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와 ‘일본해’ 명칭을 다시 생각하다

상대국 배려와 공존의 새로운 시각 필요

2025-08-16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기

얼마 전, 한국을 국빈 방문한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동해’ 주변의 평화 유지가 중요하다며 역내 안정을 위해 한국 정부와 협력 및 상호 지지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동해에서의 평화와 안정, 항행·항공 자유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유엔(UN)해양법 협약을 비롯한 국제법에 근거한 평화적 해결 원칙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조금은 의아한 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뜻 들으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마치 우리나라의 ‘동해’에 관한 합의를 했다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럼 베트남 서기장이 여기에서 말한 ‘동해’는 베트남이 지칭하는 베트남의 동쪽 바다로서의 ‘동해’였다.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한 시민이 독도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2023.8.16. 연합뉴스

‘일본해’ 명칭, 당연히 부당하다

우리나라의 ‘동해’와 ‘일본해’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세계 최대 검색사이트 구글이 국내 일부 지역 날씨 서비스에 ‘일본해’로 표기해 비난을 받은 바 있었다.

물론 ‘일본해’라는 명칭은 당연히 부당하다. 근본적으로 지금의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확정되었다. 이 명칭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있을 때 국제수로기구에 의해 표준화되었다. 즉, 1929년 일제 강점기에 국제수로기구에서 처음으로 세계 해양 명칭의 표준안을 결정하여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라는 해도집을 발간할 때 일본의 주장에 따라 ‘일본해’로 표기되었던 것이다. 한국은 광복 후 1957년에야 비로소 국제수로기구에 가입하였고, 1992년부터 ‘일본해’ 명칭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일본은 ‘일본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본해’ 명칭은 자기중심적인 일본 행태의 대표적인 사례다.

구체적으로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해양 명칭을 살펴봐도 아라비아해, 카리브해, 홍해, 흑해, 발트해 등등으로서 바다 이름에 특정 국가의 국명을 붙인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해라는 명칭은 있지만, 이 바다는 노르웨이 외에 다른 관련 국가가 없는 바다이다.

특히 두 나라 이상의 다수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해역을 어느 일방의 국가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에 있는 바다 이름은 아드리아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사이의 바다는 태즈먼해이다. 다만 특수한 예외의 경우도 존재한다.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동티모르 사이에 있는 ‘티모르해’라는 바다의 경우다. 하지만 이 ‘티모르해’는 바다 명칭에 오히려 국력이나 지명도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신생국 티모르의 입장을 배려하여 ‘티모르’라는 국명을 붙인 매우 예외적인, 그리고 양국이 ‘합의’한 경우다.

‘동해’ 명칭도 국제적 기준은 아니다

그런데 제3자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동쪽 바다라는 의미의 ‘동해’ 명칭을 견지해나가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본해’를 고집하는 것과 유사하게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해’라는 방식으로 ‘방위’의 개념을 바다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 역시 국제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유럽의 ‘북해’다. 그러나 이 ‘북해’는 단지 영국만이 아니라 네덜란드 및 독일 등 유럽 전체 대륙의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는 명칭이다.

‘동중국해’, 중국은 ‘동해’라 부른다

서두에서 베트남에서도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동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중국해(East China Sea)’는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명칭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남중국해’ 역시 중국 내에서 사용되는 명칭은 ‘남해’다.

우리는 지금 중국의 ‘동해’를 ‘동해’로 지칭하지 않고 ‘동중국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니, 자국에 이미 ‘동해’라는 바다가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의 입장에서도 또 다른 ‘동해’라는 우리의 명칭에 대하여 지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갈등 문제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침략과 난징대학살 등 역사 문제를 결자해지의 자세로 반성할 때 비로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 간의 문제든 국가 간의 문제든,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반성이라는 전제가 없이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양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본말전도일 수밖에 없다. ‘동해’ 명칭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은 한국이 그토록 반대하는 ‘일본해’라는 명칭을 스스로 거두고 다시 한국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동해’ 명칭에 대한 대안으로 ‘동아시아해’ 혹은 ‘동아해(東亞海)’라는 중립적인 명칭부터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해’와 ‘동해’ 그리고 ‘동중국해’ 관련 명칭 논란은 ‘근대’에 이르지 못한 자국 중심주의의 사유방식들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다 명칭에 대하여 국제적 기준과 상대국에 대한 배려에 토대를 두고 공동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고 협의하는 작업은 동북아시아의 공존과 협력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하나의 중요하고도 구체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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