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그 너머의 정치개혁을 향하여
정치의 비생산성 문제 높이는 방향 돼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5월 18일 발표한 개헌 방안(이하 ‘방안’으로 표기)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줄이고 의회 견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에서 거대한 진전을 보여준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택한 방안은 '적어도 대통령중심제라는 전제 아래서는' 권력 분산이 가장 잘 된, 최고의 개헌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4년 중임 대통령제 구상도 '현실 정치인 이재명'으로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비록 이 방안이 '이 후보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제안'임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방안에 대해 절반의 아쉬움을 갖는다. 핵심은 그의 방안이 여전히 대통령제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는 양당대결 중심, 인물 중심, 지역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극단화와 팬덤현상까지 뚜렷하다. 고착에 퇴행이 겹친 것이다. 필자는 극한대립 일변도의 정치문화에서 벗어나 설득과 타협의 공간이 확장되고, 의회 내 연합정치가 일상화되며, 이를 위한 토대로서 다당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생산성의 질적 도약'을 소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방안은 기존 구조에 대한 ‘개선’은 될 수 있지만 ‘전환’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일신하는 개혁 및 개헌이어야 할 텐데, 방안만으로는 부족해서다.
한 번 개헌을 하면 그 체제로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좀 더 배고파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시계(視界)를 향후 수 년간의 권력 향배 정도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권력의 형성 및 작동 구조를 '사회-정치적으로 필요한 분량'만큼 바꿔 민주주의 토대를 재설계하는 수준으로 확장할 때라고 본다.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자세다. 그리고 그 열쇠는 '적확한 개헌'에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인지,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지금 뭘 해야 할지 등을 순차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다만 정치개혁이라는 큰 테제 아래 다양한 하위주제들이 연결돼 있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문답의 형태를 빌어 전개한다.
Q. 한국 정치가 당신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보인다.
A. 아니다. 그 반대다. 필자가 비록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를 꺼냈지만 ‘한국의 정치를, 그리고 정치인을 너무 비하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실과 일치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21세기현재 지구 상에서 한국만큼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도 흔치 않다.( [팩트체크] 한국 민주주의 순위 하락 보고서 들여다봤더니 기사 참조) 특히 이번 내란 진압과정에서 확인됐듯이 민주주의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을 때 보여준 한국민주주의의 복원력 혹은 회복탄력성은 세계를 놀라게 할 수준이었다. 다만 '더 좋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워낙 크다 보니, 현실 정치에 바라는 것도 많은 것이다.
Q. 당신이 말하는 정치개혁이란 무엇인가?
A.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한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는 ➀정치의 비생산성이었다. 이것이 고질화하면서 상당수 국민은 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여기다 최근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기도로 ➁민주주의 제도 자체의 위기가 겹쳤다. 쿠데타로 인해 ➁를 손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이번 기회에 ➀까지 해결해 버리자는 거다. 필자는 ➀ ➁ 두 문제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으며, 따라서 한꺼번에 해결가능하다고 본다.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하나의 뿌리란 권력 구조의 문제다. 세분하면 첫째 제왕적 대통령 체제다. 둘째 이것이 빚어낸 정치 양극화 및 의회 권력 양분(兩分)이다. 셋째 이들의 결과물인 당내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여기다 하나쯤 더 보탠다면 넷째 이들 문제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의원 기능의 저질화다.
Q. ➁민주주의의 위기는 쉬 이해하겠다. 그런데 ➀정치의 비생산성은 무슨 뜻인가?
A. 정치는 한정된 자원(권력, 부, 기회 등)을 강제로 분배하기 위한 장치다. 물론 분배 문제 중 이해(利害)를 달리해도 합의가 가능한 문제는 시장 내에서 스스로 해결한다. 거래다. 그러나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해충돌이 발생할 때,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효율적인 분배 질서를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론의 장이 움직이고, 담론들이 경쟁하며, 결과적으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미래 비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개방적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낸 정치 체제 중에서 이같은 기능을 가장 효과적-효율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정치는 국민 기대에 비해 그런 일을 잘 못한다. 갈등은 작지 않고, 문제해결은 지연되며, 이번엔 군부 독재화의 위험까지 노출됐다. 저질 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시스템, 집권하고 나면 5년 임기 동안 아무렇게나 권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통령 무(無)책임제를 자주 보여줘 왔으며, 국회의원 역시 저질적인 방식으로 굴어야 살아남는 생태계에 오랜 기간 갇혀 있기도 하다. 정치의 생산성이 낮은 거다.
Q.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A. 대통령제 자체에도 문제가 많지만, 제왕적 시스템은 폐해가 극심하다. 이 시스템에서는 대선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말 그대로 승자독식 구조다. 자연히 모든 정치 에너지가 대선 승리에 집중된다. 제3당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利害)를 가진 사람들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그리고 주기적으로 양 진영에 끌려 들어오게 된다.
또 하나. 이 게임에서 작동하는 게임의 룰은 ‘국민들 편 가르기’다. 대(對)국민 설득도 ‘설명력 경쟁 게임’이 아니라, ‘피아 구분에서 내게 유리하도록 전선(戰線)을 그으려는’ 의제설정 게임으로 치환된다. 여기선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공론장은 단순유치해지고, 의회는 양극화되며, 국민은 편 가르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제왕적 시스템에 기대어 윤석열은 심지어 쿠데타까지 기도하지 않았는가?
Q.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A. 실질적인 다당제다. 완전히 독립적인 제3당, 제4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다면 좌우의 양당이 국민에 대해서는 물론, 3, 4당을 향해 최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정책 경쟁을 시작한다. 내각책임제라면 그래야 연정을 꾸릴 수 있고 집권할 수 있다. 3, 4당은 대통령 혹은 총리를 배출하지 않아도 선거연합 혹은 정책연합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이제 3, 4당이 지속 생존할 공간이 확보된다. 어떻게든 이 공간을 열어야 한다. 조금만 열어도 설득과 타협, 상생의 틈이 생긴다. 작은 틈이 거대한 변화의 첫 걸음이다.
게다가 연합이 일상화하면 권력 독점이 매우 힘들어진다.
반면 양당 구도는 평시에는 불필요한 갈등을 키워내는 구조다. 독식이 가능한 상황에서 협치를 말하면 내부 배신자라고 몰아붙이고, 타협하면 약하다고 공격받는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독재로 급전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Q. 다당제가 되기 위해선 총선 선거제도가 개편돼야 하겠군?
A. 맞다. 거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각 당의 득표 비율과 의석 배분 비율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다당제가 쉽게 구현되는 것은 물론, 사표(死票)가 없어진다. ‘표의 등가성’(득표량=권력량)이 확보돼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그대로 권력으로 전환되며, 정당은 남녀 노소 지역 계층을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은 수의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찾게 된다.
사표 방지 기준에서 볼 때 소·중·대 선거구 중에서는 대선거구제가 가장 우월하다. 하지만 "지역대표성을 고려할 때 지역의원을 둬야 한다"는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역의원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득표 비율≠의석 비율’의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게 구현되면 한국 정치의 막장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위성정당'을 만들 이유가 없어진다. 정치의 문제해결 능력, 사회변화 견인력이 뛰어나며, 생활정치가 일상화한 정치선진국에서는 예외 없이 이런 제도(득표 비율=의석 비율)를 채택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제는 사표를 가장 많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표의 등가성과 가장 거리가 먼 제도다. 필자가 대통령제를 탐탁치 않게 보는 중요한 이유다.
Q. 내각제 개헌을 생각하고 있구나.
A. 그렇다. 대통령제 하에서 아무리 권한을 깎아도, 정치문화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제3·4당이 건강하게 존립하고, 연합정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설득하고 타협하는 의회가 되려면 권력 형성의 경로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각제로 가자’고 하면 국민 설득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란 사건으로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꽤 노출된 만큼 내각제를 공론화할 기회가 왔다고 본다. 차기 정부 출범 후 아주 시급한 정치일정이 마무리되면 시작할 수 있다. 지난하지만 끈질긴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정치제도 디자인의 목표는 결코 ‘철인(哲人) 정치'의 구현에 있지 않다. 거꾸로 '아무리 허접한 인간을 지도자로 잘못 뽑아도 공동체가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대통령제의 위험성은 거의 매일 막장 코미디를 반복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검찰로도 안 되니 총칼로 상대를 말살하려 든 윤석열,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을 통해 총리에서 대통령 직으로 갈아탄 튀르키에의 에르도안 등이 충분히 웅변했다고 본다.
물론 이 후보의 방안으로도 우리 정치가 괄목상대할 진전을 보이겠지만, 개헌이라는 ‘한 세대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에 비추어 아쉽고 목마르다. 아직 공론장에서 토론하고 여론 형성할 시간이 충분하다. 우리는 좀더 배고파 할 이유가 많다.
Q. 내각제가 되면 한국 정치의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까?
A. 그건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내각제이지만 정치 생산성이 매우 낮지 않은가.
Q. 우리도 일본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A. 일본 자민당의 경우 '기득권 정치 함정'에서 수십 년 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구당을 사조직처럼 운용하고 있는 토호(土豪)형의 가문세습 의원과, 엘리트공무원 출신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출신 성청 혹은 관련업계 이익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족의원(族議員, 예:재무족 상공족 건설족 우정족)들이 발호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가 역동성을 잃고 변화와 대응의 발목만 잡곤 한다.
이 문제는 진성당원 제도를 의무화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당비를 납부한 당원이 당무에 참여하고, 중앙당과 지구당의 정책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당 의사결정은 자연스럽게 버텀-업 형태로 바뀌고, 위에서 공천장을 찍어주는 구조도 깨진다.
지적하신 것처럼 한국도 현재의 비(非)진성당원 제도를 온존시킨 채 내각제만 채택할 경우 일본처럼 되기 쉽다. 양국은 사회문화적으로 유사점도 많지 않은가. 개헌에 앞서 완전한 진성당원 체제로 바꿔야 한다.
Q. 어떻게 가능한가?
A. 정당법에 다음의 두어 줄만 추가하면 된다. “➀당원은 매월 상당액 이상의 당비를 납부하여야 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➁다른 사람의 당비를 대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대납토록 한 사람에 대해서는 상당기간의 공무담임권 정지를 수반하는 형사처벌을 한다.” 그러면 지구당의 사조직 구조는 즉각 무너진다.
Q. 첫머리에서 당내 민주주의도 언급했는데…
A. 현재의 정치환경에서는 상대 당과의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대안 모색에 능한 사람, 상생의 협상에 능한 사람은 당내 리더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훌륭한 전사(戰士), 충직한 전투 전문가가 환영받는다. 이 단계를 지나면 전투대형 전개에 능한, 강력한 리더십으로 굳건한 대오(隊伍)를 유지시킬 수 있는 야전지휘관이 정치적으로 성장한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힘들다. 정책경쟁 훈련도 되지 않는다.
당내 민주화의 진척을 위해서는 현 정치환경이 다당제로 먼저 개편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기다릴 수는 없다. 줄탁동기(啐啄同機)라고 하나, 안팎에서 동시에 개혁이 추진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각 정당이 진정성을 가지고 진성 당원에 의한 상향공천제, 의원 자율투표제 등을 도입하는 개혁을 감행해야 한다. 정당 내부의 수직적 위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본래 정당이라는 것이 미래 공동체 모습을 꿈꾸고 약속하고 그것을 구현하겠다며 만들어진 결사체 아닌가? 제도 환경만 탓하고 있으면 안 된다. 지도부가 결단해야 한다.
Q. 아까 의원 기능 저질화라는 말도 꺼냈는데, 어떤 의미인가?
A. 대개의 경우 멀쩡한 사람이 정치인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의원 배지만 달면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하는 경향이 있다. 품성 탓이 아니다. 공천과 재선을 위한 생태계가 그렇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즉 ①지역구에선 상가(喪家)에 엎드려 표밭을 갈아야 하고, ②중앙에 오면 당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 특히 당내에서는 정책 전문성과 창의성보다는 선명성 충성심 전투력이 중요하다. 당과 당수가 그것을 요구한다. 정치는 점점 단순유치해진다. 급기야 나이 지긋한 초선의원이 육탄돌격의 행동대원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같은 의원 기능의 저질화는 바로 정치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 문제는 당원 상향공천제와 의원 자율투표제 등 당내 민주주의 구현 외에 해법이 없다.
Q. 내각제는 목적이 아니라 정치개혁을 위한 수단이군.
A. 정치문화와 정치구조의 전반적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내각제가 우월하다는 논지다. 지금 우리 정치가 너무 인물 중심, 팬덤 중심, 지역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치 정당, 이념 정당, 계급 정당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런 변화의 장치가 내각제라는 것이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정치인의 행태도, 유권자의 정치문화도 바뀐다.
Q. 정치개혁이 이뤄지면 생활민주주의가 가능하겠군?
A. 그렇다. 민주주의는 선거일에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의회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 마을, 노동조합, 시민단체, 커뮤니티, 지자체 등 일상에서부터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하고 몸에 익히는 게 필요하다. 민주주의 모범국이라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급회의와 지역 공동체를 통해 민주정치를 훈련받고, 장차 공무를 담당할 정치인 후보가 발굴 육성된다.
반면 우리는 ‘지시 따르기’에 너무 익숙한 문화 속에 있다. 심지어 정당에서도 당원들은 의사결정권 없는 동원 대상일 뿐이잖은가. 국민의힘 전 지도부가 자기 당원들을 얼마나 가벼이 봤으면 선출된 후보를 심야에 갈아치려 했겠는가? 정치개혁은 정치인만 바뀌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완성되는 거다.
Q. 이 시점에서 정권교체보다 개헌이 더 중요하다고 보나?
A. 거시적-장기적 시계에서 보면 당연히 그렇다. 개헌이 중요한 건 정치권력이 어디서 생성되고,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너무나 희소한 기회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겪은 정권 실패의 근본 원인은 사람보다는 구조에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 누구냐’보다 대통령제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대통령이 괜찮은 사람일 땐 아무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너무 많은 것이 무너진다. 이런 구조는 국민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제는 시스템이 개인 품성을 제어하고,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구조로 가야 한다.
Q. 현실적으로 내각제 도입이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A. 국민 감정상, 그리고 정치 경험상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강하다. 고육지책으로 이원집정부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의회가 총리를 선출해 내치(內治)를 맡기고, 직선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내각제 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이 확인되면 이원제라는 징검다리라도 놓고 건너가는 것이 차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꿈을 갖자.
Q. 개헌시간표에 대한 생각도 해봤나?
A. 이재명 후보는 2028년 총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일정을 제시했다. 만약 '4년중임 대통령제의 새 헌법이 2030년 6월 발효하는 스케줄'이라면 매우 적절한 시간표다.
하지만 기왕지사 욕심을 내어 내각제로 갈 생각이라면 차기 총선(2028년 4월) 당선자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그 해 5월 30일 새 헌법이 발효하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원이 구성되고, 즉시 새로운 총리(가칭)가 선출돼, 새로운 내각을 이끄는 거다. 이 경우 차기 대통령은 2030년 6월까지의 본래 임기보다 만 2년 일찍 권력을 내놓게 된다.
Q. 그러려면 언제쯤 내각제 개헌 국민투표를 해야 할까?
A. 새 헌법의 발효 시점과 무관하게 제도 변경만큼은 일찍 확정해둘수록 좋다. 그러나 아무리 늦추어도 2028년 총선과 동시에 해야 한다. 총선을 넘긴 후 2030년의 차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꺼낸다면 “자기 임기 다 챙긴 후 개헌을 통한 영구집권까지 노린다”는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 개헌은 실현가능성이 없고, 해서도 안 된다.
Q. 이재명 후보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는데…
A. 그야 그럴 수밖에…. 필자가 제안한 개헌안이나 시간표를 이 후보나 민주당이 내놓는 것이 가능하겠나? 특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내각제로 바뀌면 이 후보 역시 차기 총리직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각제 안을 내놓으면 바로 국민의힘에서는 "드디어 영구집권 야욕이 드러났다"고 공격할 것이다.
논의가 의미 있게 진행되려면 새 정부 출범 후 경제 등 민생회복-통상문제-내란청산-의료인수급 등 분초를 다투는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정치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단단하게 다져져야 한다. 그런 기초 위에 내각제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서서히, 그러나 견고하게 형성돼야 한다. 이 글이 그 논의의 마중물이 된다면 기쁘겠다.
Q. 더 하고 싶은 얘기는?
A. 이재명 후보는 기관장 임명시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기관으로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 방통위 인권위 등을 열거했다. 매우 적절하지만, 거기에 군 핵심요직 몇 개를 보태고 싶다. 지금 내란 재판정에 서 있는 군 지휘관들의 직책들이다. 단, 이 제도 변경은 개헌과는 무관할 것이다.
Q. 마무리하자. 당신이 말하는 정치개혁을 요약하자면?
A.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조정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것에 있다. 대립과 갈등의 정치구도를 타협과 상생 기반으로 치환해, 종국적으로 정치의 생산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간 정책경쟁이 복원돼야 하며, 다당제가 도입돼야 한다. 그리고 표의 등가성이 확보되도록 선거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 발명한 가장 잘 작동하는 모델이 '사표 없는' 의회 구성 및 내각책임제다. 북유럽 혹은 독일이 이 제도를 택하고 있다. 불가피하다면 이원집정부제가 차선책이 될 수는 있겠다.
설혹 내각제 전환에 실패해 대통령제를 유지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이 후보가 제시한 방안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폭넓게 분산하고 의회 등의 권한을 확대해 가야 한다.
Q. 그 꿈, 실현 가능할까?
A. 늘 개혁은 아득해 보인다. 그렇다고 꿈조차 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끊임 없이 그것을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정상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뜨거운 열망이 있다. ‘대한(大韓)국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 각종 비정상을 온존케 하는 메커니즘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여론이 움직이면 정치권이 움직이고 세상이 움직인다. 담대한 비전, 정직한 전략, 그리고 곡진한 설득을 통해 아름다운 꿈을 현실의 변혁에너지로 변성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두 번 창조된다. 한 번은 마음속에서, 그리고 다음은 현실에서.’(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에서) 마음에서 창조가 일어나지 않으면 현실에서의 창조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