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뺐다 넣었다…국힘 경선 이상한 여론조사, 왜?
리얼미터, 설문지에 나경원 이름 오락가락
"특정 후보 밀어주기 위한 여론 조작?" 논란
언론들, 무비판적으로 경마식 보도 일삼아
여론조사 세부 내용 공개토록 법 개정해야
리얼미터 1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국민의힘(이하 국힘) 나경원 전 의원측과 조사기관 리얼미터,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신경전을 벌이는 ‘이상한 모습’을 보면서 리얼미터의 국힘 당대표 여론조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분석해 봤다.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여론조사가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위를 달린다는 후보의 이름을 빼 버리고 여론조사를 했다면 누가 그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믿겠는가. 어떤 언론도 이러한 상황을 취재하려고 하지 않고, 경마식 보도만 일삼고 있다. 언론에 몸 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국민의힘의 새로운 당 대표는 3‧8 전당대회에서 당원에 의해 선출된다. 이준석 전 대표가 어떤 과정을 통해 물러났는지, 현재 무슨 일들이 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등 국힘당 내부 사정은 논외로 하고, 과학적이고 엄정해야 할 여론조사기관이 여론 조작에 동원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보수 언론이 가세하는 야만적인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정부기관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중선위)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는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부기관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사이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를 빙자해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크게 보도해 조작된 여론을 전파한다. 결과는 지지율에서 앞서가던 나 전 의원의 경쟁력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이것뿐인가. 언론은 검찰이 서슬 퍼런 칼을 들고 목을 칠 기세라는 소문을 흘리며 당 대표 경선 포기 선언을 하지 않는 나 전 의원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여론조사 설문지에 ‘나경원’ 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리얼미터는 1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과 윤석열 대통령 국정평가에 대한 결과를 중선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념 성향 여론조사 결과도 있지만 눈을 씻고 봐도 국힘 경선에 대한 통계표는 보이지 않는다. 나경원 전 의원 측이 여론조사 결과를 문제 삼아 항의하자 리얼미터에서는 의무적으로 공개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고, 중앙선관위도 당 대표 경선은 공직선거가 아니라고 호응해 일단락 된 것으로 보도됐다.
리얼미터에 조사를 의뢰한 인터넷 신문 미디어트리뷴 1월 17일자 기사를 살펴봤다. 미디어트리뷴 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수가 1250명이고, 이 가운데 국힘 지지층 51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실제 세부 내용을 공개한 리얼미터 2주차 정당 지지율과 비교해 봤다. 리얼미터 2주차 여론조사에서 국힘 지지율은 40.5%(민주당 45.7%)였다. 그런데 당내 경선용으로 조사한 국민의힘 여론조사에서는 국힘 지지율이 41.2%(515/1250)로 0.7%포인트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리얼미터는 1월 2주차 조사가 아니라 별도의 조사를 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세부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추적 자체가 안 된다.
그런데 기사는 여론조사기간이 2023년 1월 12일 목요일에서 13일 금요일까지이고, 응답률은 3.7%(통계표 3.4%)이고 응답자의 표본오차는 ± 2.8%(통계표 ± 2.%)인데 국힘 지지층 표본오차는 ± 4.5%라며 두 개의 표본오차를 보도했다. 그렇다면 2주차 여론조사에서 국힘 지지율을 가지고 분석을 한 것은 아니다. 별도의 조사를 했는데 세부 항목은 없으니 할 말이 없다. 분명히 여론조사를 동시에 실시한 것 같은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답답함을 안고 설문지를 살펴봤다. 답은 설문지에 있었다.
리얼미터는 일주일 동안 표본을 조사해 이를 합산해 발표한다. 1월 2주차 조사는 월요일 화요일에 절반 정도를 하고, 목요일 금요일에 절반을 조사했다. 월-화 이틀은 나경원 이름을 뺀 뒤 조사를 했고, 목-금 이틀은 넣어 조사를 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여론조사 설문 두번째 문항에 있었다.
국힘 당내 경선에 대한 여론조사 설문지는 2개 항목으로 되어 있었다. 먼저 월요일과 화요일 조사한 설문지부터 보자. 1, 귀하께서는 국민의힘 차기 후보로 출마가 예상되는 다음 인물 중 누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보기는 순환으로 불러드리겠습니다. 김기현, 안철수, 유승민, 윤상현, 기타 인물, 없거나 잘 모르겠다.
누가, 왜 이름을 지우고 여론조사를 했는가
놀랍지 않은가. 여론조사 설문지를 한 번이라도 확인해 본 기자라면 이런 식의 여론조사 설문지도 있는가 하고 경악을 했을 것이다. 1위 후보라는 나경원 전 의원의 이름은 아예 여론조사 설문지에 보이지 않는다. 조사에서 빼버렸다는 얘기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 문항을 살펴보자. 귀하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볼 때 국민의 힘 대표로 누가 당선될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보기는 순환으로 불러드리겠습니다. 김기현, 안철수, 유승민, 윤상현, 기타 인물, 없거나 잘 모르겠다. 물론 여기에도 나경원 전 의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 질문,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 이 문구는 누가 봐도 ‘김장연대’, ‘윤핵관’이 밀고 있다는 김기현 의원을 위한 질문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 의원 홍보를 ‘당원 안심 번호’를 통해 여론조사라는 이름을 빙자해 대 놓고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국힘 지지자 515명의 표본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전화를 돌렸을까. 전화를 건 건수는 3만 4122명이다. 모두 국힘 당원 안심 번호다. 접촉한 전화만 이렇고 실제 돌린 건수는 더 많을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김기현 35.2%, 나경원 29.4%, 안철수 15.8%, 유승민 6.3%,운상현 4.8%, 기타 인물 2.4%, 잘 모름 6.1%로 나타났다. 이름이 없는 나경원 전 의원 이름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나경원이라는 이름 석자는 월요일(9일) 화요일(10일) 여론조사 설문지에서는 사라졌다가 목요일(12일) 금요일(13일) 여론조사에서 다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미디어트리뷴이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는 2주차 조사 가운데 목요일 금요일 실시한 여론조사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나 전 의원의 이름을 지우고, 김기현 의원을 충분히 홍보한 뒤 조사 발표한 여론조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그 결과는 앞에서 본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다.
왜 리얼미터 월요일 화요일 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 이름을 지웠을까. 혹여 아직 출마 선언을 안 해 나 전 의원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가 윤핵관, 대통령실과 충돌이 일어나자 나 전 의원을 목금 여론조사에 급히 포함했다면 리얼미터로서는 충분히 해명이 가능하다. 나 전 의원은 1월 4일부터 출마설이 강하게 나왔으나 현직이었다. 5일에는 언론과 만남에서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고, 6일에는 나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당 경선 구도가 출렁일 거라는 기사도 있었다. 10일에는 저출산부위원장 사임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통령실에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며 갈등이 증폭됐다. 그럼 이름이 빠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원 이름 지우고, 특정 후보 띄운 뒤 여론조사 결과 발표
혹시나 싶어 1월 첫 주 리얼미터 여론조사 설문지를 살펴봤다. 이 조사는 화요일(3일) 수요일(4일), 목요일(5일) 금요일(6일)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됐다. 여기에는 나경원 전 의원 이름이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과 금요일 여론조사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1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는 의도적으로 나 전 의원의 이름을 지웠다는 것이 확인된다.
화(3일) 수(4일) 여론조사에 포함됐던 권성동 의원의 이름은 목(5일) 금(6일) 여론조사에서는 사라졌다. 권 의원은 6일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그런데 5일과 6일 여론조사에 권성동 의원 이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여론조사를 들이밀며 권 의원을 주저 앉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리얼미터 1월 2주차 월(9일) 화(10일) 여론조사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의 이름을 지우고 특정 후보 홍보를 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나 전 의원 이름을 지웠다는 것은 특정 후보 띄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가 엉터리 여론조사를 주도했나?
누가 리얼미터 여론조사 설문지를 만들었을까. 리얼미터가 만들었다면 조사기관이 정당과 한통속이 되어 과학을 기반으로 한 통계 조작과 여론 조작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조사를 의뢰한 미디어 트리뷴에서 설문지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공작에 참여한 언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힘의 보이지 않는 손, 이른바 김장연대, 윤핵관 중 어떤 세력이 이런 일을 꾸민 거라면 이 또한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서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 야만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 당대표 만들기에 언론도 적극 협조
확인하는 차원에서 12월 마지막 주 리얼미터 조사 설문지도 들춰봤다. 여기에는 국힘당 대표경선 관련 질문이 아예 없었다. 이를 놓고 보면 국힘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달 이상 여론조사를 통해 특정 후보를 홍보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얼미터는 18일 발표한 국힘 경선 여론조사(응답률 3.2%, 95% 신뢰수준에 국민의힘 지지층 표본오차 ±4.3% 포인트) 상세표를 19일 중선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동안 올리지 않던 세부 사항을 올린 것을 보면 여론조사 상으로는 대세가 결정됐다고 안심하는 모양새다. 결과는 김기현 40.3%, 나경원 25.3%, 안철수 17.2%, 유승민 8.1% 등 순이다. 언론은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했다. 설문 문항은 그대로였다. ‘분위기’라는 문항에 대한 지지율은 김기현 44.4%로 4.1% 포인트 상승한 반면, 나경원은 26.9%로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러한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사와 기자는 단 한 곳, 단 한 명도 없었다.
권성동 의원에 이어 강력한 경쟁자 나경원 전 의원이 경쟁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결국 ‘여론조사 기술’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거리낌 없는, 멋대로 여론조사를 통해 김기현 당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아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될 것이고, 당 대표는 바지대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폭압적인 상황에서 경선을 완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국회는 더 이상 여론조사의 문제점 방관해선 안 돼
여야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여론조사 방식을 이대로 둘 것인가 라고. 여론조사 세부 사항을 24시간 뒤에 홈페이지에 등록하게 하는 것부터 고치고, 당 대표 경선 같은 주요 정치 행사 여론조사와 정부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도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 당 대표 경선은 공직선거가 아니기 때문에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세부 내용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중앙선관위의 법해석은 맞지만 국민 눈높이는 아니다. 여당 대표를 뽑는 선거는 여느 선거와 비교해도 무게감이 있다. 이런 중요한 선거의 여론조사가 조작 혐의를 받아도 제재할 방안이 없다는 것은 국회나 선관위 모두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률상 공직선거는 아니지만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여당 대표 선거에서 여론조사를 공표할 때는 반드시 세부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
미디어트리뷴은 하루 평균 1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언론사가 아닐 수 있다. 이런 언론사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언론사를 통해 여론조사를 공개하고, 이를 메이저 언론이 받아쓰게 해 왜곡된 여론을 전파하는 현행 구조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여론조사를 보면서 언론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아직도 상상할 수 없는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기자와 언론,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 여론조사심의 워원회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