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 품귀 대란, 지구온난화 탓 크다
일본이 좋아하는 고시히카리 기온상승에 흉작
더위에 특히 약한 고시히카리
고온에 견디는 신품종 개발이 돌파구
그럼에도 줄지 않는 고시히카리 재배면적
늘고 있는 신품종들조차 고시히카리계 친척들
닮은 유전자, 온난화에 더 불리할 수도
지난해 여름에 시작된 일본의 ‘쌀 소동’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 탓이 크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 24일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쌀 수급에 영향을 준 2023년의 니가타 현 산출 고시히카리 품종의 1등급 쌀 비율은 4.3%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농산물검사법에 따른 쌀 품질검사에서 니가타산 고시히카리 1등급 비율이 이처럼 낮은 적이 없었다.
일본인 좋아하는 고시히카리 기온상승으로 흉작
고시히카리는 1979년 이후 일본 주식용 쌀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고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품종으로 군림해 왔다. 2024년산의 경우 품질검사를 받은 쌀만 100만톤이 넘어, 멥쌀 전체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 니가타산 고시히카리가 전국 최대인 약 23만톤을 차지했다.
벼 이삭이 나온 뒤의 기온이 쌀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때 약 20일간의 평균기온이 섭씨 26~27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전분(녹말) 축적이 충분하지 못해, 희고 탁하게 보이는 저품질의 쌀알인 ‘흰 미숙 쌀(白未熟粒)’이 증가한다.
2023년 8월 니가타 현 곡창지대인 우오누마 시 평균기온이 28.8도로 통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이 기록적인 고온과 건조한 날씨 탓에 니가타산 쌀 중에서 저품질의 흰 미숙 쌀이 양산됐다.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한 벼도 있었고, 고온 속에 늪지의 물이 말라 논에 물을 댈 수 없어서 말라죽은 벼들도 있었다. 그해에 검사를 받은 그 지역 쌀은 모두 2등급 이하였다. 그 때문에 우오누마 시에서 80헥타가 넘는 벼농사를 짓는 세키타카(73)라는 사람은 전년도보다 약 1000만 엔(약 1억 원)이나 수입이 줄었다.
2023년의 기록적인 더위가 2024년 쌀 소동 원인
일본 기상청은 2023년이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고 밝혔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그해 일본 전국 멥쌀 1등미 비율은 60.9%로 그 전해인 2022년 대비 17.7%p가 줄었다.
그때의 영향이 해를 넘겨 2024년 8월부터 시작된 쌀 품귀와 가격 폭등, 이른바 ‘레이와(나루히토 천황 연호) 쌀 소동’을 유발했다. 품질이 낮은 쌀알이 많아지면 정미(쌀 가공) 과정에서 쌀알이 부스러지는 등 팔 수 있는 쌀이 줄어드는데, 이 또한 쌀 품귀의 한 원인이 됐다. 그리하여 올해 3월에도 쌀 가격이 평소의 2배 이상으로 뛰고, 그 비싼 값에도 가게에서 쌀을 구하기도 어려운 ‘쌀 대란’이 이어졌다.
더위에 특히 약한 고시히카리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시히카리는 특히 더위에 약하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고온에 대한 내성이 약한 고시히카리는 수확량도 줄고 품질도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니가타 현은 고시히카리 모내기를 늦추고 수확시기도 늦추게 하는 한편 여러 다른 품종들을 심게 하거나 물 관리, 시비(비료 주기) 관리로 품질 저하를 막도록 하고 있다. 그 덕인지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4년 니가타산 고시히카리 품질 1등급 비율은 73.1%로 다시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금세기 말 쌀생산 20% 줄어
그 덕분인지 2024년은 고온으로 벼가 말라죽는 일은 없었으나, 웃자라거나 줄기가 가늘어져 쓰러지는 벼들이 적지 않았다. 벼들이 쓰러지면 수확하기 어렵고 품질도 떨어진다. 그 때문에 니가타 현 벼 작황지수는 (100 기준에) 98로, 2년 연속 ‘다소 불량’ 판정을 받았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이번 세기 말에 일본의 쌀 수확은 20세기 말의 80%, 저품질의 ‘흰 미숙 쌀’ 발생률은 4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온에 견디는 신품종 개발이 돌파구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책(적응책), 즉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고온에 잘 견디는 품종으로 쌀 품종을 바꿔 가는 것이다. 일본정부의 ‘기후변동적응계획’도 고온내성 품종의 개발과 도입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고온내성 품종 보급이 서서히 늘고 있다. 농림수산성은 고온내성 쌀 품종의 재배면적은 2023년에 18만 2936헥타로, 10년 전의 약 2.8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도야마 현이나 도치기 현 등에서는 ‘도치기의 별’ 등 고온내성의 독자적인 품종의 쌀를 개발했고, 기록적인 고온의 여름을 보낸 2023년 품질검사에서도 그 신품종들은 1등급미의 비율이 90%를 넘었다. 그해 고시히카리 품종의 전국 평균 1등급 비율은 50.4%로, 이들 고온내성 신품종들과 차이가 컸다.
그럼에도 줄지 않는 고시히카리 재배면적
고온내성 품종 중에는 일본곡물검정협회가 매긴 ‘쌀 식감 순위’에서 최상급인 ‘특A’ 평가를 받은 품종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부면적을 보면, 고온내성 품종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3년의 경우 약 15%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고시히카리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 미곡안정공급확보지원기구에 따르면, 니가타 현 내에서 고시히카리 작부면적은 멥쌀 전체 작부면적의 70%가 넘는다. 니가타도 고온내성의 신품종인 ‘신노스케’를 개발했으나, 2023년의 재배면적은 약 4500헥타로, 약간 늘긴 했지만 전체의 4.5%에 지나지 않았다.
농민들 인기높아 값비싼 고시히카리 재배 선호
니가타 현은 고온내성 품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기후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재배기술 개발 등을 통해, 전국 소비자들의 식감과 품질 등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높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고시히카리를 쌀 생산의 기둥으로 삼는 방침을 고수하려 하고 있다.
신노스케와 같은 고온내성의 신품종 쌀도 1등급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기에, 신노스케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높은 품질평가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쌀은 모두 ‘기타 멥쌀’로 분류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가격이 뚝 떨어진다. 따라서 그래도 재배경험이 오랜 고시히카리를 심는 것이 더 안전하고 낫다고 생각하는 농민들이 많다.
고시히카리가 고온내성 신품종 쌀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영향도 크다. 농수산성이 공표한 2024년산 쌀의 거래가격을 보면, 동일본 지역을 중심으로 고시히카리와 고온내성 품종의 현미 가격은 60킬로그램당 5000엔(약 5만 원) 이상의 차가 나는 곳도 있다.
늘고 있는 신품종들조차 고시히카리계 친척들
이처럼 고시히카리 가격이 높은 것은, 일본 전국 쌀 도매업자들 조직인 전국미곡판매사업공제협동조합이 "역시 쌀 하면 ‘고시히카리"라고 얘기할 정도로 강한 브랜드 힘이다. 거래량도 많고 “맛있다”는 안정적 평가도 그런 경향을 부추긴다. 맛에 결점이 없다는 얘길 듣는 고시히카리는 자주유통미제도를 배경으로 높은 가격에 전국적으로 유통된다.
닮은 유전자, 온난화에 더 불리할 수도
이 때문에 신품종 개발에서도 고시히카리를 베이스로 한 ‘아키타코마치’, ‘히토메보레’ 등의 그 친척 품종들이 석권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곧 더위에 약한 고시히카리 계열 품종이 늘고 있다는 얘기여서,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기후위기 시대에는 쌀 생산에 더 불리한 쪽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들이 유전적으로 닮은 점도 불리하다.
일본과 닮은 한국도 ‘강건너 불’ 아니다
‘레이와 쌀 소동’에는 이처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일본인들의 고시히카리 집착 외에 약 50년에 걸쳐 실시돼 온 쌀 경작면적 축소 정책,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진행되는 노동력 부족,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뚜렷해진 인플레(물가 인상), 그리고 쌀 수요의 감소 경향, 부적절한 재고 관리와 뒤늦은 정부의 비축미 방출 등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해 발생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런 쌀 부족은 일과성 사건이 아니라 공급 불안정화와 수요구조 변화와 맞물려 장기화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에 온 일본인들이 한국산 쌀을 사서 가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일본이 한국 쌀을 수입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온난화와 기온 상승 외에도 여러 면에서 일본과 닮은 점이 적지 않은 한국에게도 ‘레이와 쌀 소동’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