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역할 변경은 진정한 자주국방의 기회
북 위협 남한에 맡기려면 전작권 환수는 기본전제
우리 안보 강화하고 국익 확대 계기 적극 활용해야
위기마다 방산 육성-평작권 환수로 활용해 온 한국
미 국방전략 핵심은 동맹국의 국방예산·역할 증대
미군 감축 카드로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가능성
유엔사 일본 이전, 자위대 포함 여부에 관심 집중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재건(MAGA)’을 내세우며 국방전략의 전면 재조정에 나섰다. 3월 말 ‘잠정국방전략지침’에서 미 본토 방어와 대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러시아·이란·북한의 위협은 동맹국이 담당하도록 했다. 8월 말까지 작성돼 공개될 예정인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는 △미 본토방어 강화, △중국과의 군사충돌 대비, △동맹 및 파트너의 역할 확대 요구, △미 방위산업 혁신, △미 지역통합전투사령부 조정·개편 등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 주한미군과 관련되는 쟁점은 동맹의 부담 증대와 역할 확대, 인도·태평양 지역 통합전투사령부의 조정·개편이다. 동맹의 부담 증대는 지난 6월 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것처럼 한국도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증액할 것, 그리고 한미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9배 가량 증액된 100억 달러(13조 7000억 원)를 부담하라는 미국 측 요구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사령부 조정·재편은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 및 전략적 유연성 강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유엔사 개편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협박과 흥정, 트럼프의 단골메뉴
현행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은 2026년에 적용되기 시작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30년까지 유효하다. 한미 SMA는 미국에선 행정협정이지만 한국에선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이다. 문제는 미국이 기존 SMA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 협상팀은 50억 달러라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기존 3개 항목(한국인 근로자 임금, 비전투군사시설 건설비, 군수지원비) 외 ‘전략자산운용비’ 항목의 추가를 요구했다. 한미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장기화하다가 미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협상은 우리 측 안에 가깝게 타결되었다.
미국은 아직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만약 새롭게 SMA 협상이 진행된다면, 미국은 2023년 4월 26일 ‘한미 워싱턴선언’에서 약속한 핵전략자산 방문의 정례화에 따라 핵미사일 탑재 원자력잠수함(SSBN)의 한국 전개비용을 포함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일은 SMA 협상에서 ‘미·일 공동훈련에 사용하는 기자재 조달비’를 이미 포함시켰으며, 신규협상에서 미국은 ‘미 함정의 일본 내 정비비용’을 추가로 포함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SMA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을 위한 압박용으로 주한미군 감축카드를 쓸 가능성이다. 지난 5월 2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4,500명을 감축해 괌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가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위한 압박용이든 해외미군재편 차원이든 주한미군 감축론이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 감축론의 배경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경험이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은 독일이 국방비를 GDP 2% 이하로 지출하는 데 불만을 토로하며 주독 미군을 34,500명에서 25,000명으로 감축한다고 발표했다가 바이든 행정부가 백지화한 바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20년 10월 한미 SCM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내용을 삭제하면서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 때문에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협상카드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2019~2022 회계년도 국방수권법(NDAA)에 주한미군을 28,500명으로 유지하며, 그 이하로 줄이면 관련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미 의회가 재의결해 통과시켰다. 그 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주한미군의 일방적 감축 가능성이 사라지자 2022~2025 회계년도 NDAA에서 ‘주한미군 병력을 28,500명 이하로 줄이면 예산 사용 불가’라는 항목을 삭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으로 다시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자국의 국방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계 미군사령부를 조정·재편하는 한편, 동맹국에 국방비와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을 카드로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압박할 가능성이 다시 생긴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미 상·하원은 또다시 미 행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감축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2026 회계년도 NDAA를 추진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 2003년 vs. 2025년
트럼프 행정부 내 MAGA주의자들과는 달리 현장의 미군 사령관들은 동맹관계를 중시한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4.10)에서 새뮤얼 파파로 인태사령관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이 대북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브런슨 사령관은 한 세미나(5.15)에서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우리는 더 큰 인태전략의 작은 부분으로서 역내 작전, 활동과 투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미군재편계획(GPR)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될 뿐 병력 규모는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을 낳게 하는 발언이었다.
2003년 11월 부시 대통령의 GPR 발표에 따라 2004년부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추진되어 주한미군 37,000명의 일부 부대가 역외작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전 지원을 위해 이미 차출된 미 2사단 제 2전투여단을 포함해 주한미군 8,500명을 감축하고, 1개 스트라이커 여단 4,500명을 순환 배치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특정 국제분쟁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처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주한미군 스트라이커부대를 투사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2025 국방전략(NDS)의 GPR에 따른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를 한반도 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외작전 대상도 불특정한 국제분쟁이 아닌 중국을 특정하고 있다.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지난 7월 11일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언급하며 “미국의 초점은 억제력 정립이며, 이를 위해 3국 협력이 필수”라고 밝혀 북한을 넘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을 강조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은 새로운 국방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의 기능과 조직도 단계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 제1단계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를 위해 작전 범위를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고, 제2단계로 북한 위협을 한국이 책임지게 하도록 전시작전권의 조기 이양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대북 위협에 대해 ‘한국 주도-미군 지원’이라는 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미 합참의 직접 지휘통제를 받는 주한미군사=한미연합사=유엔사와 인태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는 주일미군사의 재편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유엔사의 '다국적 전투사령부'화?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미연합사령관은 합참의장이 아닌 또 다른 한국군 4성 장군이 맡게 되고 주한미군 사령관(4성)이 부사령관을 맡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 부사령관을 맡아왔으니 미군 4성 장군이 그 자리에 있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계 패권국가의 4성 장군인 데다가 트럼프 정부의 장군 감축 움직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미래 연합사의 틀은 오래 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기에 결국은 미래 한미연합사 체계에서 부사령관을 맡게 될 주한미군 사령관이 4성에서 3성 장군으로 격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주한미군 사령관이 3성 장군이 될 경우, 과연 주한미군사령관이 다국적통합사령부인 유엔사 사령관 직을 계속 맡을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유엔사 활성화 계획에 따라 유엔사 부사령관은 미군 중장이 아닌 캐나다 육군 중장, 호주 해군 중장, 영국 육군 중장에 이어 현재 캐나다 육군 중장 등 미국이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Five Eyes)’ 국가의 3성 장군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만약 유엔사령관이 3성 장군으로 격하된다면, 유엔사 부사령관도 소장이 되는 등 유엔사령부 직급이 한 계급씩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다국적통합사령부 사령관을 3성 장군이 담당하는 사례는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사령관을 4성 장군으로 유지하되 유엔사령부를 원래 있던 일본으로 재이전, 주일미군사령관이 겸임 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유엔사령부는 1950년 7월 도쿄에서 창설되었다가 1957년 7월 용산기지로 이전되었으며, 2018년 6월 현재의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옮겼다. 만약 유엔사령부가 일본으로 재이전하게 되면, 새로운 유엔사령관은 현재 공군중장이 맡고 있는 주일미군 사령관이 육군대장으로 바뀌어 맡게 된다. 확대 재편되는 새 주일미군 사령관은 미 본토에 있는 미 육군 1군단 사령부가 일본으로 이전하여 육군대장이 맡으면서 유엔사령관을 겸임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사령관을 겸직하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같은 대장임을 감안할 때,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사령관의 3성 장군 격하, 유엔사의 일본 이전은 유엔사령부의 위상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유엔사령부가 일본으로 이전되면, 한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유엔사 회원국(전력제공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나아가 호스트 국가인 한국도 유엔사 회원국에 참가하라는 거센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다국적통합군사령부에서 나토와 같은 다국적통합 전투사령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유엔사의 일본 이전은 동아시아 안보 지형의 대규모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 방위의 한국화'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은 크게 1969년 닉슨 독트린, 1990년 동아시아전략구상(EASI), 2003년 해외미군재편계획(GPR) 발표 등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국방전략은 네 번째 맞이하는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 변화이다.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국방전략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변화가 반드시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닉슨독트린은 한국방위산업의 출발점이 되었고, EASI는 평시작전통제권 환수의 계기가 되었으며, GPR은 한국방위의 한국화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대외군사전략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을 하던 차원을 넘어 우리의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국가이익을 증대하는 데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2007년 ‘안보다이아몬드 구상’과 2013년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시해 자국의 전략 속에 미국을 끌어들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로운 국방전략을 추진하자, 나카타니 방위상은 ‘하나의 전구’ 구상을 미국에게 제안하여 일본의 보통국가 구상을 구현하는 데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유엔사의 일본 이전 문제는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과도 관련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전작권 전환’을 내걸었고 첫 민간인 출신 안규백 국방장관 후보자도 추진 의사를 밝혔다. 전작권 전환은 2019년에 제1단계 기본운영능력(IOC)은 검증을 통과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승인을 받았다. 2022년 제2단계 완전운용능력(FOC)도 성공적으로 검증작업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요구로 한미 SCM의 ‘승인’은 유보되었고, 이제 제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작업만 남았다. 트럼프 정부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강화 전략으로 볼 때, 한국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전작권을 한국군에게 돌려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해 철저한 군사태세를 갖춰나가야 한다.
전작권 환수가 소프트파워 차원의 자주국방이라면, 첨단 무기체계의 국산화는 하드파워 차원의 자주국방이다. 한국은 현무 시리즈, 특히 현무-V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전 배치한 데 이어, 4.5세대 한국형전투기 KF-21 보라매의 양산체계를 구축하였다. 금년 4월 극초음속미사일 요격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며, 연말까지 군사정찰위성 4기 체계를 완성할 계획이다. 향후 드론 탑재 경항공모함을 추진할 계획이며, 한·미 협의를 통해 원자력 추진 중형잠수함의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우수한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방위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미국이 최첨단 무기 개발에 집중하면서 우리 방산업체는 전통적인 재래식무기 분야의 틈새시장에서 기회를 잡았다. 최근에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미국 방산시장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이재명 정부는 ‘방위산업 4대 강국’ 건설을 국정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급변하는 정세 변화는 우리 안보에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기회로 잘 활용한다면 진정한 자주국방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