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의 첫 시험대…기계적 상대평가 극복
평가 방식 바꾸면 아이들의 삶이 바뀐다
현장교사의 전문성·자율성 존중 절대적
교육관료·연구집단 지원 역할 머물러야
프랑스 토론수업과 절대평가 좋은 사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교육개혁의 주체는 교사여야 한다. 교육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은 현장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교육 관료와 연구 집단은 의사결정의 집행 단위가 아니라 지원 단위에 머물러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할 때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지시와 통제를 위해 공문 발송하고 교사에게 공문 보고를 요구하는 현행 권위주의 교육행정은 낡은 유물이다. 하루빨리 박물관 한 귀퉁이로 옮겨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교육부-교육청은 위계질서 속에서 학교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교사의 평가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다. 수행평가 비율을 비롯해 평가 방식을 제도의 틀로 통제하는 게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심지어 교육 철학에 반하는 상대평가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상대평가에 기반한 경쟁 교육은 야만이고, 파시즘 교육이라는데 교육 관료들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지시와 관행에 익숙한 교육 관료들에게 더 이상 우리 교육을 맡길 순 없다.
교육 평가에서 프랑스 중학교 졸업 자격 시험문제(Brevet)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세계에서 토론수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 프랑스는 학생 평가도 글쓰기를 통해 논술형으로 한다. 예를 들면 노숙인 등 주거지가 없는 사람들 실태와 평등권을 담은 헌법 전문을 제시문으로 주고, '사회적 시민권' (주거권)에 대한 의견을 담은 논술문을 쓰도록 한다.
논술형 평가는 아이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힌다. 이를 위해 토론수업은 필수다. 사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아이들 또한 독서를 생활화한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바로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기출문제 사례를 소개한다.
인가의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 가는 것은 역사인식인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도 도덕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역사학자가 기억력에만 의존해도 좋은가?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문제인데 모든 문항에 철학적 사고를 요구한다. 누구나 답안을 쓸 수 있겠지만, 아무나 훌륭한 답안을 쓰기는 어려운 문제다. 모두 독서와 토론 수업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들 문제는 모두 교사가 출제하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수능시험의 기계가 채점하는 5지 선다형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 영국 A 레벨 시험 등이 모두 절대평가이고 논술형 시험이다. 무엇보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며칠에 걸쳐 시험을 친다. 우리처럼 학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관리자 중심으로 하루 만에 결판내지 않는다.
절대평가는 교육의 원리에 기초해 학생의 자기 성장과 자존감을 중시한다. 반면 상대평가는 경쟁의 원리에 기초해 우열을 나누는 등 학생의 자존감에 열패감을 비롯해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독일, 핀란드를 비롯해 북서유럽 국가들은 절대평가를 취하고 논술형 평가로 학생의 자기 성장을 추구한다.
우리나라에도 깊은 교육 철학을 간직한 채 아이들 심연의 깊이를 더하려고 애쓰는 교사가 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토론과 논술형 평가를 실천한 교육자 김순태 선생님이 바로 그분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렸고 교사와 학생 모두 만족해한다. 학교 또한 교사의 교육 철학을 믿고 지지한다. 강사인 글쓴이가 1시간 내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과 천양지차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교육활동, 아이들이 행복한 수업이 되려면 아이들을 성장의 주체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해 나가며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정연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바로 그것이다.
교사는 영상 자료를 함께 보고 아이들에게 토론 주제를 제시한다. 토론수업이 끝나면 영상 자료를 떠올리게 할 핵심어를 여러 개 제시해 주고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립하도록 배려한다. 아이들 답안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중학생 논술 답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프랑스 중학교 졸업 자격시험 브르베(Brevet)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구나 참교육자 김순태 선생님은 규범 준수(20점) - 토론 및 발표(30점) - 논리적 사고(30점) - 지식디자인(20점)으로 평가 요소도 다양하다. 아이들을 전인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경기도 시흥시 혁신학교에서 목격했던 20~40대 젊은 교사들의 교수-학습 장면과 평가 방식을 다시 보는 듯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논할 게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에 주목해야 한다. 교육정책은 현장 교사의 교육적 번민과 실천을 고스란히 받아 안아야 한다. 지시와 통제, 그리고 감독하는 권위주의 교육행정과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 교사들의 실천적인 노력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그분들의 결실을 정책화해야 한다. 교육개혁은 어렵지 않다.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데서 교육개혁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