 요구와 달리, 사법부는 사실심 기능 약화 등의 이유로 단기간 증원에 대해 '신중론'을 펴고 있다. 개혁 요구에 한참 미달하는 4명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나왔다. 이에 사법부가 사법개혁의 본질을 흐리고 제 밥 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 의원은 법원행정처의 대법관 증원 시 청사 신축 계획에 대해 "(대법관을) 8명 이상 증원했을 경우에는 재판연구관들도 같이 근무를 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을 지금 대법원에 수용하기 힘드니까 서초동 인근의 땅을 구입해서 이 사람들이 근무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줘야 된다고 하는 핑계를 대고 있다"면서 "굉장히 황당무계하고, (사법부가) 자신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