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징용 토론회, 일본 의식 '반쪽 요식행위'로 끝나

외교부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 방안 공식화

피해자·시민단체 “전범기업 뺀 굴욕적 해법 반대”

야당과 피해자 일부 불참…“왜 쫓기듯 서두르나”

윤 정부 ‘일본 맞춤 해법’ 강행 때 후폭풍 거셀 듯

2023-01-12     이유 에디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1.12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주최 강제징용 동원 공개토론회가 반쪽짜리로 끝났다.

외교부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공동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은 불참했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에도 일부만 참가함으로써 빛이 바랬다.

외교부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방안 공식화

이날 외교부가 공개한 해법은 한국 기업의 기부만으로 재원을 만들어, 대법원이 판결한 배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안이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제 전범 기업은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불법 행위에 공식으로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전범 기업들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1인당 1 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뒤이어 이에 불응하는 전범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명령을 앞두고 있었으나, 작년 7월 윤 정부의 요청으로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주제발표는 대일 실무협상 책임자인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맡았다. 그의 발언을 종합하면, 피고인 전범 기업들이 강제집행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이미 자산을 빼내 한국 내에는 압류할 대상이 없어 현금화를 통해 대법원이 판결한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 또한 피고 전범 기업이 전체 강제징용 문제를 대표해 사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재원의 조성과 집행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익법인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맡는다. “새로운 재단이나 기금 설립에 드는절차와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서 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원고인 피해자 및 유가족을 찾아 수령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가 결단력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디면 일본도 여기에 호응해 발맞춰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으나 피해자 측은 싸늘했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3.1.12. 연합뉴스

피해자·시민단체 전범기업 뺀 굴욕적 해법 반대

일본 전범 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원하는 피해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대위변제 등은 본질을 호도하는 왜곡된 프레임이라면서 정부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더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어 “ (일본의) 사후 기금 출연을 담보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피해자 측이 반대하는 안을 굳이 지금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따지기도 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전국민중행동·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해법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한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하고 사법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굴욕적 해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보이콧도 있었다. 토론회를 하루 앞둔 11일 광주에서 활동하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대리인단은 성명을 내고 외교부가 전날까지 정부의 해법을 담은 주제 발표문을 주지 않은 것에 반발해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외교부 행태는 당사자인 피해자 측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는 것이라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 실현 문제이자 국익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를 무엇에 쫓기듯 이렇게 날림으로 치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윤 정부를 몰아세웠다.

 

 12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자서전을 들며 징용토론회 불참 의견을 밝히고 있다.2023.1.12. 연합뉴스

정부 일본 맞춤 해법강행 때 후폭풍 거셀 듯

토론에 참가했던 강제징용 피해자 측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요식행위였다고 일제히 비판하는 한편, 설 이후 국민 공론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과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대표 등은 기자들과 만나 토론회 분위기를 전했다. 사전에 토론회 자료도 받지 못했고 발언 시간이  1인당 5~10분 정도로 제한됐으며, 답변에 대한 재질문 기회도 없었다는 게 그들의 전언이다. “기본조차 안 된” “요식 행위에 불과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윤 정부는 이번 토론회를 강제징용 해결 방안 발표을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의견 수렴 절차로 봤던 것 같다.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사후 합동브리핑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그런 뜻을 내비쳤다. “다음 단계는 그간 수렴한 의견 등을 반영하여 정부가 속도감과 책임감을 갖고 해법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서 국장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토론회 이후 외교부는 공개된 방안이 최종은 아니라고 했지만, 추가 변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쓰노 일본 관방장관.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윤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 공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직접 논평은 삼갔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쌓아온 우호 협력관계의 기반을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으로선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발표하면서 강제징용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 정부가 이러한 일본 맞춤형 해법을 강행할 경우 후폭풍은 자못 거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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