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가 내 민족 내 가족 자유로 가는 길 빛 되기를"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알자지라 기자의 '유언'

운명 예감했나 두 달 전 작성…사망 직후 SNS에

"나는 단 한번도 왜곡조작 없이 진실 전했습니다"

"학대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맡깁니다"

장례식 엄수…유족으로 어린 남매와 아내, 노모

2025-08-12     이유 에디터

"침묵하는 자들, 우리의 죽음을 묵인한 자들, 우리의 숨통을 조인 자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여인들의 흩어진 잔해를 보고도 무감각해 1년 반 넘게 우리 민족이 마주친 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 신께서 증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0일 가자지구 최대 도심인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 앞 취재용 천막에 있다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동료 기자 5명과 함께 숨진 알자지라의 아나스 자말 알-샤리프(28) 기자의 유언장 내용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 외국 언론의 진입을 차단한 채 가자에서 무차별 학살을 벌이는 와중에서 목숨을 걸고 가자 현지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전해왔다. 지난해 로이터 사진 기자팀의 일원으로 속보 사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1일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밖에서 이스라엘군이 공습, 살해한 알자지라 기자 아나스 알샤리프의 장례식 도중 그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2025. 08. 11 [EPA=연합뉴스]

'폭사' 알자지라 기자, 두 달 전 유언장 작성
"이스라엘, 제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

유언장은 숨진 지 서너 시간 지나고 그의 'X' 계정에 올라왔다. 유언장 작성일이 '2025년 6월 4일'인 걸로 미루어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듯하다. 그걸 뒷받침하듯 유언장은 "이것은 저의 유언이고 마지막 메시지다. 이 글이 여러분께 닿는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죽이고 제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고 알아달라"는 말로 시작한다.

로이터, AFP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알-샤리프와 모하메드 크레이케, 카메라 기자 이브라힘 자헤르, 모하메드 누팔, 모아멘 알리와, 모하메드 알-할디 등 '살해당한' 알자지라 취재진 5명과 프리랜서 기자 1명의 장례식이 11일(현지시간) 가자시티 내 알-시파 병원 부지에서 엄수됐다. 이런 가운데 런던, 베를린, 튀니스, 라말라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규탄 집회가 열렸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알-샤리프가 "하마스 세포 조직의 수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스라엘과 민간인 군부대에 대한 로켓 공격을 주도했다"면서 '정당한 공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언론인은 누구나 '하마스의 일원'이라고 매도하고 폭격해 죽이거나 저격수를 동원해 살해하기도 했던 건 더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10일 취재 중 폭사한 알자지라의 알-샤리프 기자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6월 24일 작성한 유언장. 사망 직후 그의 X 계정에 포스팅됐다. 유언장의 일부. 2025. 08. 10 시민언론 민들레 

CPJ "이스라엘, 믿을만한 증거도 없이,
언론인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해왔다"

국제 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가자 전쟁 개시 이래 192명의 언론인이 숨졌으며 "그중 186명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이었다. CPJ는 알-샤리프의 죽음에 "끔찍하다"면서 이스라엘은 "어떤 믿을만한 증거도 내놓지 않은 채 언론인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오래된 공식적 패턴이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정권의 알자지라 취재진 살해를 성토하고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알자지라 언론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규탄하고 "이번 살해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요구했다.

외신기자협회(FPA)는 성명을 통해 "분노"를 표시하고 "이스라엘군은 검증할 만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을 전투원으로 낙인찍는 행태를 반복해왔다"고 비난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성명에서 알자지라 기자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고의적 살해"를 강하게 규탄한 뒤 "팔레스타인 기자들의 살해 사건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게 정의와 완전한 배상"을 촉구했다.

알자지라는 "유럽연합(EU), 중국, 이스라엘의 맹방 독일은 이번 학살을 규탄했으며, 유엔도 이번 공격을 국제인도주의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도 대변인을 통해 "가자에서 언론인들이 반복적으로 표적이 되는 것에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시리아 기자가 11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이스라엘군의 알자지라 기자들 공습,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아나스 알-샤리프 기자의 사진을 들고 있다. 2025. 08. 11 [EPA=연합뉴스]

폭탄 쏟아지는 가자에서 참상 실시간 전해
"학대받고 순진무구한 팔 아이들 맡긴다"

알-샤리프는 가자 전쟁 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2023년 12월 고향 자발리아에서 그가 찍어 SNS에 올린 이스라엘 공습 영상이 큰 화제가 됐고, 알자지라는 그를 전문 카메라 기자로 영입했고 그 후 방송기자가 됐다. CNN은 "분쟁과 그로 인한 인도적 피해를 매일 보도하며 아랍 세계에서 빠르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며 "그의 보도는 가자 내 일시 휴전, 이스라엘 인질 석방, 그리고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기근의 참혹한 얘기 등 분쟁의 결정적 순간들을 직접 목격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네 살의 딸 샴과 한 살 아들 살라를 둔 알-샤리프는 가족과 떨어진 채 가자 북부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 활동을 이어왔다.

유언장에서 알-샤리프는 "저는 여러분께 무슬림 세계의 '왕관의 보석'이자 이 세계 모든 자유인의 심장 박동인 팔레스타인을 맡깁니다. 저는 팔레스타인 민족, 그리고 안전과 평화를 꿈꾸거나 그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학대받고 순진무구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맡깁니다. 그들의 순결한 몸은 이스라엘이 퍼부은 수천 톤의 폭탄과 미사일로 부서지고, 찢겨 벽들 여기저기로 흩어졌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사슬이 여러분을 침묵시키고, 국경이 여러분을 제약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를 촉구합니다. 빼앗긴 우리 조국 위로 존엄과 자유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그(팔레스타인) 땅과 민족의 해방을 향한 다리가 되어주세요. 여러분이 제 가족을 챙겨주길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10일 예루살렘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이날 가자지구 점령 계획이 없다면서 인도적 지원을 위한 안전 통로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2025. 08. 10 [AFP=연합뉴스]

[알-샤리프 기자의 유언장 전문 번역]

이것은 저의 유언이고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글이 여러분께 닿는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죽이고 제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고 알고 계세요. 먼저 평화, 그리고 신의 자비와 축복이 함께 하길!

신은 제가 자발리아 난민 캠프의 골목과 거리에서 삶에 대한 눈을 뜬 이래 온갖 노력과 힘을 다해 저의 민족을 지지하고 대변해왔다는 걸을 아실 겁니다. 제 희망은 신이 저의 목숨을 늘려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고향, 점령지 아스칼란(알-마즈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뜻이 먼저 왔습니다. 신의 명령은 최종적입니다.

저는 아픔이란 아픔은 다 겪고 살아왔으며 수 없이 고통과 상실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진실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전달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침묵하는 자들, 우리의 죽음을 묵인한 자들, 우리의 숨통을 조인 자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여인들의 흩어진 잔해를 보고도 무감각해 1년 반 넘게 우리 민족이 마주친 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 신께서 증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께 무슬림 세계의 '왕관의 보석'이자 이 세계 모든 자유인의 심장 박동인 팔레스타인을 맡깁니다. 저는 팔레스타인 민족, 그리고 안전과 평화를 꿈꾸거나 그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학대받고 순진무구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맡깁니다. 그들의 순결한 몸은 이스라엘이 퍼부은 수천 톤의 폭탄과 미사일로 부서지고, 찢겨 벽들 여기저기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사슬이 여러분을 침묵시키고, 국경이 여러분을 제약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를 촉구합니다. 빼앗긴 우리 조국 위로 존엄과 자유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그(팔레스타인) 땅과 민족의 해방을 향한 다리가 되어주세요. 여러분이 제 가족을 챙겨주길 바랍니다.

제 눈의 빛, 사랑하는 딸 샴을 맡깁니다, 자라는 걸 지켜보는 꿈을 꿨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살라를 맡깁니다. 자라나 저의 짐을 (대신) 지고 임무를 이어갈 만큼 장성할 때까지 제가 함께 지내며 보살폈으면 했던 아이였습니다.

여러분께 사랑하는 어머니를 맡깁니다. 어머니의 축복 기도 덕택에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어머니의 간절한 염원이 저를 굳게 지켜주었고, 어머니의 빛은 저를 인도했습니다. 저는 신께서 어머니에게 힘을 주시고, 저 대신 최상의 보상을 받도록 해주길 빕니다.

저는 여러분께 평생 동반자인 사랑하는 아내, 움 살라(바얀)를 맡깁니다. 전쟁은 수 없는 나날 동안 아내와 저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인내하며 신을 믿으며 휘지 않는 올리브 줄기처럼 굳건하게 우리의 유대에 변함없이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온 힘을 다해 굳은 믿음으로 그 책임을 짊어졌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그들 곁에 서서 전능하신 신을 좇아 그들의 버팀목이 돼주길 바랍니다. 제가 죽는다면, 제 원칙을 굳게 지킨 채 죽는 것입니다. 저는 신의 명령에 만족하고, 신을 만날 것을 확신하며, 신과 함께하는 게 더 나은 삶이고 영원하다는 걸 확신한다는 걸 신 앞에서 증언할 것입니다.

오! 신이시여, 저를 순교자 중 하나로 받아들이시고, 과거와 미래의 제 죄를 용서하고, 제 피가 저의 민족과 가족이 걸어갈 자유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해주세요. 제가 약속을 지키고 변절하거나 약속을 어기지 않았던 만큼, 부족하더라도 용서하고 제게 자비의 기도를 해주세요. 가자지구를 잊지 마세요...그리고 용서와 받아들임을 위한 당신의 묵도 속에서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아나스 자말 알-샤리프. 2025.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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