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맴돌이’에 빠진 국민의힘
국민의힘 극우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개미의 ‘죽음의 맴돌이(death spiral)’는 섬뜩한 비극이다. 시력이 약한 개미들은 앞서 지나간 개미가 남긴 페로몬 냄새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한다. 그러나 잘못된 경로에 들어서면 원형 궤도를 끝없이 돌며, 탈진과 기아 끝에 집단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방향 감각을 잃고 본능적 복종에 갇힌 군집이 자멸로 향하는 전형적 장면이다.
반성과 쇄신 대신 선동, 광신, 증오 택한 소멸의 소용돌이
지난 8월 26일 새 지도부를 출범시킨 국민의힘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장동혁 의원을 신임 당대표로 선출한 것은 지도부 교체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의힘이 스스로를 폐쇄적이고 파괴적인 '죽음의 맴돌이'로 몰아넣는 자해적 선택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란수괴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전광훈 목사·전한길 강사·장동혁 의원 등이 그 뒤를 따르고, 100여 명의 국민의힘 의원들과 수십만 극우 당원들이 합세하며 거대한 정치적 맴돌이가 완성됐다. 현실과 민심을 외면한 채, 자기 확증의 좁은 회로 속에서 같은 구호와 같은 증오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세력 확장의 미래가 아니라, 지지 기반의 고립과 정치적 소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장동혁 의원의 대표 선출이 갖는 상징성이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내란책동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윤 어게인’을 외친 인물이다. 그는 당선 직후 "모든 우파 시민과 연대해 이재명 탄핵 시위를 광화문에서 수백만 명 규모로 열겠다"고 공언했다. 이 발언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선다. 합리적 보수의 이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극우 선동과 정치적 광신을 조직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자기 반성과 쇄신을 통해 민주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정당이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전당대회는 국민의힘이 스스로를 정치적 ‘죽음의 맴돌이’에 묶어버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 12월3일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당내 갈등은 찬탄파(탄핵 찬성 세력)와 반탄파(탄핵 반대 세력)로 당을 분열시켰으나, 장동혁 체제의 출범은 극우 반탄파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는 보수정당이 민주주의와 헌법적 질서를 부정하는 극우정당으로 전락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결별하고 민주적 보수로 재탄생할 마지막 기회였으나, 당은 극우의 늪으로 돌진하며 스스로를 협소한 이념의 광장으로 몰아넣었다. 장동혁은 경선 기간의 선거운동에서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며 불법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당선 후 윤석열 면회를 약속하며 극우 세력과의 동맹을 공고히 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민주적 보수정당이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 세력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일부 보수 평론가는 “한국의 보수 세력은 죽었다”며 탄식했고, 일부는 내란 동조 세력이 당 지도부를 장악함으로써 정당 해산 가능성마저 제기한다.
황교안 전광훈 전한길 신천지 통일교 극우 유튜브들…
사실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그 뿌리는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탄핵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 황교안은 개신교 극우 세력과 결탁하며 당의 극우화를 본격화했다. 자기 당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정치적 참사를 겪은 당원들은 민주당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키웠고, 이를 전광훈 목사와 같은 극우 선동가들이 교묘히 조장했다. 전광훈은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과 문재인 정권 전복을 외치며 극우 세력을 결집시켰으며 그의 ‘자유마을’ 커뮤니티는 극우 개신교 세력을 조직화하고 정치적 폭력을 부추겼다. 최근 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며 내란 선전·선동 혐의로 조사받는 그는 한국 보수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보수 성향의 개신교 세력은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 누리던 특혜가 민주진보 정권의 등장으로 상실되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진보 정권 타도에 앞장섰다. 윤석열 집권 이후 극우화는 절정에 달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윤석열은 당내 기반이 취약해 극우 세력에 의존했고, 이는 당의 이념적 편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기에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가세해 극우편향을 선동했다.
윤석열 탄핵 이후 극우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정통 보수 개신교에 속하는 손현보 목사와 공무원 시험 강사 출신 전한길이 장외집회에 나서며 윤석열의 불법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비판했다. 전한길은 9급 공무원 시험의 한국사 과목 폐지로 강사 생활의 위기를 맞자, 탄핵 반대 운동을 인생반전을 위한 정치적 기회로 삼은 듯 부정선거 음모론과 탄핵 반대를 선동하며 극우의 선봉에 섰다. 신천지, 통일교 등 비정통 교단을 포함한 보수 기독교 세력은 지난 10여 년간 신자들을 당원으로 대거 유입시켜 당의 기반을 장악했다. 이는 국민의힘의 극우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질적인 전환임을 보여준다.
박근혜 윤석열 탄핵으로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힌 극우 세력
국민의힘은 스스로를 진정한 보수정당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보수의 핵심 이념인 법치주의와 자유주의는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 책동을 옹호하는 순간 짓밟혔다. 장동혁 체제는 윤석열의 무죄 석방과 정치적 복귀를 목표로 하며,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훼손하는 태도를 반복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보수정당이 아니라 극우정당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한국의 보수는 역사적으로 진정한 보수라기보다는 민주적 가치를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여기고 독재 권력을 모델로 삼은 극우 세력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통해 특혜를 누리던 보수 세력은 두 명의 대통령(박근혜, 윤석열)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하자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혔다.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 중국 선거개입설 같은 거짓 선동에 열광하며 이성을 상실했다.
거대한 극우 당원들의 존재는 국민의힘이 전통적 보수로 회귀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도 극우 당원들의 파워는 명확히 드러났다. 30년 정치 경력의 김문수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유력했으나, 당원들은 윤석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장동혁을 선택했다. 김문수가 차기 대권을 위해 윤석열과 결별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제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렬 당원들의 정당, 즉 내란수괴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의 극우 정당인 것이다.
극우화된 국민의힘의 정치적 미래는 암울하다. 역대 총선에서 극우 지도부가 이끈 선거는 예외 없이 참패로 끝났다. 박근혜 탄핵 이후 황교안 체제에서 치러진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사상 최저인 103석에 그쳤고, 민주당은 180석으로 대승을 거뒀다. 윤석열 집권 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108석으로 폭락한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범민주진보 진영은 192석이라는 사상 최대 의석을 확보했다.
강경 구호와 음모론에 의존하는 ‘TK 자민련’
장동혁의 국민의힘 역시 반성과 쇄신 없이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와 유사한 참패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조차 없는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정부가 안정적 국정운영을 펼칠 경우 만년 소수 야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극우화는 국민의힘을 지역적으로 대구·경북(TK) 중심의 ‘TK 자민련’으로 축소시켰다. 지지 기반이 좁아질수록 당은 강경 구호와 음모론에 더욱 의존하며 자기 강화의 악순환에 갇혔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붕괴를 초래하는 심각한 위협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던 한동훈, 조경태, 안철수 등 찬탄파는 전략적 판단 착오로 극우 세력에 당을 ‘헌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동훈은 보수의 명운이 걸린 이번 당권 전쟁에서 불출마라는 전략적 판단착오를 저질렀다. 반탄파와의 진흙탕 싸움에서 흙탕물을 뒤집어쓸 위험과 지방선거 참패 가능성을 우려한 결정이었겠지만, 이는 전당대회의 흥행 실패와 그의 존재감 약화로 이어졌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자파 계보의 김근식이 낙선할 정도로 한동훈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됐다. 홍준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탈당한 뒤 해외에서 당의 극우화를 비판하며 방관했다. 조경태와 안철수는 단일화 실패로 결선 진출조차 하지 못하며 극우의 당 장악을 막지 못했다.
전당대회 직후 보수 진영에서는 신당 창당을 모색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홍준표는 국민의힘이 자생력을 잃었다며 보수 신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동훈, 조경태, 안철수 등은 장동혁 체제의 강경한 ‘내부 총질 정리’ 방침에 밀려 신당 창당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치주의와 자유주의, 보수의 가치 재정립이 유일한 생존의 길
하지만 보수 신당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과거 박근혜와 유승민의 신당 창당 시도가 '배신자'라는 낙인과 보수 유권자들의 외면으로 좌절된 전례가 이를 보여준다. 다만 보수 세력의 전체 지지율이 대략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러 있다면, 신당이 보수층의 빈 공간을 파고들 여지는 있다. 결국 신당의 성패는 한동훈, 홍준표 같은 유력 대선 주자들의 합류 여부와 그들이 얼마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중도 보수의 설 자리를 앗아갔고, 한국 정치 지형에서 합리적 보수의 실종은 민주주의의 균형을 위협한다. 국민의힘은 개혁을 금기시하고 쇄신을 ‘배신’으로 낙인찍으며 극우 결집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 길의 종착지는 자명하다. 국민과의 접점이 단절된 정당은 고립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불안정 요인으로 전락할 뿐이다.
죽음의 맴돌이에 빠진 개미 무리는 자력으로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내란과 비상계엄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전광훈, 전한길 같은 극우 선동가와 결별해야 한다. 법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TK 자민련’으로 쪼그라들며 한국 민주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합리적 보수의 부활은 정상적인 정당체제의 복원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