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신적 지주 넬슨 제독, 오늘도 살아 일한다

1798년 나일 해전서 시작된 영웅의 전설

한 눈과 팔 잃고도 오히려 더 의지 불태워

트라팔가 해전서 죽으면서도 “의무 다했다”

200년 지난 지금도 전국각지에 넬슨 간판

2025-06-27     김성수 시민기자
호레이쇼 넬슨 영국 해군 제독의 초상화.

죽어서도 일하는 모범적인 영국인

영국 해군 제독 호레이쇼 넬슨(1758~180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그 거대한 기둥? 아니면 "영국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한다."("England expects that every man will do his duty.")라는 그의 마지막 신호문? 사실 넬슨이야말로 영국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브랜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죽은 지 2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영국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넬슨의 영국사회에 대한 영향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가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영국은 나폴레옹이라는 유럽의 골칫거리와 씨름하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으로 왕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본 영국 귀족들은 "우리도 저렇게 될까?" 하며 벌벌 떨고 있었고, 서민들은 "빵값이 너무 비싸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넬슨이 등장했다.

한 팔로 적함을 격침시킨 전설의 시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성직자가 될 뻔했던 넬슨이 해군에 입대한 것은 12세 때였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나이다. 하지만 당시 영국 해군은 '일찍 시작해야 제대로 된다'는 철학으로 운영됐다. 마치 현재 한국의 학원가처럼 말이다.

넬슨의 전설은 1798년 나일해전에서 시작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완전히 박살냈다. 이때 그는 이미 한쪽 눈을 잃은 상태였는데, 전투 중 한쪽 팔까지 잃게 된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제 그만 쉬자"고 할 텐데, 넬슨은 오히려 더 분발했다.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 최초의 영국 '셀럽'(celebrity, 셀러브리티, 유명인)이었던 셈이다.

이 나일해전을 계기로 실제로 넬슨은 당시 신문과 팸플릿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대중들이 열광하는 영웅이 되었다. 심지어 유부녀와의 개인적 스캔들까지 화제가 되었다. 그의 초상화, 기념품 등의 상품화도 세계 자본주의 종주국답게 활발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서있는 넬슨 제독의 동상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불륜도 애국심이 되는 마법의 나라

넬슨의 사생활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복잡했다. 결혼한 상태에서 엠마 해밀턴이라는 유부녀와 공공연히 동거했으니까. 하지만 영국사회는 이를 문제 삼기보다는 '위대한 영웅의 로맨스'로 포장했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호레이셔까지도 떳떳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영국사회의 특이한 면을 보여준다. 도덕적으로는 엄격한 척하면서도, 국가적 영웅에게는 상당히 관대하다. 왕실의 스캔들을 보면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에 도움이 되면 사생활은 눈감아주자'는 실용주의인 셈이다.

트라팔가, 영국식 승리의 공식 완성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은 넬슨의 최고 걸작이자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스페인-프랑스 연합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지만, 넘어진 마스트에 깔려 전사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신께 감사하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였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 의무를 다했다는 이 말은 이후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넘어진 마스트에 깔렸다는 공식기록과 달리, 실제로는 프랑스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국은 "영웅은 비겁한 저격으로 죽으면 안 된다"며 스토리를 다듬었다. 이런 식으로 역사도 편집하는 게 영국식이다.

박물관에서 펍(선술집)까지, 넬슨은 어디에나

현재 영국에서 넬슨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기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니치(Greenwitch)의 국립 해양박물관, 포츠머스(Portsmouth)의 HMS 빅토리호까지. 심지어 펍 이름으로도 인기가 높다. 'The Admiral Nelson' 'The Lord Nelson' 같은 간판을 단 펍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이는 넬슨이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영국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작은 섬나라가 바다를 지배했던 영광의 상징,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약간의 로맨틱한 스캔들까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넬슨에게 들어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펍(선술집) 이름이 '넬슨 제독' 이다. 김성수 시민기자.

현대 영국의 넬슨 콤플렉스

브렉시트를 겪으며 영국사회에는 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연합에서 나가면서 '우리는 예전에 바다를 지배했던 해양 제국'이라는 식의 향수가 강해진 것이다. 이때 자주 호출되는 인물이 바로 넬슨이다.

하지만 이런 넬슨 컴플렉스에는 위험한 면도 있다. 200년 전의 영광에 취해 현실을 외면하는 경향이다. 당시 영국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과 식민지 착취 덕분이었는데, 이런 조건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넬슨의 정신은 배워야 하지만, 그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영원한 영국의 아이콘

넬슨이 영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는 영국인들에게 '작지만 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의무를 다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또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헌신의 모범을 보여줬다. 물론 그의 유산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제국주의적 팽창의 정당화, 군국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등.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넬슨이 영국인들의 정신적 DNA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비둘기 똥을 맞으며 서 있는 넬슨의 동상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현재 영국에는 이런 헌신적인 리더가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200년 전 영웅의 그림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넬슨은 오늘도 런던 한복판에서 영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쪽 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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