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보다 더 위험한 미국 보호주의 재산업화

자국 이익에만 집착하는 미국 보호주의

IRA 등 보조금, 제조업 빼앗기, 수출통제

동참하지 않으면 다 잃는 규칙 깨기 게임

미국의 탈보호주의 기대는 지나친 낙관?

2023-01-17     한승동 에디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불법입국 문제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불법입국자 즉각추방을 허용하는 정책인 '타이틀 42'의 확대 지침을 밝히면서 대신 최근 미 국경지역에서 불법입국 시도가 많이늘어난 중남미 4개국 국민의 합법적 이민을 위해 매월 3만명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2023.01.06 로이터 연합뉴스

‘아메리카 퍼스트’보다 더 위험

자국 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동맹국이나 우호국들에서도 제조업을 빼앗아 오고, 상품과 자본을 통제함으로써 상호이익보다는 자국 이익 확보에만 몰두한다. 미국 중심부 재산업화(reindustrialisation)를 추구하는 조 바이든 정권의 보호주의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민주, 공화 구별없이 초당파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미국이 세계를 보조금과 수출통제, 보호주의로 가는 길로 선도하고 있다며 세계화를 위협하는 이런 ‘파괴적인 새로운 논리’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아메리카 퍼스트’보다 더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규칙 깨기 불참하면 다 잃는 제로섬 게임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부 보조금 등의 특혜와 정부(국가) 개입에 비판적인 자세로 그것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던 미국이 이제 오히려 앞장서서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 뒤집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 감축법(IRA) 통과가 그것을 상징한다. 이 법으로 향후 10년간 반도체와 재생에너지, 그린 테크놀로지에 1조 달러 이상의 돈이 투입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주력 첨단산업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 가고, 독일에 공장을 지으려던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업체 노스볼트도 보조금을 주는 미국내 사업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2020년대 말에 가면 미국 태양광발전 패널이 세계에서 가장 값싼 경쟁우위를 확복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이를 수수방관할 리 없다. 한쪽이 규칙을 깨면 다른 쪽도 바로규칙을 깬다. 안 깨고 버티다간 다 잃게 된다. 이것은 기본적인 게임 이론이다. ‘자유무역’은 죽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조차 보복적 대응태세를 갖출 것이고 국가간, 기업간 싸움은 더 격심해질 것이다.

지난 9일과 12일 두 번에 걸쳐 바이든 정권의 보호주의로의 방향선회를 비판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모두가 손해 보는 ‘제로섬’ 사고(zero-sum thinking)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말로 요약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불법입국자를 즉각 추방하도록 허용한 정책인 이른바 '타이틀 42'의 확대 방침을 밝혔다. 대신 최근 미 국경지역에서 불법입국 시도가 많이 늘어난 중남미 4개국 국민의 합법적 이민을 위해 매월 3만명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2023.01.06 EPA 연합뉴스

중국을 닮아가는 미국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2007~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국의 이런 변화는 트럼프 정권 때 기존질서에 본격적인 흠집(균열)을 냈고, 지금 바이든 정권이 두 번째로, 더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있다. 바이든 정권은 공세적인 산업정책을 위해 자유시장 규칙을 버렸다. 그린 에너지와 전기차, 반도체 부문에 4650억 달러의 보조금을 풀어 생산의 미국화를 추구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10년간 1조 달러를 투자하면, 연간 투자액은 1000억 달러인데, 이 1년치 투자액이 팬데믹 이전 10년간 전체 보조금의 약 2배다. 미국 정부가 예전에도 보조금을 뿌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규모 자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주식시장 등 경제에 대한 외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관료들은 투자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첨단 반도체 칩과 칩제조 장비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정부 개입을 통한 이런 근육질 산업정책으로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민간이 실패한 탈탄소화와 미국 중심부의 재산업화를 정부 개입으로 성공시키려 한다.

이는 마치 중앙집권적인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정부의 산업정책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이런 정부 개입 강화는 중국식 산업정책의 성과와 그로 인한 미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한다. 미국이 중국을 닮아가겠다는 것인가.

바이든의 미국 중심부 재산업화 전략

미국의 이런 보호주의적 산업정책은 위험한 보호주의의 회오리를 전 세계에서 불러일으켰다. 예컨대 인도는 반도체 칩 제조공장을 짓기로 하고 정부가 그 건설비용의 절반을 댈 예정이다. 한국도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대한 감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2020년 이후 7개 시장경제국들이 발표한 전략부문 지출 총액은 1조 1천억 달러에 달한다. 유럽 관리들은 지난해 국가간 거래의 약 3분의 1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였다. 배터리 원료 보유국들은 수출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수출을 금지했고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칠레는 조만간 산유국(오펙) 스타일의 리튬 광산 생산 및 수출 통제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촉발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통합되면서 민주화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자립적 독자체제를 구축하면서 결과적으로 1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중국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미국이 기존의 세계화에 대한 집착을 버린데서 시작됐다. 오늘날 미국은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듯 중국의 배터리에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반도체 첨단 칩 제조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우위를 잃게 될 경우 장차 군사전략을 짜고 미사일을 유도하는데 필수적인 AI(인공지능) 능력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초조감 때문에 미국 조야에서는 심지어 중국이 부유해지는 것을 막고, 14억 인구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도덕적이고 평화를 확보하는 것인양 뒤집힌 사고를 하는 사람들조차 있다고 한다. 바이든 정권의 보호주의는  그래도 그것보다는 나은 미국 중심부 재산업화를 통한 미국의 경제 회복, 군사적 우위 유지, 글로벌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위상 확보를 꾀하고 있다.

 

7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패소에서 불법입국자 즉각 추방 정책인 '타이틀 42'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타이틀 42 정책의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그 대신 중남미 4개국 국민의 합법적 이민을 위해 매월 3만명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2023.01.08 로이터 연합뉴스

보호주의 정책은 잘못

하지만 이런 보호주의 정책은 잘못된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생각이다.

설사 미국의 재산업화 정책이 성공한다 한들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글로벌 안정을 약화시키고 성장은 후퇴할 것이며, 그런 전환을 위한 비용을 증대시켜 결국 해를 입히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미국에게도 부메랑이 돼 손해를 입힐 것으로 본다.

왜 그런가?

<이코노미스트>는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중복투자로 인한 추가비용 너무 크다

첫째, 중복 투자로 인한 경제적 추가 비용이 너무 크다. 글로벌 차원의 하이테크 하드웨어와 그린 에너지, 배터리 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중복 투자는 3조 1천억~4조 6천억 달러(세계 GDP의 3.2~4.8%)에 이르게 될 것이다. 미국의 재산업화는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기게 될 것이다. 그린 공급망의 중복 투자는 미국과 세계의 탈탄소화 비용을 증대시켜 막대한 공금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대만의 대표적인 반도체 칩 제조업체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칩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대만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55% 더 비싸다고 했다. 미국에 새 공장을 짓거나 일부를 옮기면 첨단 제조 전문가 네트워크가 파괴되고 작업은 중복된다. 그리고 TSMC의 존재기반인 기술적 우위를 미국에 넘겨 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보스턴 컨설팅그룹 조사로는, 복수의 자족적인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려면 매년 450억에서 1250억 달러의 운영비 등 모두 9000억에서 1조 2000억 달러의 투자금이 추가로 들어간다.

 

아녜스 파니에뤼나셰르 프랑스 에너지부 장관(오른쪽)이 19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에너지장관 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EU 에너지장관이사회는 내년 2월부터 천연가스값 급등을 막기 위한 가격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2.12.20 AP 연합뉴스

둘째, 우방과 동맹국들의 분노를 살 것

둘째, 우방국과 동맹국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비범했던 것은 글로벌 상업(경제) 개방(자유화)이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썼다. 그 결과 1960년까지 미국은 자국의 생산이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화를 추구했다. 오늘날 그 수치는 25%로 내려갔고, 미국에겐 어느때보다 우방과 동맹들이 필요하다. 중국에 첨단 칩 제조상품 수출을 금지하려면 네덜란드의 EUV 노광장비 생산업체인 ASML과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인 도쿄 일렉트릭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배터리 공급망도 마찬가지로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들 블록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는 유럽과 아시아 동맹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한국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대다수 외국회사 제품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 도요타, 소니 등 8개 없체가 반도체 칩 제조업체 라피두스를 새로 만들었다. 일본정부는 700억엔(약 5억 달러)을 반도체연구소 설립에 대 주기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경제장관들은 전략부문에 대한 지원을 더 신속하게 투입하게 하는 국가 지원 규칙을 새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자국에 꼭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신흥국들의 협력도 얻어야 한다. 골드먼 삭스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세계 3, 4위의 경제대국이 된다. 둘 다 민주국가지만 미국의 가까운 우방은 아니다. 2075년까지 나이지리아와 파키스탄도 경제적 영향력이 엄청 커질 것이다. 미국이 지금처럼 다른 나라들에 자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채 중국 배제를 요구한다면, 그런 신흥국들은 퇴짜를 놓을 것이다.

셋째, 경제분쟁 급증으로 문제 더 악화

셋째, 경제분쟁이 급증할 것이고, 그럴수록 글로벌 협력이 필요한 문제들을 풀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린 기술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빈곤국들의 탈탄소화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다투고만 있다. 스리랑카처럼 부채로 고통받는 나라들 구제도 중국이 방해할 경우 불가능하다.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중요 생산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위험을 피하려면 다른 형태의 글로벌 통합은 더 필수적인 것이 된다.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끼리 더 깊은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우방과 동맹들조차 화나게 만들면서 자국 이익 확보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초기에 그 결성을 지원했으나 나중에 탈퇴해버린 CPTPP(포괄적 환태평양협력협정) 등에 가입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가운데)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왼쪽),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협력 공동선언 발표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 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온 이날 협력 공동선언에서 "우리가 직면한 안보 위협과 도전은 범위와 규모 면에서 커지고 있어 우리의 파트너십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려 한다"고 밝혔다. 2023.01.10 로이터 연합뉴스

자유무역 인기 되살아난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 의회의 지지를 보건대 세계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에 변화가 일고 있으며, 자유무역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바이든 정부도 동맹들의 반응에 신경쓰고 있다는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위기에 직면한 글로벌 질서를 구해내려면 미국이 제로섬 사고의 잘못된 약속을 거부하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 잡지는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완전한 시스템 붕괴 전에 그렇게 해야 하며, 아직 그럴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 잡지의 진단이다.

너무 낙관적인 <이코노미스트>의 전망?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분석과 주장은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은 배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일종의 ‘가치 동맹’ 가맹국들만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가 아직 되살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한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자유무역, 시장자본주의의 글로벌은 말 그대로 지구상 모든 나라가 아니라 서방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중심을 이루는 세계다. <이코노미스트>가 대변하고 있는 유럽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분노’와 미국 비판은 그러므로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그런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쓰지 말라는 요구와 연결된다. 미국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가치 동맹들끼리는 협력해서 함께 살자는 얘기다. 물론 중국 등은 배제된다.

바이든 정부의 IRA 제정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서둘러 만드는 바람에 우방이나 동맹들의 이익까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그들의 반발을 사는 등 결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어느 정도 수정해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으나,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정치적 흥정대상으로 삼을 경우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미국의 최근 보호주의적 방향 선회가 단지 정책상의 잘못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대두가 보여주듯 글로벌 차원의 생산과 잉여 배분이 서방 위주로 이뤄졌던 지금까지의 세계 정치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은 너무 낙관적일 수 있다. 따라서 서방의 요구와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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