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어젠다는 여전히 유효한가요?
이규연 홍보수석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기관도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간단히 말해 적재적소입니다. 어찌 보면 ‘적재적소’는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대구이기도 합니다. 사람 쓰는 일의 중요성을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지요.
사퇴 거부, 알박기 속 새 정부 인선 ‘잘했다’ 57%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천신만고 끝에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3년 간 멈춰섰던 민주주의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려면 ‘국민주권정부’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유능한 인물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각종 위원회, 중요한 공공기관을 꽉 채운 채 호기롭게 새 정부를 끌어가야 할 텐데,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국무총리 등 정부 각료들을 임명하려면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그 절차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고, 그 과정 자체가 험난하기 이를데 없을 것으로 걱정됩니다.
당장 전임 윤석열 정권에서 임명된 대통령실의 ‘어쩌다 공무원’들이 무슨 배짱 혹은 심술에서인지 80여 명이나 사표를 내지 않고 잠적해 버려, 새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자리들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지난해 12월 내란이 발생한 후에도 한덕수와 최상목이 대통령 대행을 하면서 모두 50개 가까운 위원회 등 기관장 자리를 알박기 했으며 심지어 이주호까지도 10여 개 자리를 알박기 했다는 것입니다. 방통위원장 이진숙과, 윤석열이 내란 직후에 임명한 박선영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자리를 비킬 의향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이재명 정부의 인사가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지표조사(NBS)가 6월 9~11일 3일간 조사한 결과, 새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53%(‘못한다’는 19%)인 가운데, 새 정부의 인선에 대해서는 ‘잘했다’(매우+대체로)는 긍정적 평가가 57%(‘잘못했다’ 23%)였습니다. 국정운영 기대감은 더 높아 65%(부정 기대 24%)를 기록했는데, 이는 새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높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국갤럽 6월 둘째 주(10~12일) 조사에서 김민석 총리 후보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49% 나왔는데, 이는 지난 10년 사이 이낙연 총리(60%) 외 다른 어떠한 후보보다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황교안 문창극 한덕수 등 보수 정권은 물론 정세균 김부겸 등 문재인 정부 때의 총리 후보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A급 리더의 인사는 일단 믿고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민주국가에서 주요 공직 인사가 있을 때, 직접 관련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권자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제한적인 정보나 인상만으로 과도하게 비판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인 지지 또한 위험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거기에 맞는 인물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임명권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꺼낸 ‘리더 등급론’을 참고로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A급 리더는 A급 인재들을 데려오고, B급 리더는 C급과 등외 인재를 데려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B급은 A급을 데려오면 자기가 B급인 게 들통나니까.
저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이재명 정부의 인선이 전체적으로 A급 리더의 수준에 맞게 무난히 잘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여론도 좋고, (정상적인) 언론의 반응도 나쁘지 않고, 귓전에 들리는 평판도 호의적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내란 종식을 위한 ‘3대 특검’ 임명에 대해 환영일색 분위기가 기껍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그 분들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저 “좋은 사람들이 좋게 말하는, 나쁜 사람들(언론)이 나쁘게 말하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옛 가르침을 기억할 뿐입니다.
정치꾼, 정치검사, 조중동 종편이 만든 ‘틀린 세계’
그러나 언론인으로서 딱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언론개혁에 관한 것입니다. 선거 직후인 지난 4~5일의 한국갤럽 조사 결과는 자못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420명, 2개까지 자유응답)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계엄 심판/내란 종식'(27%), '직무/행정 능력'(17%), '경제 기대/경제 정책'(15%), '다른 후보보다 나아서'(13%), '신뢰/믿음직함', '정책/공약'(이상 9%) 순으로 나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김문수 투표자(350명, 2개까지 자유응답)들의 응답인데, 그 이유로 '도덕성/청렴'(33%), '이재명이 싫어서'(30%), '신뢰/믿음직함/정직'(28%) 순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430명, 자유응답)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사법 리스크/범죄 혐의'(30%), '신뢰 부족/거짓말/진실하지 않음'(18%), '도덕성 부족/사리사욕'(14%), '과거 언행/논란'(6%) 등을 지적했습니다. 김문수 비투표자(500명, 자유응답) 중 각각 4%만이 '신뢰 부족/거짓말'과 '후보가 싫어서' 등 개인사 관련 지적을 한 것과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저는 이 조사 결과를 보며 김문수 지지자, 혹은 국힘당 지지자, 혹은 이재명 비지지자들은 이재명 지지자들과는 완전히 거꾸로 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라 한쪽이 ‘틀린 세계’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틀린 세계’는 100% 거짓말쟁이, 0% 신뢰, 사리사욕의 화신, 알콜 중독자에다 내란까지 일으킨 윤석열을 옹호하고, 그 자신 온갖 구설수와 비리 의혹에 전과 6범이기도 한 김문수에게 투표한 저쪽 사람들이 사는 세계일 것입니다.
중앙일보 계열 언론사에서 화려한 경력 쌓은 이규연 수석
그러면서 오히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와 신뢰 부족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그 상당수가 생물진화학자들이 지적하듯, 태생적으로 전두엽이 덜 발달한 보수일 수도 있고, 진실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게으름뱅이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절반 가까운 사람들을 이런 지경으로 만든 것은 정치꾼들과 정치검찰, 조중동과 종편 등 레거시 미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민주시민들이 그토록 정치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외쳐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이 3가지 시대적 사명을 추진해야 할 대통령실 정무 민정 홍보 세 수석 후보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고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내가 이 세 분을 잘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듣기로 우상호 후보는 4선 경력의 거물 정치인이지만, 민주당의 환골탈태 과정에서 큰 점수를 얻지 못한 인물이고, 오광수 후보는 나라를 이 지경으로 결단낸 검찰 특수부 출신 아니냐는 점에서 경악했던 것입니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특히 이규연 후보에게 주목했습니다. 사실 이 분과 같은 언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회사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고, 활동 분야도 달라 개인적으로 전혀 인연이 없습니다. 예전 이 분 이름을 타이틀로 한 JTBC ‘이규연 스포트라이트’가 워낙 유명해 몇 번 시청한 기억만 어슴푸레 있을 뿐입니다. 이 분이 홍보수석 물망에 오르면서 몇몇 동료에게 물어보니 과연 내가 가진 인상이 맞았습니다. 취재력 뛰어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유능한 기자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공식 이력을 찾아보니 학벌도 좋고 향학열도 높아 박사학위까지 있고, 자신이 근무했던 언론사(중앙일보, JTBC)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후 드디어 대표이사까지 역임했더군요.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 더 이상 바랄 나위 없는, 참으로 훌륭한 경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언론개혁에 앞장 설 인물로도 적합한가
그러면 이재명 정부 초대 홍보수석으로 합격 아닌가. 만일 이재명 대통령의 홍보수석 자리가 그동안 대부분의 정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주류)언론을 상대로 ‘딜(deal)’을 하는 자리라면 그는 그야말로 적재적소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개혁이 검찰개혁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검찰개혁을 넘어서는 국민적 염원이고, 홍보수석실이 언론개혁의 사령탑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뜻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물론 언론개혁이 조중동 종편 등 레거시 미디어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그 주류에 속했던 이규연 수석이 그 방법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러나 언론개혁은 그보다도 훨씬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레거시 미디어 개혁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제는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도 아닙니다. 언론생태계 전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 요체는 이재명 대통령도 여러번 언급한 ‘억강부약’이 되어야 합니다. 즉 과도하게 부풀려진 조중동 종편의 레거시 미디어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동시에, 지상파와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이 제자리를 찾게 하고,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건전한 언론을 육성해 언론생태계의 균형을 잡아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짜뉴스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방안, 기자단 해체, 정부광고 정책 재수립,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규연 수석은 지난 30여 년 언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뒤틀린 언론 상황을 바꿔 보려는 어떠한 활동도 한 적이 없으며, 언론개혁 방안에 대해 고민한 흔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조중동 종편 중 한 회사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이론을 공부한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수석 물망에 올랐을 때, 이재명 정부에서도 언론개혁이 시늉만 하는 건 아닌가, 아니 시작도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입니다.
A급 리더가 뽑은 A급 참모의 역할을 기대한다
인사에 관한 이론에 ‘피터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현재 직무 성과가 우수한 개인을 승진시킬수록 결국 그가 잘 수행하지 못하는 직위에 오르게 된다” 혹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결국 무능력의 수준까지 승진하게 된다”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믿을 만한 사람이다”, “꾸준하고 착실한 사원이다”, “동료와 협조를 잘한다” 등의 평판으로 대리로 승진한 사람이 무능해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죠. 그러나 저는 언론개혁과 이규연 수석 간 관계에 있어 ‘피터의 법칙’보다 유시민 작가의 ‘리더 등급론’을 믿고자 합니다. 언론에 의해 처절하게 당하면서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이 대통령이야말로 특A급 리더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