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봉권 띠지 분실 관련된 두 수사관 미리 입맞춘 정황
국회 증인으로 나와 '문건' 보면서 동일한 답변
사전에 함께 준비한 '예상 질문답변지'로 확인
주요 질문마다 "기억나지 않아" 책임 회피 일관
조경식 "배 회장 대북 송금에 이재명 관련 없어"
"비밀스럽게 돈 주는데 경기도가 어떻게 끼냐"
허재현 "권성동이 쌍방울·KH 수사 확대 막아"
"이재명과 이화영을 넘겨준 대가라고 판단"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과 관련돼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서울남부지검 두 수사관이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서울남부지검 압수수색물 보관 담당자였던 김정민 수사관과 남경민 수사관은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청문회 중 동일한 '사전 모범 답변서'를 보고 답변하다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들키기도 했다.
또한 KH그룹 조경식 전 부회장은 증인으로 참석해 쌍방울 김성태 회장과 북한의 업무 협약에 관해 이재명 대통령과 경기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KH그룹 회장의 구명 로비 대가로 48억 원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 개혁 입법 청문회에는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이 발생한 서울남부지검의 수사 관련자 4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정민 수사관, 남경민 수사관, 대구지검 박건욱 인권보호관(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부산고검 이희동 검사(전 서울남부지검 1차장 검사)다. 김 수사관과 남 수사관은 전 씨 압수수색 증거품인 관봉권을 관리했다. 관봉권을 수리한 수사관은 김 수사관이다.
김 수사관은 관봉권 띠지 관련된 질문에 "시간이 많이 지나서 (관봉권이) 띠지에 둘러싸여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검사실에서 띠지 보관 지시가 없으면 보통 보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봉권은 한국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공급하는 밀봉된 화폐다. 액수와 화폐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보증하는 의미로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싼다. 띠지는 관봉권의 출처와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전 씨의 자택에서 현금 1억 6500만 원을 압수했다. 이 중 5000만 원은 한국은행이 밀봉한 권봉권이었다. 김 수사관은 당시 압수 물품을 접수하고 확인해 보관 담당에게 인계하는 역할을 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김 수사관에게 재차 '관봉권이 기억나는지', '관봉권을 받을 때 비닐로 덮어져서 왔는지', '고무줄에 묶여있었는지', '관봉권을 해체한 사람이 김 수사관인지' 등에 대해 물었다. 김 수사관은 시종일관 "기계적으로 일하고 압수수색 물품이 많으므로 기억할 수 없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남경민 수사관 역시 마찬가지 답변을 했다.
김 수사관은 압수수색 물품으로 현금(지폐)이 들어오면 보통 매수 확인을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관봉권 띠지 분실이 현금을 세면서 없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관봉권 돈을 셌냐"고 묻자 김 수사관은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관봉권을 풀어서 센 것이지 않냐"며 "띠지가 기억나지 않는 게 말이 돼냐"고 질책했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김 수사관에게 "검사가 (관봉권) 원형 보존 지시 문서로 했다고 했는데 기억나냐"고 물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남부지검 부장검사였던 박건욱 대구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은 "(검사가) 원형 보존 지시를 했다고 보고 받았다"고 증언했다. 박 부장검사는 일부 검사들이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띠지 스티커를 훼손해 증거 인멸하라는 지시를 한 적 없다"고 답했다.
남, 김 두 수사관이 청문회를 앞두고 사전에 입을 맞춘 정황도 드러났다.
장경태 의원은 "<연합뉴스>가 '검찰 관봉권 띠지 유실 관련 청문회 답변 모범 답안?'이란 제목의 사진 기사를 보도했다"며 "질서유지권의 발동을 요청한다. 청문회에 회의 진행 방해 물건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용민 법안1심사소위원장(민주당)이 즉시 확인해 보니, 남·김 수사관이 내용이 흡사한 '예상 질문·답변지'를 각각 가지고 있었다. 두 수사관의 실제 답변을 비교해 보니 문건과 거의 일치했다. 두 사람은 해당 답안을 지난주 일요일 각자의 집에서 작성한 뒤, 김 수사관이 남 수사관을 찾아가 공유했다고 답변했다.
장 의원은 "청문회는 본인들이 기억하는 내용을 진실로 답변하라고 있는 자리"라며 "정답을 외워서 답변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자료가 일치하면 사전 모의 정황이 드러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답변한 것을 우리가 믿겠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박건욱 부장검사와 이희동 차장검사가 떨어져 있다가 자리를 옮겨 대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맞춘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두 검사는 윤석열과 오래 함께 일한 '친윤' 성향 검사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KH 조경식 부회장은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KH그룹 회장의 구명 로비 대가로 48억 원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서영교 의원이 권 의원과 롯데호텔 로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이자 조 전 부회장은 "KH그룹의 일 때문에 만나게 됐다"며 "(48억 원은) 그쪽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답했다. 서 의원은 또한 녹취록을 공개했는데 녹취록에서 권 의원은 "조 회장하고 나하고 한번 보자. 액수는 말하지 않아도 조 회장은 다 알고 있다"면서 "나도 이런 걸 함부로 떠드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 전 부회장은 녹취록에 대해 "강원도 영월에 권 의원의 친구가 있는데 그의 소개로 만났다"며 "배상윤 KH그룹 회장이 인터폴 적색 수배자로 캄보디아에 있는데 귀국 구명을 위해 만났다"며 "권 의원과 배 회장을 내가 직접 통화 연결도 시켜줬다"고 진술했다. 또한 그는 배 회장이 한 <SBS> 쌍방울 대북 송금 인터뷰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 없다고 설명했다.
조 전 회장은 "비밀스럽게 돈을 주는데 경기도가 어떻게 끼겠냐"며 "(당시) 이재명 지사님하고 경기도하고는 전혀 무관한 일인데"라고 밝혔다.
그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관련 수원지방검찰청 청사 내 술자리 의혹에도 구체적 증언을 했다. 조 전 부회장은 2023년 11~12월 수원지검에서 3차례 외부 음식을 반입한 술자리가 있었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모두 안부수(아태평화교류협회장)의 작품이고 김성태 회장 등은 이용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부회장은 자신이 이 사실을 폭로하기로 한 것에 대해 검찰의 강압수사 때문이라고 했다. 배상윤 회장의 부인과 자녀는 모두 신용불량자가 됐고, 검찰이 괴롭혀서 김성태 역시 회유를 당했을 거라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당시 검찰이 김성태 회장에게 유명 정치인 내용을 넣어야 살려준다고 했다고 한다"며 "우리 그룹 임원진 17명 구속됐었고 다음 타겟이 KH그룹"이라고 했다.
조 전 부회장의 증언을 보도했던 허재현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기자는 증인으로 나와 "조 전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의 녹취록과 문자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신빙성이 높은 자료를 다수 확보해서 보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성동 의원이 이재명, 이화영을 넘겨주는 대가로 김성태의 쌍방울과 KH그룹으로 수사 확대가 되지 않도록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권성동 의원이 통일교 쪽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사건 방식으로 검찰에 로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