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에 자아도취' 트럼프-모디 불화 점입가경
"트럼프 '추앙받는 정치가 모디' 이미지 해체"
트럼프, 모디 방중에 쿼드 인도 정상회의 불참
바이든 때 인·태 전략가 캠벨·설리번까지 등판
'불화' 출발점은 트럼프의 파키스탄 문제 개입
'화룡점정'은 인도 수입품에 50% 관세 폭탄
"인도를 직접 적대국 품에 밀어 넣을 수도"
"관세, 러시아 석유 구매, 재점화된 파키스탄 관련 긴장으로 인해 미국-인도 관계는 유감스럽게도 급격히 퇴조하고 공개적 모욕과 비난이 난무한다."
전임 조 바이든 미 민주당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아시아 차르'로 불렸던 커트 캠벨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바이든의 책사'였던 제이크 설리번은 '미-인동맹을 위한 변론'이란 4일 자 <포린 어페어즈> 공동기고에서 현 양국 관계를 이렇게 진단하고 미국이 인도를 밀어낼 게 아니라 끌어당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럼프-모디 "모두 권위주의에 자아도취"
바이든 때 인·태 전략가 캠벨·설리번 등판
불과 8개월 전까지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고위 책임자였던 캠벨과 설리번이 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직접 비판하고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이다. 현직 시절 이들은 대중국 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행에 옮긴 실무 책임자로서 그 핵심축인 '인도'의 마음을 사는 데 공 들여왔다.
극히 권위주의적이며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공통분모로 지닌 트럼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있는 만큼 미인 관계가 한 차원 더 깊어질 걸로 예상했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인도 역사학자인 카필 코미레디는 "미국이 30년간 인도에 구애해 온 걸 트럼프가 몇 달 만에 날려버렸다"란 31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현재의 미인 관계 불화를 인도인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 출발점은 트럼프가 지난 5월 인도-파키스탄 군사 분쟁을 종식시켰다고 자화자찬한 일이다. 코미레디에 따르면, 이 일은 파키스탄과의 분쟁을 엄격히 '둘 간의 문제'로 여겨온 인도를 격분시켰고, "내 친구"라며 트럼프와 친함을 자랑했던 모디에게 굴욕감을 안겼다. 나아가 트럼프는 지난 6월 파키스탄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 사이드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화룡점정'은 인도 수입품에 50% 관세 폭탄
"트럼프 '추앙받는 정치가 모디' 이미지 해체"
그뿐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인도 경제에 대해 "죽었다"고 깎아내렸다.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8월 27일부터 인도산 수입품에 5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한 건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이 조치로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도의 제 정파의 반발을 샀다. 코미레디는 "트럼프는 거의 하룻밤 새 (미-인) 관계를 위태롭게 하고 공들여 만든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정치가 모디'란 이미지를 해체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모디 총리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1일 톈진에서 열린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앞서 31일엔 중-인 정상회담이 있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과 모디 총리 모두 양국은 "파트너이지 적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해묵은 국경 분쟁의 합리적 해결,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대한 공동 대응 등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 모디는 "양국 협력은 21세기가 진정 아시아의 세기가 되도록 할 것이고, 양국이 손을 잡고 장차 국제 사무에서 다자주의의 힘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중' 모디, 시진핑·푸틴과 친밀감 과시
트럼프, 10일, 인도 쿼드 정상회의 거부
트럼프가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멤버로 대중 봉쇄에 필수적인,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인도를 아예 중국 쪽으로 밀어내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1일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이제 인도는 자기들의 관세를 없애겠다고 제안했지만 늦다. 인도는 수년 전에 그랬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관세 압박을 이어갔다.
게다가 오는 10일 인도에서 열릴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이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일 자 사설에서 "동맹국과 파트너에 대한 미국의 공약이 얼마나 느슨한지를 드러내며, 대립·고립·배타성이 특징인 미국 주도 소집단의 딜레마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태생적 동맹국들"이라면서 오늘의 미-인 관계 기반을 놓은 빌 클린턴을 시작으로 조지 W. 부시("인간 자유를 위한 형제들")를 거쳐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21세기를 규정하는 글로벌 협약의 하나")에 이르기까지 지난 30여 년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역대 행정부들과는 사뭇 다르다.
"미-인 관계 현 궤적, 복원 힘든 분열 위험,
인도를 직접 적대국 품에 밀어 넣을 수도"
트럼프 2기에 들어서 자신들이 정성들여 쌓아 놓온 미-인 관계가 흔들리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보다 못한 캠벨과 설리번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인도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 부상한 배경에 대해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오랫동안 인도의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지위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경제적·기술적 역동성과 성장하는 글로벌 리더십 역할에서 기회를 보았다. 최근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지키려는 인도의 열망이 중국의 무모한 모험주의를 효과적으로 억제해온 미국과 전략적으로 일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부시와 만모한 싱 총리가 맺은 미-인 민간 핵협정, 바이든과 모디 간 AI, 생명공학, 항공우주 등 중요 분야에서의 협력을 들었다.
캠벨&설리번은 "현재의 궤적은 양국 모두에 큰 해가 될 만큼 복원하기 힘든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은 결국 인도를 직접적으로 적대국들의 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모디의 최근 중국 방문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비동맹 전통이 강한 인도가 원치 않는 만큼 한-미, 미-일 등 상호 방위 조약을 토대로 한 전통적인 동맹이 아니라, "기술, 국방, 공급망, 정보, 그리고 글로벌 문제 해결에 관한 일련의 상호 약속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동맹과 전략적 자율성, 배타적 아냐"
"동맹, 주권 희생 아닌 공통 목적에 관한 것"
미인 관계는 '커다란 유리집" 같이 매우 취약하다면서 현재의 불화를 극복할 몇 가지 조언도 곁들였다. 캠벨&설리번은 △ 트럼프의 '광인' 행동은 거래 성사의 전주곡일 수도 있음을 인도 측에 이해시켜라 △ 인도의 민주주의 후퇴 문제는 미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 후퇴를 인정하면서 솔직하게 대화하라 △ 인도는 국방·에너지의 러시아 의존을 끊는 전략적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한다 △ 워싱턴은 인도의 미래에 대한 미국의 이익은 다면적이고 중대한 만큼 인도와 파키스탄을 동일선상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캠벨&설리번은 "민족주의적 감정이 고조된 지금, 인도 일부에선 미-인동맹이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을 침해할지를 물을 것이다...그러나 전략적 동맹은 전략적 자율성과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인도와 미국은 모두 자랑스럽고 독립적인 국가다. 동맹은 주권 희생이 아닌 일치와 공통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워싱턴의 가장 중요한 동맹들 중 다수가 좌절을 겪고 국내적 불화를 초래했다는 점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며 "예전에 미국과 한국 간 북한 위협 대처 방안을 두고 의견 충돌이 있었고 한반도 주둔 미군이 연관된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한국 여론이 주기적으로 크게 격동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과거에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 미국과 인도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