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 깨려면 시민교육 통해 민주주의자 길러야

독일 정치교육, 프랑스 시민교육 등 좋은 본보기

빌리 브란트, 시민교육 구호 "민주주의 감행하자"

미테랑,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 앞장

이재명 정부, UN 지정한 선진국다운 교육개혁을

2025-08-22     하성환 시민기자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1203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5.7.1. 연합뉴스

2021년 UN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대한민국은 경제력 세계 10위, 국방력 세계 5위이다. 전 세계 230개 국가 가운데 인구 5000만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는 단 7개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이 중에 과거 제3세계를 수탈한 제국주의 식민 통치의 역사가 없는 국가는 대한민국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제국주의에 의해 가장 극심한 식민 통치를 받았다. 그 모든 불행을 딛고 21세기 대한민국은 K-문화, K-민주주의로 세계 속에 우뚝 섰다.

그런데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쿠데타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쿠데타를 방조하고 옹호한 정당,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40% 넘게 득표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이 직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22년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8% 이상이 윤석열을 찍었다. 그런 점에선 이상할 게 없다. 유권자 국민 절반 가까이 변함이 없다. 그 모든 게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과 유착한 언론 생태계가 대중의 여론을 왜곡하고 기만한 결과다. 가만가만 생각하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기레기'라는 용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002년 1월 16일 오후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오른쪽 두 번째), 차병직 변호사(왼쪽 두 번째) 등이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의 10대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2002.1.16. 연합뉴스

문제의 현상적 원인은 시민성 부재이자 시민의식의 부박함에 있다. 직접적으론 사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정보 문해력이 결핍된 탓이다. 간접적으론 정치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정치의식이 부박한 탓이다. 궁극적으로는 괴물 엘리트 윤석열로 상징되는 검찰 권력이 공룡화한 역사, 바로 검찰 공화국의 등장에 대한 역사의식의 부재에 있다. 이미 25년 전부터 참여연대를 비롯해 인권연대에선 검찰 권력의 비대화를 주목했고 계속 경고해 왔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서초동 검찰청사 집회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이 검찰개혁을 부르짖은 이유이다. 사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입시 비리나 공정, 계급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룡화한 검찰 권력과 그에 끈끈이 유착된 언론생태계가 만들어 낸 프레임일 뿐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검찰개혁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 바로 공동체의 공동선을 파괴하는 반동의 역사였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을 교육과정 개정 시에 공통 필수교육과정으로 적극 반영함으로써 학생시민을 성숙한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학교교육에서 시민교과를 국영수 과목처럼 가르치도록 30년 넘게 입법투쟁, 교육선진국 교과서 분석 연구, 학술세미나 발표, 학교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 탄생에 헌신해온 김원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위원이 탐독한 서적. 사진=하성환 시민기자

이젠 문제의 본질적 원인인 교육에 깊이 천착하고 고민할 시기다. 교육을 통해 사회현상을 통찰하고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지성을 길러내야 한다. 2009년 시작해 1, 2심을 포함해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명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죄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비대해진 검찰 권력이 조작한 사건으로 명백히 실패한 사건이다. 그러나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강남 3구 몰표에 힘입어 한명숙 후보를 0.6% 차로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그러자 검찰은 그해 7월 다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박근혜 정권 때 양승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후 공룡화한 검찰 권력과 받아쓰기 언론들은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9년 조국 사태는 검찰 권력이 사건을 주도하며 전면화에 나선 대표적 사례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벽에 부착된 평화나비 노란 스티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펼침막. 사진=하성환 시민기자

 

프란치스코 교육원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에 있는 고교생들이 학생회 차원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해 건립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국내와 전 세계에 확산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윤미향 정대협 사무처장이다. 사진=하성환 시민기자

검찰과 언론의 폭주는 2020년 윤미향 사건, 2021년 이재명 사건, 2023년 송영길 사건으로 재연됐다.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읽고 짚어낼 성숙한 시민의식과 지성을 길러낼 시민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독일은 1969년 사민당 빌리 브란트 수상이 집권한 이후, 1970년대 초부터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집권 초기 교육 예산을 160억 마르크에서 500억 마르크로 3배 이상 올렸다. 교사를 더 많이 뽑고 교육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교육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1970년대 초 대학생 수가 10만 명 정도에서 65만 명으로 6배 이상 증가한 것도 교육 투자를 늘려 대학 무상교육을 확대한 결과다. 무엇보다 빌리 브란트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지향했다.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시민교육을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규정해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독일은 교육개혁을 통해 정치개혁, 사회개혁, 경제·노동 개혁 등 사회 전반의 개혁을 성취한 국가다. 기업 경제 활동 과정에서 사원 2000명 이상인 기업은 이사회의 노동자 대표를 50%로 하는 노동이사제를 두어 회사 내 경제민주주의를 관철했다.

1990년 동서독 통일의 초석을 놓은 인물도 빌리 브란트 수상이다. 1961년 8월 동독이 분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베를린 장벽을 쌓자,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분단 독일의 현실에 절망했다. 1969년 총선에서 자민당과 연정에 성공한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서독 분단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냉전 질서에 균열을 내며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 수교를 맺고 동서독 평화공존을 지향했다. 그 결과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바탕으로 동서독 인적 물적 교류의 기초를 다졌다. 빌리 브란트를 오늘날 독일 통일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높이 추앙하는 이유다.

 

스웨덴, 프랑스 등 북서유럽 시민교육 교과서에선 성평등,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 노사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불의인 만큼 폭력에 맞서서 당당히 싸울 것을 학습하고 있다.사진은 스웨덴 기초학교 9학년(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내용의 번역판. (김원태 학교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 집행위원장 제공)

오늘날 북유럽 사회, 20세기 복지 국가를 탄생시킨 주체는 중도좌파 사민당(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동당(노르웨이)이다. 중도좌파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복지정책을 시작했고 북유럽 복지 국가 또한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북서유럽 교육개혁과 시민교육 또한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독일, 핀란드, 스웨덴), 사회당(프랑스), 노동당(영국, 노르웨이)이 집권했을 때 시작했다. 독일이 70년대 초에, 프랑스는 80년대 중반에, 영국은 90년대 후반에 민주주의자를 양성하기 위한 시민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북유럽은 사민당, 노동당의 역사만큼 노동자 시민교육의 역사가 100년에 이른다.

프랑스는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68혁명 당시 사라진 시민교육을 1985년 부활시켰다.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개혁’을 단행해 시민교육을 필수 과목화했다. 영국은 노동당 집권 시절인 토니 블레어 총리가 1998년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과 학교에서 민주주의 가르치기' 보고서, 일명 크릭 보고서(Crick's Report)를 발간해 세 가지 시민교육의 목표를 제시했다. 시민교육을 통해 영국 청소년들이 1)정치적 문해력을 높여 2)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간직한 상태로 3)지역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쳤다. 이른바 학교 교육을 통해 적극적 시민을 양성했다. 그 결과 시민교육 이전과 이후로 청소년 범죄 비율이 4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4년 7월 12일 자 『이코노미스트』지가 보도한 '오! 이쁜 것들'에 따르면 2007년 청소년 범죄 발생 건수가 11만 1000건이었는데, 2013년에는 2만 8000건으로 확연히 감소했다. 2002년 시민교육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한 지 10년이 지났을 무렵 영국 시민교육의 효능감을 여실히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 당시 교육공약 가운데 초중고 시민교육 강화가 눈에 띈다. 교권 보호 차원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도 눈에 띄는 공약이다(출처 : 이재명 후보 중앙선대위 교육위원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대 대선 과정에서 '초중고 시민교육 강화'를 교육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제 국민주권 정부답게 이재명 정부는 시민교육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초중고 시민교육을 필수 의무로 가르쳐 성숙한 시민격을 갖춘 학생 시민을 체계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나아가 남북한 평화공존의 분위기를 주도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통일의 기초를 튼실히 다져 남북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독일 빌리 브란트처럼, 프랑스 미테랑처럼 민주주의를 감행해 학생을 적극적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 개혁 못지않게 교육개혁 또한 중차대한 시대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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