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사 파업에서 배운 것 없는 정권·보건당국
[특별기고] 윤석열의 의료개혁 파탄 해부 ➁
“우리는 2000년 의사 파업을 계기로 사회가 정상 작동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잘못된 의료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한 수술 작업인 의약분업이 오히려 국민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건강보험료는 더 올라가고 개인 호주머니에서 직접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도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도 중병에 걸리면 목돈이 들어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더욱 늘어나야 할 보건소 등 공공 의료기관의 의사들은 사표를 내고 의사 파업 후 돈벌이 환경이 매우 좋아진 개원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실력 있는 의사들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데려와도 모자랄 판인 의료기관에서는 오히려 질 좋은 의사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싸움인 의사 파업에서 승리한 의사들은 전리품으로 엄청나게 높아진 건강보험 수가를 챙겼으며 곧바로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가져왔다.”(<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2002. 안종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제1차 의사 집단과 정부‧국민과의 의료 개혁 싸움에서 의사들이 승리한 뒤에 벌어진 일들을 묘사한 글이다. 2차 대회전이 벌어진 윤석열의 의대 정원 대폭 확대 사건에서도 위기에 빠진 응급의료와 수술을 정상 상태로 돌리기 위해 정부는 또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대거 투입해 관련 진료비 수가를 대폭 올려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1차에 이어 2차도 판정패가 아닌 케이오패를 당했다. 충분히 몸을 풀지 않고서 링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대파업 승리로 얻은 의사들의 무적불패 자만감
1차 전쟁 이후 팔십이 넘어도 평생 직업으로 일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안정된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늘어났다. 이를 계기로 전국 의대 다음에 스카이가 있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의사들은 1차 전쟁 이후 자신감을 넘어 자만감까지 드러냈다. 의사들의 디엔에이에는 불패 신화, 무적 신화의 유전자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심하게 건들면 유전자가 발현돼 표현형이 된다. 대한민국 의사 집단에 도전하는 자와 집단은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고 그들은 되뇌어왔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당시 상황을 나는 책의 ‘31. 한국 의사들이 힘센 다섯 가지 이유(227~235쪽)’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루었다.
“이처럼 나라를 뒤흔든 불법 집단행동을 하고도 그 우두머리인 김재정 당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다. 그러자 그는 곧장 대정부 규탄 의사 집회에 참석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나머지 주동자들이나 휴업과 파업을 진두지휘한 간부 가운데 상당수도 마찬가지로 풀려났다. 그리고 전공의들이나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의사협회 등은 신상진 의쟁투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했으며 몇몇 동료들과 함께 무조건 풀어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외쳐댔다. 이들이 무서웠든지, 아니면 하루빨리 의사 파업을 풀어보기 위한 화해 몸짓이었는지 몰라도 신상진 위원장마저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이뿐 아니라 의사 파업을 이끌었던 전국 시‧도의사협회 지도부를 보건복지부 등이 고발했지만 이들에게는 엄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노동자들이 이런 파업을 벌였으면 아마 적어도 수십 또는 수백 명이 감옥에 갔을 것이고 지도부는 몇 년간 감방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의료대란 수괴 의협 회장의 석방과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탈옥
이 대목에서 누구는 내란 수괴 윤석열이 구속됐다가 갑자기 석방된 일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석방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어서 왕이나 황제도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23년 전 필자는 한국 의사들이 힘센 다섯 가지 이유로 (1)이익집단, 즉 의사단체의 재정력 (2)이익집단 구성원, 즉 의사의 사회적 명성 (3)정책 결정, 의료 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 (4)집단 규모, 즉 10만(지금은 16만) 명이 넘는 의사 수 (5)집단의 응집성, 즉 의사, 특히 전공의들의 단결력을 꼽았다. 이번 전공의 집단 휴직과 선배 의사들의 맹목적 지지에서도 잘 입증됐다.
윤석열은 의료 개혁의 시발점으로 의대 정원 대폭 확대를 택했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때 의사들은 약을 가장 잘 아는 직업이 약사가 아니라 의사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 수가 너무나 과잉이기 때문에 당시 3천 명 남짓 수준에서 30%를 줄여 2천 명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물론 결과는 의사들 요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 즉 300명 감축으로 타협했다.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료 수요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하지 않고 정치적 타결을 한 것이다. 당시 의사 요구대로 의대 정원을 2천 명으로 줄였다면 대한민국은 의료천국이 아니라 의료지옥으로 변했을 터이다. 그렇게 됐다면 2025년 부자 국민은 한국 의사한테, 서민은 동남아국가 출신 의사한테 진료받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의사 집단은 과거 자신들이 주장하고 요구했던 일에 대해 성찰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20여 년 전에 틀었던 노래를 무한반복 재생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서울대 의대에서 ‘의사 수 추계 연구 공모 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서울대 의대,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 등이 각각 제출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같은 의사들 간에도 각각 다른 ‘적정 의사 수’
세 연구팀의 결론은 완전히 상반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증원하지 않으면 의사 수가 2030년 9063명, 2040년에 2만 1345명, 2050년에 2만 8664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서울대 의대 연구팀은 2037년까지는 의사 공급이 초과 상태라고 봤다. 다만 장기적으로 2050년에는 의사 1만 6241명이 부족해진다고 추산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두 연구팀과 달리 증원하지 않아도 2035년에 의사 3161명이 과잉 공급되고 정부안대로 5년간 증원할 경우 1만 1481명이 과잉된다고 추산했다.
이와 유사한 일은 30년 전에도 있었다. 1994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수요 공급 추계’를 함께 연구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의료 수요를 중간 정도로 잡았을 경우 2005년과 2010년 모두 2천 명가량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보았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3년 뒤인 1997년 재추계를 한 결과 의료 수요를 중간 정도로 잡았을 경우 오히려 1300~2500명가량의 의사가 남을 것으로 보았다.
어느 사회에서 언제 얼마나 되는 의사가 있어야 적정하냐를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고 사회 발전과 의료 기술 발전, 그리고 의료 수요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수요 예측에서 명심해야 할 사실은 당사자, 즉 의사 집단이나 의사 집단이 돈을 대 이루어진 연구나 추계는 반드시 곱씹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의대 수는 세계 최고, 의사 수는 정권 따라 늘었다 줄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거짓을 참으로 바꾼 이른바 청부과학에서 돈이 위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포도주나 막걸리 등 술 회사가 돈을 대 이루어진 연구는 포도주나 막걸리 등에는 폴리페놀 등 항암 성분이 풍부해서 항암 효과가 있다는 선전을 할 수 있도록 뒷배가 되어 준다. 또 홍삼, 비타민C 등 건강기능식품에는 면역물질, 항노화 물질 등이 들어있어 질병, 감염병 예방과 장수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종종 구설에 오른다. 삼성이 국제적 연구청부업자인 ‘인바이런’에게 거액의 용역을 줘 삼성반도체가 직원들의 백혈병과 무관하다는 발표를 하게끔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돈을 댄 쪽에 엄청나게 불리한 결과를 내주면 전주(錢主)가 격노한다는 것을 용역 수주자나 연구자가 잘 알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처럼 퀴즈를 한 번 내보겠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의대 정원이 가장 많았던 때는 언제였으며 몇 명 정도였을까? 물론 2025학년도 이전에. 정답은 내란의 수괴였던 전두환 정권 때였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과 관련한 역사를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266~267쪽)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계속 늘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70년 1100명이던 의대 입학 정원은 1980년 2,090명으로 10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고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때 급격히 늘어 1983년 입학 정원이 3522명으로 정점을 이루었다. 그 뒤 1991년 2888명으로 그 사이 의과대학 수는 늘었으나 의과대학의 전체 입학 정원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들어 의과대학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입학 정원도 3300명가량으로 다시 늘어났다. 김영삼 정부 때 늘어난 의대 수만 해도 모두 아홉 곳으로 현재는 41개 대학이 문을 열고 있다. 이는 인구 대비 의과대학 수에서 세계 으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의약분업 도입에 따른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3300명이 3058명으로 줄어들어 20년가량 그대로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