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유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난데없는 트럼프의 SNS 도발이 긴장과 불안감을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고든 창과 모스 탄의 개입이 느껴졌다. 화도 났고, 걱정도 됐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차에서 내릴 때 트럼프의 영접 태도를 보면서 잘 정리되었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트럼프가 이 대통령의 등을 토닥거리는 모습에서 회담준비팀의 치열한 노력이 느껴졌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 대통령의 화룡점정이 가능했다. 긴장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회담 전체에 대한 촌평은 안도, 안쓰러움과 흐믓함, 앞으로의 노력의 중요함이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이제 구체적인 쟁점들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중요할 것이다.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문제 중심으로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1. 트럼프가 김정은과 우호적인 관계를 말하면서도 비핵화, 비확산을 얘기한 것은 매우 중요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할 것이라는 표현도 중요했다. 특별히 미중 관계, 미러 관계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트럼프의 발언도 느껴졌다. 핵보유국이고자 하는 북한이 원하지 않는 논리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대화의 무대로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과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쉽지 않은 발언을 했다. 내 식으로 해석한다. "우리 역할은 한계가 있으니 네가 잘해 줘, 트럼프야" 이재명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를 거론하면서 트럼프를 치켜세운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백미였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외교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외교무대로 나오게 만드는 노력은 우리도 해야 한다.
2. 이 대통령이 미래형 한미동맹의 발전에 대해 말했다. 아마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후 회담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의 기내 발언(주한미군의 유연화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지만 미래형 전략화는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처럼 된다면 그나마 최고라고 본다. 전작권전환 문제, 국방비증액 문제, 주한미군분담금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의 논의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의 구조적 제약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주권과 국익을 어디까지 지켜나갈 수 있느냐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력'이라는 말을 많이 강조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경제력, 군사력을 넘어 국민적 지지와 국제적 권위까지 감안한 국력이 있어야 구조적 제약을 넘어설 힘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모든 행위자들의 전략이 재구성되는 요동치는 상황의 변화가 맞물려야 한다.
3. 트럼프가 한일관계를 많이 강조하는 걸 보면서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먼저 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역사 문제에서 한국보다 일본 입장을 비호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전략적 기조를 잘 잡아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전략적 기조를 잡아 놓고, 세부적으로는 서로가 해석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외교적 수사에 바탕을 둔 합의다. 한일 정상 합의문에서 약간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타협의 필요성과 해석의 자율성을 잘 결합시켜야 한다는 맥락에서 본다면, 선방했다고 본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다.
4. 트럼프가 이 대통령의 실용적 균형외교를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다행이라고 본다.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중국 문제를 잘 풀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은 나름 의미있는 장면이다. 잘하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트럼프와 이 대통령이 같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한미관계를 넘어 세계 정치의 지정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주 APEC에서 이재명-트럼프-시진핑-이시바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을 그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정은이 올 리가 없지만 그것을 계속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북, 북미 양자관계만이 아니라 다자적 외교의 중요성을 북한이 알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질서가 종식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교가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그래서 더 외교가 중요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김여정 등이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에서 벗어나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고 있는 정상국가의 외교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나고 이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특사단을 파견한 것처럼 북한에도 특사단을 파견했으면 좋겠다.
아직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상황은 잘 정리된 것 같고, 트럼프-김정은 케미 못지않은 트럼프-이재명 케미가 형성된 것 같아 다행이다. 대통령이 고생한다고 해서, 모두 대통령의 입과 행동만을 쳐다볼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없는 쓴소리, 쎈소리는 또 시민들이 해야 할 몫이다. 그것을 보아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래야 그런 시민의 목소리를 활용해서 외교의 공간에 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