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자
중심은 지도상 위치가 아니고 가치와 의미 두는 곳
서울의 강점 대중교통망, 과도한 연결성 피로 불러
디지털 기술 발달 지방의 숨겨진 가치 누릴 길 열려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할까?
서울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중심'에 살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서울살이를 선택했다. 서울살이 3년은 '꼭 서울에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방 도시는 서울보다 약 107km²가 넓다. 여의도 면적의 약 23배나 더 크다. 그러나 실제 생활 반경은 서울의 행정 구역인 '구' 2개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이 도시는 시내 양 끝을 차로 30분이면 오갈 수 있다. 처음 서울에 와서 "서울에서 이동하려면 1시간이 기본"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해 먼 거리로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지방에서는 30분만 넘어도 '먼 거리'로 인식된다. 현재 나는 통학 시간만 해도 편도 1시간 10분으로, 하루에 2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허비하고 있다. 만약 지방이었다면 아예 이 거리를 오고 갈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과도한 연결성이 부른 피로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2004년 발간한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선택 자체를 매우 어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발달한 대중교통망과 다양한 시설은 무한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때로는 이것이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는 심리적 부담이 된다.
지방에서라면 거리상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곳들이 서울에서는 '갈 수 있는' 거리가 된다. 어떤 카페에 갈지, 어떤 모임에 참석할지, 어떤 문화 행사를 관람할지 선택지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다양성'과 '접근성'은 서울의 큰 장점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문화적 풍요로움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슈워츠 역시 선택의 기회가 너무 적은 것도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적절한 비교군이 존재할 때 개인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은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의 적은 선택지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만나는 사람 수와 오가는 곳이 줄어든다. 누군가에겐 이것이 단점일 수 있지만, 많은 선택지가 필요 없는 사람에겐 장점이다. 지방은 선택지가 적은 대신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
'중심'이란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서울이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개인에게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재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인터넷을 활용하면 접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범위가 늘어난다. 인터넷을 통해 지방에서도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면 1~2일 내로 물건을 받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꼭 도태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자신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서울에서 3년 간 살아보니 설렘은 점차 선택의 피로와 빠른 속도로 인한 스트레스로 변했다. 그 결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소소한 만남,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개인적 성찰의 시간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꼭 서울에 살아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울을 떠나라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에 비판적 질문을 던져 보자는 얘기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맞는 삶의 터전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진정한 중심은 지도상의 위치가 아니라, 내가 의미와 가치를 두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