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과 공무원 손아귀 못 벗어난 극작가협회
국민주권정부가 예술가들 족쇄 풀어줘야 하지 않나
한 극작가가 있었다. 그는 오로지 극작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꾸준히 자기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극작가라는 의미다. 즉, 희곡 예술의 본령을 탐구하면서도 관객들의 사랑까지 받아, 이미 발표된 작품이든 새로 쓴 작품이든 꾸준히 그의 작품이 연출가나 극단에 선택된,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행복한 예술가였다는 말이다.
6년 후 ‘전과자’ 멍에로 돌아온 3년간의 성공적 이사장 임기
그는 자신과 같은 극작가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사)한국극작가협회의 일을 돕다 덜컥 이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후배와 동료들보다 여유가 있거나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이유로, 연극계에서 가장 힘없고 돈없는 극작가협회의 살림을 떠맡곤 했다. 그 역시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직책을 맡았다. 당시 협회는 사무실도 없이 하던 사업 유지하는 것도 힘겨워하던, 협회 명의 통장에는 단돈 200만 원 밖에 없던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는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고, 사업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신세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글빚을 지면서, 공간을 빌리고 사업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3년이 숨가쁘게 지나고, 그의 집행부는 역대 가장 많은 사업을 해 낸 집행부라는 성과와 2천만 원의 통장 잔고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후임 집행부에게 인수인계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6년 후, 그는 협회 이사장이었다는 이유로 전과자 신세가 되었다.
이 비극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해 때문이었다. 많은 사업을 수행하고 꽤나 많은 자금이 오가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이사장 시절 3년은, 촛불혁명 이후 민주 정부가 들어선 때 시작되었는데, 블랙리스트 피해가 폭로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망가 중심의 사업 정책 기조까지 바뀌면서, 그동안 불이익을 받았던 예술가들과 기초예술 사업에도 보조금이 더 많이 지원되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이었다. 실제로는 무능한 장관들과 무책임한 정치인들 덕분에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이 퇴출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서 긴 소송을 해야만 했다. 지원 예산도 그리 늘지 않은 상태에서 쪼개만 놓았기에 넉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가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e나라도움 같은 시스템이 본격 도입되면서, 현장 예술가들의 고통만 더 가중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많은 적들 만들었던 연극걔 개혁과 미투 운동
게다가 촛불혁명의 후폭풍이 예술계에도 거세게 몰아닥친 시기였다. (사)한국연극협회 같은 곳은 정권에 빌붙어 비이성적인 운영을 일삼은 이사장을 퇴출시키고 혁신을 도모하는 상황이었고, 거대한 파도처럼 밀어닥친 연극계 ‘미투’ 운동은 극작가들에게 더욱 더 가혹한 상처들을 안겨주는 상황이었다. 오태석, 이윤택으로 상징되는 거장 극작가들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욕망이 부딪쳤고, 큰 그늘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극작가들의 약진과 재발견이 반가웠던 만큼, 명망가들에게 독점되어 있던 다양한 보조금들을 두고 다툼이 생겨나던 시기였던 것이다.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혁명적 흐름의 선두에서 연극협회의 개혁과 ‘미투’ 운동의 전개에 이바지했던 것이다.
오직 극작가로 살고 싶었지만 혁명적 시기에 한 협회의 이사장으로 책임을 다해야 했던 그는 꽤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를 횡령과 배임이라는 거창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신고를 한 것이다. 그는 모든 회계 자료와 사업 자료, 회의록 등을 제출하면 이 오해들이 풀릴 것이라고 믿고 모든 조사와 수사에 협조했다. 당연히 횡령과 배임은 없었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보조금법 위반”이라는 범죄가 인정되면서 대법원에서까지 벌금형이 확정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계간으로 발행하던 <한국희곡>. 이 잡지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희곡이 공연 여부와 상관없이 수록될 수 있는 잡지로 (사)한국극작가협회가 발행하는 저널이다. 희곡과 논문, 논평의 게재는 물론 독자적으로 신춘문예도 실시하고 있어, 희곡을 완성된 문학으로 인정하고 극작가 등단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한국극작가협회의 기관지는 아니지만 협회의 필요성을 웅변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성과물이 <한국희곡>인 것이다.
원고료 기부한 것이 보조금 전용이라는 검사와 판사들
하지만 이 책은 늘 심각한 적자일 수밖에 없다. 계절마다 천 권 정도 발행되는 이 책이 정가대로 모두 팔린다고 해도 원고료와 편집비, 인쇄비와 발송비를 다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조금 사업으로 진행해 왔다. 하지만 기재부가 관리하는 이 보조금 사업은 사실상 문화예술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모피아들이 보조금 지원 항목을 정해 왔다. 숫자와 승진밖에 모르는 그 문외한들은 첫째, 이는 민간 사단법인이 하는 사업인데 공공성이 좀 있으니 보조금을 일부 지급하는 사업으로 둘째, 매칭펀드 원칙에 따라서 인쇄료와 편집 및 디자인비, 제반 진행비 등은 민간 사단법인이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며, 셋째, 필진들에게 주는 원고료가 가장 중요해 보이니 보조금은 원고료로만 쓰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절절매던 기재부의 명령을 어떻게 일개 예술가 단체가 어길 수 있을까? 협회 이사장은 인쇄비와 편집 및 디자인비, 제반 진행비를 충당하기 위해 알바까지 하며 협회 통장에 돈을 채웠고, 이런 협회의 살림살이를 잘 알던 편집위원들과 게재 작가들 역시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협회에 돈을 보탰다. 그 마음 씀씀이가 감사해 이사장은 자기가 받은 강사료 특강료를 다 모아 연말이면 기부자들에게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 기부금이 원고료를 인쇄비 등으로 전용해서 쓴 것이라고 최종 판결이 난 것이다. 누가 봐도 원고료는 이미 지급 되었고, 이후 자발적인 기부가 이뤄진 것이라 연속성이 없는 행위이다. 당연히 분리해서 봐야 하는 경우다. 하물며 중간에서 1원 한 장도 누락되지 않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버린 것은 괴이하기까지 하다. 수사와 재판은 문재인 정권 때 윤석열 검찰 체재에서 시작되었고, 공교롭게도 형의 확정은 빛의 혁명이 성공한 2025년의 7월이었다.
이런 원님 판결의 논리는 2024년 형이 확정된 윤미향 의원의 사례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2020년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불완전 공소장으로 기소까지 감행한 윤석열 검찰이 개발해 낸 논리고, 이를 받아들여 자발적 기부를 보조금법 위반 범죄로 판결 확정한 곳이 바로 조희대의 대법원이다. 친일파 윤석열 정권에게 눈엣가시같던 윤미향 의원을 수술한 것처럼, 촛불혁명과 블랙리스트 철폐 운동, 미투 운동의 선봉대였던 (사)한국극작가협회를 공중분해 시키기 위해서, 내란공범들은 같은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협회를 파산으로 몰아가는 보조금 전액 환수조치 명령
더욱 황당한 것은, 형이 확정되자마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보조금으로 지급된 전액을 환수조치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한 계절에 3백만 원 밖에 안 되던 보조금이 12회차가 되니 3천 6백만 원이 되더니, 거기에 1심 선고 날로부터 법정 최고 이자를 계산해서, 무려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다. 벌금이라면 노역 하루 당 10만원씩 몸으로 때울 수도 있다지만, 이 돈은 못 내면 매일 이자가 붙을 뿐 아니라 일정 기간을 넘기게 될 때에는 제재부과금까지 붙게 된다고 한다. 순식간에 수억 원 대로 불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을 낼 여력이 전혀 없는 현재의 (사)한국극작가협회는 파산마저 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 파산이 되어서 없어진다면 대한민국 유일의 희곡작가들 대표 단체가 사라지는, 전 세계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나라를 문화선진국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진짜 도둑은 대통령 부부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진짜 도둑은 한 계절에 고작 3백만 원 정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대범하게 전쟁 중인 남의 나라에 국토부 장관을 보내가며 주식으로 장난을 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도둑을 잡는다면서 예술가 멱살을 잡아채는 일에만 능숙한 자들이 공무원이다. 그만큼 현재 보조금법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과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나 관계자들이다. 그러니 문화예술위원회는 이 ‘<한국희곡> 발간사업’이 철저한 감시와 감사까지 다 거치며 정상적으로 종료되었다는 확인서를, 수사 당국에도, 재판부에도 이미 제출했던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이들은 하나같이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말한다. 사뭇 최악의 정치 검사를 검찰총장까지 만들어 놓고, 그 검찰총장이 자기 친구와 소년공 출신 경기도지사를 도륙내고 있는데도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던 촛불 대통령과 어쩜 그렇게도 닮았는지. 우리 극작가 동료들은 마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처럼 이 끔찍한 참사 앞에서 가슴만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그냥 보조금 환수 조치를 중단하기만 해도 거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데,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체부에게 떠넘기고, 문체부는 기재부에 결정권이 있다고 떠넘기고, 기재부는 판결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만 고장난 레코드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이 부조리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구마 대통령의 고구마 공무원들로 다시 돌아가 버린 것처럼.
지옥불 위 예술인들 방치하는 문화예술위원회
하지만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며,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약속했다. 특히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를 국정 3대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문화예술 관련 공무원들은 문화예술가들을 도와 더 많은 국민들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손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당장 뭔가를 해야만 한다.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99퍼센트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술가들을 예비 범죄자로 의심하면서 보조금 유용‘만’ 감시하다가 냉큼 전과자를 만들고 나몰라라 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할 짓이 아니다.
보조금법 위반이라는 이 악마의 치트키는, 기재부가 보스인 보조금 사업이 지금처럼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반란의 사법적 무기인 것이다. 이 황당한 무기에 온 영혼이 상처투성이가 된 (사)한국극작가협회 5대 이사장 외 3인은 벌금형을 다 감당하고도 맘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법인에 부과된 환수금을 못 내고 있다는 부담감과 협회가 혹 해산이라도 될까 봐 느끼는 공포 때문에 매 순간 지옥불 위를 걷고 있는 심정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잔인한 짓을 해 놓고 문화예술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선진국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내러티브 콘텐츠의 기본이 되는 것이 대본이고, 이 대본 중에서 가장 문학적으로 정돈된 장르가 희곡이다. 이를 지키며 스스로 가난해지는 극작가들이 이런 억울한 대접을 받는 일부터 바로잡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문화선진국 아닌가? 심지어 이를 바로잡는데 돈도 들지 않는다. 일부 공무원들의 아집을 걷어 내고, 내란범들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공정과 상식은 이렇게 쉽고 명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