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헌법책'의 외침…시민교육이 내란방지 지름길

2016년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배포 시작

독일, 극우 정당에 맞서 시민교육 제도화

50년 시민교육이 최고의 시민의식 토양

시민교육, 국가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해야

2025-05-07     하성환 시민기자

학교 안팎의 교육과정에서 시민교육의 존재 여부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유럽에서 시민교육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독일은 50년 전부터, 가장 짧은 영국도 20년 전부터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시민교육을 시행해 왔습니다. 특히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80년대 이후 유럽 사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급변했고, 그 반작용으로 극우 세력이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90년대 유럽 연합(EU)의 등장은 극우 세력의 성장에 불을 지폈습니다. 거꾸로 사회 갈등이 점증하던 90년대엔 북서유럽 국가들이 시민교육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에서 다문화주의 반대, EU 반대를 내건 극우 정당 핀란드인당이 46석을 차지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자료 : 핀란드 법무부, 편집 : 하성환 시민기자

유럽 극우 세력들은 오늘날 EU 탈퇴, 반이민을 부르짖고 사회적 소수자,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차별과 혐오를 조장합니다. 이미 2022~2025년 총선에서 제도권 정치에 진출해 국민연합(프랑스, 3위), 핀란드인당(핀란드, 2위), 스웨덴 민주당(스웨덴, 2위), 피데스(헝가리, 1위), 이탈리아 형제당(이탈리아, 1위), 자유당(오스트리아, 1위), 자유당(네덜란드, 1위), 대안당(독일, 2위)은 일약 제1, 2, 3당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독일 대안당(AfD)이 올해 2월 총선에선 창당 12년 만에 제2당으로 도약한 반면, 150년의 역사를 지닌 집권 독일 사민당이 제3당으로 추락할 정도로 극우 정치세력의 성장이 놀랍습니다. 오늘날 유럽 극우 정치세력은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트럼프 흉내를 냅니다. 가히 유럽 사회는 극우 정치세력의 전성기인 듯합니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난민을 100만 명 가까이 받아들여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독일은 그 반작용으로 독일 대안당(AfD)의 급성장을 초래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은 유럽 연합(EU)을 이끄는 핵심 국가로서 흔들림이 없습니다. 여전히 유럽 최대의 단일 시장을 보유한 경제 대국이자 기후 정의를 실천하는 모범 국가입니다. 특히 50년이 넘는 시민교육 전통은 독일인 평균 시민의식을 높은 수준에 머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독일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50년 전인 1970년대부터 학교 교육과정으로 시민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논란이 된 사회 현안을 초중고 학교 교육과정에서 날것 그대로 교실 수업에서 취급합니다. 교사의 일방적 훈화와 가치 주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배제한 채, 학생 스스로 비판 의식과 정치적 판단 능력을 길러줍니다. 독일 시민교육의 대원칙인 이른바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정신입니다. 예를 들면 정치사회 현안을 교실 수업에서 날것 그대로 다룹니다. 최근 전 국민을 경악과 충격에 빠트린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석방이나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파기환송 같은 사건이 독일 사회에선 모두 교실 수업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은 1997년 뮌헨 선언을 통해 시민교육이 바로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임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마그데부르크 선언을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규정했습니다. 독일은 마그데부르크 선언 이후 학급회장을 ‘학급 대변인’으로 칭하고 학급회의를 ‘학급평의회’로 부릅니다. 학급공동체 문제 해결의 주체가 공동체 구성원임을 명확히 한 표현입니다. 학교 일상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교육철학이 담긴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실제로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학생들의 외부 정치활동을 높게 평가합니다. 우리 교육이 새겨듣고 성찰할 대목입니다.

 

독일 정치교육 개요. 자료 : 하성환 시민기자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은 내무성 산하이지만, 법령으로 완전히 독립된 기구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원 활동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감시하는 감독위원을 정당 의석수에 따라 배분합니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16개 주 정치교육원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학교 민주시민교육, 즉 정치교육도 적극 지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독일 헌법(기본법)을 시민 누구나 쉽게 접하도록 손바닥 헌법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직속기구나 행안부 산하 독립기구로 「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비판하는 시민을 길러내야 합니다.

김용택 선생님을 비롯한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주축이 돼 2016년 설립된 민간기구인 '우리 헌법 읽기 국민 운동'이 '손바닥 헌법책'을 발간해 권당 500원씩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재까지 60쇄를 찍어 60만 부가 보급됐습니다. 다만, 독일처럼 손바닥 헌법책을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하면 더욱 바람직하겠습니다.

 

김용택 선생님을 비롯해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우리헌법읽기 국민운동이 2016년 처음으로 배포한 '손바닥 헌법책' 사진 : 하성환 시민기자

12·3 내란 사태 당시,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육사를 졸업하거나 서울대, 경찰대를 나온 수재들로 고위직에 오른 자들입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헌법 제77조에 계엄 발동 요건이 어떻게 명기돼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면 과연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불법 부당한 명령을 순순히 따랐을지 궁금합니다.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쿠데타는 온 나라를 불안하게 만들고 전 국민을 분노케 했습니다. 법조계 괴물 엘리트들은 ‘시험형 인간’을 양산해 온 우리 교육의 실상이자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응원봉 빛의 혁명’으로 탄생할 민주 정는 북서유럽처럼 ‘시민교육’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해야 합니다. 기존 중학교 도덕 교과를 프랑스처럼 ‘도덕·시민’ 교과로, 고등학교 통합사회를 ‘헌법·정치’ 과목으로 명칭을 변경해 시민성을 높이고 부단히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나아가 시민교육을 유초중고 전 학년에 걸쳐 필수 의무 교육과정으로 가르치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 길이 내란 세력의 싹을 영구히 종식하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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