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꿈틀거려 볼까요?” 유신치하 천주교 사제단 밑돌

초대 공동대표 안충석 신부 선종

지학순 주교 구속 때 “세상에 이런 일이…” 울분

촛불모양 리본 달고 ‘시국 기도회’…촛불집회 단초

2025-07-28     유상규 에디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구성을 주도하고 초대 공동 대표를 맡았던 안충석(루카) 신부가 27일 오전 10시 선종했다. 향년 86세. 

고 안충석(루카) 신부

안 신부는 1939년 경기도 장호원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랐지만, 다녔던 감곡초등학교 교장 신부님의 감화를 받아 사제의 꿈을 키웠다. 1967년 12월 사제로 서품된 후 용산, 종로 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1972년 2월 동대문성당에서 첫 주임신부가 됐다. 그 해 10월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정이 중단되고 유신독재가 시작됐다.

안 신부는 동대문성당 주변에서 대학생들의 반독재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음화를 인간화와 연결하기 시작했고, 교회의 울타릴 넘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생전에 회고했다. 안 신부가 사제단 결성을 하게 된 바탕이 생긴 순간이다.

사제단 결성의 방아쇠는 박정희 정권의 지학순 주교 납치 사건이다. 원주에서 가톨릭대학생 활동을 하고 있던 김지하에게 활동비를 지원한 것을 민청학련 자금을 대줬다는 혐의를 씌웠다. 주임신부라고 하지만 37살의 젊은 나이였던 안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주교를 공산주의자로 모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면담에서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안 신부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이제 저희 젊은 신부들이 좀 꿈틀거려 볼까요?”라고 의기를 보였더니, 김 추기경은 잠시 침묵한 뒤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사제단 모임에 대한 교구장의 첫 허락이 떨어진 순간이다.

 

2010년 12월 16일, 명동 성당에서 문정현 신부를 찾은 두 신부가 각자 마음에 드는 서각 말씀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안충석 신부, 문 신부, 함세웅 신부. 사진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안 신부는 곧바로 응암동 성당 주임 함세웅 신부 등의 도움을 받아 동대문성당에서 70여명의 사제들이 참여한 기도회를 열었다. 사제단의 첫 번째 시국기도회다. 두 번째 기도회에는 전국에서 800명이나 되는 신부들이 모였다. 이는 당시 전국 가톨릭 사제의 3분의 2나 되는 숫자다. 사제들과 수도자, 교인 등 기도회가 계속될 조짐을 보이자 박정희 정권은 두 번째 시국미사가 끝난 9시께 지 주교를 석방했다.

이 초기 사제단 시국기도회 때 신부들은 ‘인간화, 복음화를 위한 시국기도회’라고 쓴 촛불 모양의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이 리본은 후에 김대중 등 정치인들은 물론 미사에 참여하는 전 신자가 달게 됐다. ‘촛불 집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 신부는 올해 사제단 창림 50돌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사제단의 기도회는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억눌렸던 시대에 박정희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의 횃불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초창기에 비해 최근 신부들의 사제단 참여가 소극적이 된 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28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 지하경당에서 열린 고 안충석 신부 추모미사에서 나승구 전 사제단 대표신부가 강론을 하고 있다. 2025.7.28. 유상규 에디터

사제단은 28일 오후 6시 안 신부의 빈소가 차려진 명동성당 지하경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에는 고인과 50년 넘게 고락을 함께해 온 함세웅, 양홍 신부를 비롯해 사제단 동료·후배 신부, 수도자, 평신자들이 참석해 평생 정의를 위해 헌신한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미사는 사제단 사무처장 최재철 신부(수원교구)가 주례했으며, 강론을 한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는 "한 평생 사제로 살면서 세상의 평화와 기쁨을 위해 헌신하신 안 신부님께서 이제는 주님 곁에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고 안충석 신부의 장례미사는 30일(수) 오전 10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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