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서 달 기지까지" 러·중 협력 '다산의 계절'
[푸틴-시진핑 모스크바 정상회담] ②
미러 관계 밀착, 미중 관세휴전 속 '대미 태세' 유지
국제질서의 변화 관망하며 당분간 공동 대응할 듯
러시아 경제협력, 중국은 전략적 협력에 각각 방점
우크라전 이전 대비 교역 175%↑ …증가 폭은 감소
산업생산·운송·물류·과학기술·우주 협력 확대 주목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친밀하며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였다." (푸틴)
"푸틴 대통령의 초청에 감사를 표한다. (…) 중국과 러시아는 평등과 정의의 정신으로 세계 질서의 수호자로 남아야 한다." (시진핑)
올해 러중 정상회담은 러중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며 '끝없는 협력'을 시작한 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뒤에도 '대미 공조'를 유지할 것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크라전과 미국의 대러제재 속에서 싹을 틔웠지만, 우크라전 이후에도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바이든의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만 압박한 게 아니었다. 2030년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전제로 동아시아 군사주의를 강화했다. 유럽과 동아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연합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로 벌어졌고, 러중이 맞대응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였다.
러중은 미일인도호주 안보대화(QUAD)와 미영호주 핵잠 협력(AUKUS)에 이어 이른바 '격자형 동맹'으로 명명된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군사협력 등 동아시아에서 확대된 미국과 동맹의 군사적 태세를 안보 위협으로 지목한다. 8일 발표된 '글로벌 전략적 안정 공동성명'은 이에 대한 러중의 위협 인식과 대응 방향을 요약한다. 미국과 집단서방의 '작용'에 맞설 '반작용'의 내용을 담은 문서인 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우크라전 종전 노력과 함께 미러 관계 정상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러중은 아직 기존 태세에 변화 요인보다 유지 요인이 더 큰 것으로 평가한다는 증거다. 안보-경제에서 미국의 대러, 대중 태세의 근본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평가인 것. 실제로 바이든은 유라시아 양쪽에서 군사주의를 강화한 한편 트럼프 1기의 대중 관세를 승계했고, 트럼프 2기는 바이든 군사주의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 관세전쟁을 확대했다.
미중은 미국의 145% 대중 관세와 중국의 125% 대응 관세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다가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 협상에서 잠정적인 휴전에 돌입했다. 향후 90일간 미국은 30%로, 중국은 10%로 각각 관세를 조정했지만, 안정적인 국면과 거리가 멀다. 중국은 물론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전술이 아니라 전략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11일 우크라 측에 나흘 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평화협상을 재개하자고 전격 제안했지만, 타결까지는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지난 2월 12일 푸틴-트럼프 첫 통화 뒤 트럼프가 서두르던 우크라 종전 협상 속도전은 이미 늦춰진 상태다. 아직 가시화된 변화가 아닌 것.
바이든 미 행정부가 주선한 러중의 결합은 백년해로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다. 미중러의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계약결혼'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 영원한 결합은 없다. 그럴 것이라고 믿는 착각 또는 맹신이 있을 뿐이다. 유연한 러중 계약결혼이건, '철통같은(Ironclad)' 한미 동맹이건 각국의 필요에 따라 진화한다. 변화의 물결을 감지하고, 그 흐름에 올라 단기, 중기, 장기적 국익을 구현하는 게 중요할 터. '다산의 계절'에 돌입한 러중 협력의 갈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 국제관계의 3대 행위자들. 러중의 협력의 상세한 항목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글머리에 소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마디는 지난 8일 크렘린궁 정상회담 뒤 발표한 언론성명의 한 대목. 푸틴 대통령은 숫자를 나열하며 러중 경제협력의 성과와 기대를 소개하는 데 방점을 두었고, 시 주석은 러중 협력관계의 전략적 의미에 집중했다. 동상이몽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각 초점이 다른 것.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해 경제적으로 대중 의존도가 높아진 러시아의 처지를 반영한다. 동시에 서방과의 긴장관계를 관리하는 한편, 러시아의 경제적 필요를 일부 메워주며 경제-안보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맞서려는 중국의 속내가 엿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80주년을 맞아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투영했다. 나치에게 거둔 승전이 인류의 공동가치라고 평가하는 동시에 러중이 역사 왜곡과 나치즘 및 군사주의 부활을 함께 막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치즘 격퇴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저지 및 중립화와 함께 우크라 침공의 양대 명분인 탈나치화와 맞물려 있다. 군사주의는 주로 미국을 추종해 군사태세를 강화하는 일본 군국주의를 지적한 것으로 읽힌다. 러중 관계가 사상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국제정치 및 금융으로부터 자족과 독립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중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잉태한 과실을 소개했다.
2024년 러중 교역이 2450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산업 생산과 운송, 물류, 농업 및 광업 분야에서 2000억 달러 상당의 상호 투자 프로젝트의 90%가 이행됐거나,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교역 규모는 우크라전 발발 전인 2021년 1400억 달러에서 175% 정도 늘었다. 그러나 2023년의 2400억 달러에 비하면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주로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를 수출하고 중국은 자동차와 기계류, 전자제품 및 금속을 수출한다. 중국 기업들은 현대자동차와 삼상전자 등 한국과 서방 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신속하게 메웠다.
거의 모든 양국 간 교역이 루블-위안화로 이뤄지고 있어 제3국 또는 세계 시장의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다면서 에너지 부문의 협력을 앞세웠다.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통해 가즈프롬이 중국 측에 31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20207년 개통하는 '극동 가스관'을 통해 추가 100억㎥ 공급된다는 것. 러시아 로사톰(Rosatom)은 중국에 원전 2기(톈완, 수다푸)를 건설 중이며, 중국은 지난 3월부터 모스크바 지방 두브나의 니카 입자가속기 단지 건설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운송 부문에선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바이칼-아무르 철도 현대화와 부속 인프라 건설을 꼽았다. 북해 항로 개발 및 상업적 운영을 통해 러중 국경의 승객 및 화물 처리량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새로운 물류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크렘린궁은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양국이 달에 건설 중인 국제과학정류장(ISLS)을 강조했다. 오는 9월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지지한다면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를 연계, 보다 광범위한 유라시아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 역시 러시아 전승 80주년의 의미를 강조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일련의 정치적 성명이 갖는 의미에 집중했다. 이번이 11번째 방러라고 소개하면서 러시아가 중국 국가주석 취임 뒤 가장 자주 방문한 국가임을 강조했다. 전승 70주년 퍼레이드에도 참석했음을 상기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양국 관계의 괄목할 발전을 부각했다. ☞ 러중 정상회담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