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들의 폭력의 세계, 그 폭발성에 대하여
우리 사회 정상성을 묻는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인간사에 나타나는 폭력의 역사는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것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폭력은 인간의 정신에 깊은 상처의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한 인생의 여름 시즌, 곧 청소년 시절, 그것도 유년 시절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게 모두 다, 어쩌면, 어른들의 잘못이지만 어른들 역시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정신적 미숙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따라서 어른들의 잘못만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의 모습일 수 있다. 신인 감독 장병기의 ‘여름이 지나가면’은 지난하면서도 끔찍한 폭력의 연대기이다. 관객에게 이 영화의 문턱이 높은 이유이다. 관객들은 이런 ‘용감한’ 영화, 삶의 진실을 얘기하는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렵게 느낀다. 참혹하게 느낀다. 극악한 현실의 얘기를 다시 지켜보는 걸 꺼린다. 영화가 해법을 찾아주지 않는 한에는 더욱 그렇다.
시골 학교 내 계급 문제 유발시킨 아디다스 신발 도난 사건
‘여름이 지나가면’의 첫 장면은 한 아이가 지방 소도시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 엄마는 운전하면서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학교를 옮기는 이유는 아마도 이 엄마가 아이의 대학 진학을 위해 농어촌특별전형을 노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평범한 엄마처럼 보이지만 결단코 이건 치맛바람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모든 잘못된 시작은 엄마와 아빠, 부모 탓이라는 얘기이다. 기성세대 탓이다. 농어촌특별전형은 시골 소도시 학교를 6년 이상 다니면 이른바 SKY를 입학하는 데 있어 내신성적에서 우위의 등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교육환경이 부실한 농어촌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시스템이지만 영화에서 보듯 일부 그릇된 생각의 부모 탓에 위장전입 등 각종 사회병리의 시발점이 됐다. 영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공 기준(이재준)은 울주 근교 작은 동네로 이사를 온다. 아이는 6학년이다. 대도시에서 살던 아이이고 여기는 비교적 외진 곳이라 기준은 올 때부터 불만이 많다. 게다가 오는 첫날부터 아이는 엄마(고서희)가 막 사준 새 신발을 도둑맞는다. 학교 선생(강길우)은 왠지 이미 신발을 훔친 게 누구인지를 아는 눈치이다. 교실 안은 기이하게도 긴장감이 팽팽하고 주인공 기준은 그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자, 신발 도둑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모든 게 신발만으로 그칠 것인가.
신발 브랜드는 아디다스인데, 소도시 아이들이 손쉽게 사서 신는 아주 흔한 것은 아니다. 기준이 전학을 온 학교 아이들에게는 세 가지가 관심거리인데 하나는 축구이고, 그래서 신발이 중요하며, 그다음으로는 축구 RPG 게임이다. 이 세 가지 아이템을 둘러싸고 아이들의 폭력 게임이 시작된다. 당연히 이 세 가지는 계급적이고 계층적인 문제를 유발한다. 돈이 없는 아이는 유명 브랜드의 신발을 신기가 어렵다. 시기와 질투의 문제가 깔린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학교는 대책 없이 뒤섞어 놓는다. 담임선생이 아이들을 관리하기에 가장 손쉬운 일은 “나가서 축구 해!!”이다. 아이들은 축구에 열심을 낼 수밖에 없고 신발 절도는 그 가운데서 벌어지는 일이다.
제도권 반장 아닌 두 형제의 폭력에 더 끌리는 주인공
기준은 곧 같은 반 아이 영준(최우록)이 문제아라는 것을 눈치챈다. 기준은 반장과는 짝이 된다. 기준은 반장(제도권)과 영준(폭력의 세계)의 사이를 오간다. 반장을 집에도 데리고 오고 게임기로 축구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슬 영준이 이들 사이에 끼어든다. 기준은 반장 아이를 멀리하고 영준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종종 기준은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반장을 비아냥대다가, 끝에는 꼴에 반장이라고 잘난 척, 한다며 꺼지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다.
영준에게는 영문이라는 형이 하나 있다. 영문은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고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는 청소년이다. 영문 영준 형제는 부모가 없으며 그래서 사회보호시설에 기탁돼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영문은 고집스럽게 그걸 거부하며 동생을 혼자 돌본다. 그는 없으면 뺏어서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생존본능을 지니고 있다. 기준이 이 영문 형제를 만난 것은 동네에서 또 다른 일진들, 양아치들에게 돈을 뺏긴 일이 화근이 되어서이다. 영준의 형인 영문이 나서서 그 치욕적이었던 일을 일거에 해결해 주고 기준은 단박에 그 폭력의 세계에 취하게 된다. 기준은 영준을 뛰어넘어 그의 형인 영문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그의 생활방식을 따라하려 한다. 오토바이 부품을 훔치는 일, 그걸 위해 서로 망을 봐주는 일, 비밀에 대해 함구하는 일 같은 ‘조직 논리’를 배운다. 기준은 영문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이 아끼는 게임기를 갖다 바친다. 기준은 서서히 스스로 위험한 아이가 되려고 한다.
영화는 당연히, 예상대로, 파국으로 치닫는다. 경찰이 개입해야 할 또 다른 절도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이 아이들의 폭력 사태는 점점 마피아의 의리 같은 일로 번진 상태이다. 어디나,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가 터지고, 성인들이 개입하고, 늘 듣던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너는 쟤네들과는 같지 않아!” 같은 것이다. 기준은 자신이 영문 영준 형제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고 항변 아닌 항변을 하지만 결론은 원래 사회가 그어 놓은 사회적 신분 차이로 해결을 본다. 기준은 불만이 있음에도 엄마의 인도대로 훈방되는 선에서 끝난다. 두 형제는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은 그렇게 다시 격리된다. 영문 형제와 기준은 그렇게 완전히 갈라선다. 사회는 폭력적으로 아이들을 분리해 내고, 그렇게 아이들은 다시 각자 자기만의 폭력의 세계에서 그 정서를 안고 키워지는 것이다. 폭력의 핵분열인 셈이다.
“당신들은 정상인가” 참혹한 어법으로 묻는 성장영화
‘여름이 지나가면’을 두고 일종의 성장영화라고들 한다. 성장영화라는 장르는 한차례 소나기와 같은 시기를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되거나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하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이다. 모든 것이 평온해진다. 그러나 이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의 마지막 장면, 두 형제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불길하고 처연하다.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고 있고 우리는 그 폭탄, 청소년이라는 폭탄, 남자아이들이라는 핵폭탄을 늘 안고 살아가야만 함을 직시하게 만든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한국 독립영화의 기린아로 평가받는 ‘파수꾼’의 명성을 이을 만하다고 한다. 그보다 더 심도가 깊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나 ‘이스턴 프라미스’의 어린이판 영화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한가, 가 이 영화의 질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당신들의 아이들은 정상인가, 과연 당신들은 정상인가에 대해 참혹한 어법으로 묻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기준 역의 이재준보다 깡패 같은 아이 영준 역의 최현진이 발군이다. 뜨거운 눈빛이 좋은 청소년(17세) 배우다. 깜짝 놀랄 정도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지난 7월 9일 개봉됐다. 가까스로 예술영화전용관 중심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2일 현재 전국 2110명이 봤다. 실로 힘겨운 일이다. 정말 당신들은 정상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