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민족음악 알릴 것"
'북한 클래식'의 꽃, 소해금 연주자 량성희 씨
북한 정상급 연주자의 남한 무대 최초 진출
해방 80년 기념 항일투쟁 음반 발매, 공연
북한은 60년대 이후 서양의 음계를 수용할 수 있는 전통 국악기 개량 사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개해 80년대에 완성했다. 그것이 '조선 클래식'인데 이는 민족적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인민과 폭넓게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서양의 고전 음악 장르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악기와 함께 개량된 국악기를 혼합해 사용하는 '배합 관현악'이 조선클래식을 대표한다. 웅장한 서양 오케스트라의 음향 위에 민족 악기를 더해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중 ‘조선민족악기의 꽃’으로 불리는 것이 ‘소해금’이다. 소해금은 전통 악기인 해금을 개량해 탄생한 4현 악기로, 서양의 12평균율을 받아들여 음역과 표현력을 확장하며 바이올린처럼 풍부한 음색을 낸다. 민족 관현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는 핵심 악기다.
재일 조선인으로 20년 가까이 북한 금강산가극단에서 활동했던 량성희 씨. 그를 통해 이제 북한의 '조선 클래식'을 남한에서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13일, 량성희는 해방 80주년을 기념해 항일혁명투쟁을 소재로 한 음악 초연 음반을 국내에 최초로 낸다. 이 음반에는 북한 곡 5곡이 포함돼 있으며, 지난 7월 녹음을 위해 내한한 기간에는 한국 최초로 소해금을 위해 창작된 2곡의 곡도 헌정 받았다. 남한 음악가 이종구 교수의 곡 <광시곡>과 <경기의 흥>이다. 북한 소해금 연주자가 남한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것은 최초의 일로, 남북 음악 교류사에 작은 역사를 이뤄냈다.
11월에는 국내 첫 단독 콘서트도 가질 예정이다. 내년에는 유럽 무대에도 데뷔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년 넘게 소해금 연주로 재일 조선인 사회에 기쁨과 희망을 연주하던 그가 이제 한국을 기반으로 소해금과 북한 민족음악의 매력을 알리고, 재일 조선인의 삶을 세계에 전하고자 한다.
“처음 한국 활동을 시작할 때는 남한 내의 북한에 대한 반감을 우려해 주저했어요.”
그의 연주와 소해금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그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 남북 교류에 대한 염원이 마음을 돌리게 했다.
”20년 가까이 금강산가극단에서 일본 전국을 순회하면서 조선(북) 예술을 통해 동포들과 일본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활동을 해왔고, 그것도 매우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이 과업은 후대에게 넘겨주고 저는 조선 악기 연주자로서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량성희는 소해금의 매력에 대해 ”우아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사람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해 가슴 깊은 곳의 있는 외침이나 기쁨,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그런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북)의 유일한 예술잡지인 ‘조선예술’에 따르면 해금은 우리 민족의 전래악기로서 8세기 전반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말엽부터는 독주 악기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이 매체는 그래서 "우리 민족의 지혜와 슬기가 깃들어 있는 전통적인 민족악기인 해금을 오늘의 시대적 미감에 맞게 새롭게 개량한 해금속 악기들 중 하나"라고 소해금을 소개하고 있다. "고음악기로서 민족적 정서가 풍기는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연주법이 매우 다양하고 형상력이 풍부하다"는 설명이다.
소해금의 발전에는 '국보적 연주가'로 불리는 신률과 해금 교육의 이론화를 이끈 한남용의 공로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신률은 5살에 바이올린 연주자로 입문해 13세에 소해금으로 전환한 신동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한남용 교수와 함께 소해금 발전에 주력했다. 량성희가 금강산가극단 입단 후 만난 스승이 바로 신률이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소해금 연주가로 꼽히는 량성희는 일본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중급부 1학년 때 소해금을 처음 접했다. 그녀는 2007년 4월 금강산가극단 입단해 최근까지 인민배우인 신률 선생으로부터 배웠고, 2016년 제22차 조선 최고의 예술가 경연대회인 <2.16예술상> 민족현악기 부문에 입상하고, 2018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서는 소해금 독주〈회양 닐리리〉로 은상을 수상해 최고의 소해금 연주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량성희는 북한을 '조국'으로, 부모님 고향인 남한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북과 남, 일본 어디에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량성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역 땅에서 태어났지만 조선학교를 다니며 우리말과 글, 우리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해금을 만나 우리 민족 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에게 '조선'은 분단 이전의 통일된 한반도를 지향하는 상징적 국적이자 재일 조선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은 말이다.
량성희의 국내 음반 발매와 공연을 기획한 이철주 '예향만리' 프로듀서는 “조선(북)의 음악은 국악기의 개량으로 전통의 맛과 멋이 훼손이 되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고 음악이 정치에 복속한 도구라는 인식, 탈북민들의 덜 숙련된 연주로 저평가가 되고 있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조선음악을 하는 조선악기 연주가로서 ‘황금의 예술’로 칭하는 조선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제대로 알리고, 더불어 조선음악 70년을 한길로 계승발전한 재일 조선민족음악계의 존재를 남한은 물론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량성희는 언어적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시작(Window)을 하지만, 그녀의 연주는 유튜브, 아이튠즈, 애플뮤직 등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들을 수가 있다.
이철주 프로듀서는 “항일투쟁 시기 험난한 역경도 맞받아 뚫고 나가는 조선혁명의 불굴의 정신인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조선 클래식을 알리는 제1의 선전수’로서, 의연하게 개척자의 길에 나선 량성희 연주자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성공을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