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의 '윤석열'을 파면하자

윤석열 파면이 모든 '윤석열' 없애진 못해

숨은 구조적 차별 없애야 진정한 민주주의

우리가 또다른 '윤석열' 안되게 경계해야

2025-04-19     유하영 시민기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다음날인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승리의날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4.5. 연합뉴스

4월 4일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그럼 이제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된 걸까? 광장은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내란 청산과 사회 대개혁으로 향하고 있다. 내란 공범과 방관자들의 만행이 2주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을 파면했다고 해서 '윤석열'이 사라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공권력에, 법조계에, 정부에 여전히 있다.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 우리 내면에 자리하기도 한다. 윤석열을 규탄한 이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윤석열을 끌어내렸다고 모두 민주주의자인가? 당신이 '윤석열'이었던 적은 없는가?

'윤석열'은 단 한 명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한국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구조적 차별로 누군가의 삶을 ‘비상계엄’으로 만드는 권력을 대표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화되지 못한 공간인 기지촌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 국가는 달러벌이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여성들을 미군 '위안부'로 내몰았다. 박정희 정권은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하여 성매매를 처벌하면서도 집결지와 기지촌은 성매매 허용 특구로 만들어, 기지촌 여성들을 국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희생시켰다.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감축이 예상되자 정권은 기지촌 정화운동을 펼쳐, 성병관리소를 설치하고 성병에 걸린 성매매 여성들을 수감해 '깨끗한 기지촌'을 만들었다. 정권은 기지촌 여성들을 '민간 외교관'이라고 불렀다.

 

성병 검진증과 박정희가 서명 결재한 기지촌 정화사업 보고서 표지. 2024.10.7.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많은 사람들이 미군기지 반환이 시작된 이후 기지촌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주둔 기지가 있으며, 평택과 동두천 등의 기지촌은 여전히 활성화돼 있다. 달라진 점은 미군 '위안부'가 한국 여성에서 필리핀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이 기지촌을 떠나자 업주들은 로비를 통해 필리핀 여성들을 공연노동자로 데려왔다. 이들을 착취하는 기획사와 클럽 운영자들 전부 한국인이다. 심지어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 여성들이 업주나 관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케이팝(K-pop)의 뿌리는 기지촌의 위문공연 무대이다.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하고 팬들이 그것을 관람하는 문화는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가 공연했던 미8군 클럽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연예인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오늘날 K-pop은 제국주의 문화였던 것을 전유해 빌보드를 장악하고 전 세계에 그 위상을 떨쳤다. 말 그대로 '빛의 혁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제국이 되고, 기지촌은 또 다른 식민지가 되었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국가 폭력은 지금도 다른 얼굴로 자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는 누구의 민주주의인가? 그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인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발언 무대에서 장혜영 전 의원,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 권김현영 여성학자 등 여성 28인이 여성1만인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3.8 여성 1만인 선언 주최측. 2025.03.11 여성신문

기지촌의 사례는 민주주의가 퍼져나가지 못한 곳들이 있으며, 억압받았던 이들이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파면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사회대개혁까지 쟁취하겠다는 광장의 움직임에 나 역시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광장의 민주주의가 지우는 모순도 보인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독재에 반대한다고 다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민주주의자이다.

87년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이들 중 일부는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들을 비판한 페미니스트는 진보를 모독한다며 비난받았다.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게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그런 세계를 바라며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나의 삶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그 이름도 폭력이 된다. 억압은 좌우도, 계급도, 피해자의 위치도 가리지 않고 재생산될 수 있다. 차별받은 이들도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24.12.14 연합뉴스

일상의 '윤석열'을 파면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윤석열이 등장할 수 있다. 내 안의 '윤석열'을 파면하지 못하면, 내가 윤석열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여성을 대상화 하지 마라. 윤금이 씨를 누이라 부르면서 기지촌 여성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문화라 치부하지 마라. 김건희를 비판할 때 접대부 쥴리라며 조롱하지 마라.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지 마라. 성소수자를 반대하지 마라. 가난한 사람을 능력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소수자를 낙인찍지 마라. 귀족노조라는 말 쓰지 마라.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비문명이라 하지 마라. 피해자와 유족에게 돈을 바란다고 욕하지 마라.

우리가 끌어내린 건 윤석열 한 사람일지 몰라도, 우리 안의 윤석열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해와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광장에서 배운 모든 것을 나의 연구에 녹여낼 작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곳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 주겠는가?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윤석열을 파면하는 것을 넘어, 내 안의 윤석열을 파면해 주겠는가? 누군가의 윤석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주겠는가? 우리, 윤석열이 되지 말자. 빛의 혁명을 완수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빛의 혁명이 되자.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