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케이 넘버’가 고발하는 해외입양 잔혹사
일제 위안부 문제의 연속성 위에 있는 국가폭력
개봉됐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이런저런 수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서울독립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 수상작), 영화 ‘케이 넘버’는 극장가 한 쪽에 가려져 있다. 앞으로도 비교적 철저하게 대중들의 영화적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건 이 영화가 다루는 해외입양아 문제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숨겨진 이슈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늘 속에 놓이게 될 주제인 것과 똑같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네마 베리테 방식(리얼리즘 방식)의 영화는 되도록이면 지역이나 도서관, 공공기관을 순회하며 오랫동안 상영되고, 그래서 사안을 널리 알리고, 그리하여 결국은 새로운 사회운동을 조직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 영화 ‘케이 넘버’를 보고 있으면 실로 아픈 각성의 바늘에 수십 방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해외입양의 문제를 모르는 체 했거나 모른 채 왔다는 자각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든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 방식과 같은 해외 입양아 모집
가장 놀라운 발견 아닌 발견, 곧 깨달음은 영화 중간쯤 스웨덴의 입양 연구자인 토비아스 휘비네트(그 자신도 한국에서 건너간 입양아 출신)의 일갈에서 주어진다. 그는 말한다. “한국의 입양아 시스템은 과거 일본군 위안부 체계와 방식이 같다. 그들이 사람을 모집한 방식 말이다. 소녀들을 찾고 속여서 일본군에 넘기는 시스템하고 (아이들을 고아로 둔갑시켜 해외로 넘기는 시스템이) 같다. 일본군 위안부 대부분이 한국 여성이었다. 필리핀, 베트남, 중국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지금의 남북한 출신이었다. 이건 일종의 연속성이다. 매우 나쁜 연속성이다. 일제 식민주의 때의 나쁜 습성이 한국문화로 (고착)된 연속성이다.” 우리는 현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의식 만큼은 꽤나 고취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일제 위안부 모집 방식을 배운대로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어(서류를 조작)’ 해외에 상거래 방식으로 팔아 치웠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친일 잔재 미청산의 추악한 민낯은 외면하고 살았다. 그리하여 해외입양아 문제는 역사적 문제이며 사회구조적 시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바로 그점을 공론화시켰다는 점이야말로 영화 ‘케이 넘버’가 이루어 낸 크나큰 위업이다.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해외입양이 따뜻한 온정주의와 시혜의 시각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 고아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다가 생긴 일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 ‘케이 넘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해외 입양 문제는 1980년대를 넘어서부터는 어두운 3개의 조직이 뒷배경으로 깔린다.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 그리고 홀트 아동복지 같은 4대 민간 입양기관이다. 아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키는 것은 이들 3대 조직이 보여주듯 이른바 사회 어둠(범죄)의 근원을 싹부터 자르겠다는 파시스트적 발상이 개입이 된 것이다.
미혼모의 아이들, 하층계급의 아이들을 데려다(잡아다) 보육원에 데려 가면 머릿수 당 국가로부터 수당을 받는다. 이들 아이들의 상당수는 고아로 기록이 변조됐고, 이렇게 고아가 된 아이들을 몸값을 받고 미국으로, 독일로, 스위스로, 네덜란드로, 덴마크로 팔아 넘겼다. 국가가 시스템을 만든 후 해리 홀트 같은 민간 사업자에게 그 시스템을 운영할 권한과 독점을 주고, 보육원과 조산소, 병원, 심지어 경찰까지 연결되는 광범위한 인신 매매 네트워크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중 어느 것(정부든 홀트든)이 먼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후 50년간 국가가 허락한 이 ‘홈 쇼핑 아기 장사’는 무려 20만 명이라는 해외입양아 문제를 야기시켰다. 토비아스 휘비네트는 덧붙인다. “모든 것은 한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끝내야 한다.”
Kxxxx 시리얼 넘버로 거래되는 ‘홈 쇼핑 아기 장사’
‘케이 넘버’의 케이 넘버는 Kxxxx처럼 입양아 서류에 써 있는, 일종의 시리얼 넘버이다. 영화는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김미옥, 미국 이름 미오카 킴 밀러의 입양 기록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김미옥 역시 생모를 찾으려는 일환이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이 단초가 됐다. 김미옥은 입양아 문제 NGO인 ‘배넷’의 도움을 받지만 곧 자신의 생모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기록을 찾는 것 자체에 엄청난 벽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영화 ‘케이 넘버’는 미오카 킴 밀러를 시작으로 케일린 바우어, 선희 엥겔스토프, 메리&데이나 쉬라프만 등 입양아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아낸다. 그 과정, 그 진술이 참담하고 가슴 아프며,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는 뼈아픈 자성을 가져다 준다.
더 큰 문제는 김미옥 씨 같은 경우이다.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입양을 간 후 책임감이 부족했던 양부모가 입양 수속을 제대로 받지 않아 미국 시민권도 한국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살다가 비교적 최근에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자비로 들여 시민권을 딴 케이스이다. 미국으로 간 약 4만 5000명의 입양아 중 2만 명 정도가 현재 불법체류자인 이유이다. 입양아 중 한 명인 아담 크랩셔는 결국 입양됐던 국가에서 추방됐고 한국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런 문제에 대해 홀트나 대한사회복지회 등 한국 입양기관이나 한국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은 전혀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법원의 법리는 그들을 옹호해 준다. 아담 크랩셔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이다. 그러나 휘비네트의 얘기대로 ‘모든 문제가 한국에서 시작됐다면 한국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한국에서 시작된 문제라면 한국이 풀어야 하지 않나
덴마크 입양아인 선희 엥겔스토프의 증언은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녀는 한국을 휘젓고 다닌 노력 끝에 결국 생모를 찾았지만 정작 친모는 그녀를 만나 주지 않았다. 이건 선희 같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많은 입양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고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해외 입양아 문제를 둘러싼 이슈의 핵심은 ‘국가폭력’이라는 단어와 개념으로 귀착된다. 해외입양아 문제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까지 가게 된 이유이지만 지금의 위원장(박선영) 체제 하에서는 문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 해외입양아들이 요구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것이다. 자신들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와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신분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게 저렇게 어려운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큐는 이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을 풀어가는 단초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서를 정부가 비준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 이행 입법을 만들지 못했다. 12년 동안 답보상태이다. 국회는 정치싸움만 해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해야 할 일들의 구체성은 이런 문제부터 풀어내는 것이다. 해외입양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동전의 앞뒷면이다. 역사적 과오와 연결돼 있다. 영화는 종종 국가 운영의 어젠다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케이 넘버’가 그렇다. 숨겨져 있는 이 다큐멘터리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싶은 이유이다. 감독 조세영이 만들었다. 지난 5월 14일에 개봉됐으며 지금까지 5212명의 관객을 모았다. 520만의 관객이 봐야 할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