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월호 다큐 '침몰 10년, 제로썸' 윤솔지 감독
세월호 희생자가 된 제자 여동생 보고 제작 결심해
세월호 10년 총망라…울지 않으려 덤덤하게 표현
극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어느덧 관객 1만여명 달성
정치적 이익에 반한다며 인터뷰 거절한 정치인들
생존 선원인 조준기 씨 일관되게 외력설 주장해
영화 만든다는 이유로 10년 간 정보기관 사찰도
어려울 때마다 아이들이 도와줄 거란 믿음에 버텨
"시민이 만든 다큐영화로 남길…사회 변화도 바라"
"봄이 되면 숨이 안 쉬어집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왜 죽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밝혀줘야 합니다."
2014년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영화 속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책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침몰 10년, 제로썸' 윤솔지 감독은 영화에서 사고 원인으로 외력설(외부충돌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음모론자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7000여 개의 음성 파일과 당시 조타수와 잠수사, 생존자들의 풍부한 증언 등으로 관련 정황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일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해 난관에 부딪혔으나, 예술인들의 권익 보호와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과 1500여 명 시민들이 배급위원을 구성해 배급 비용을 마련했고 공동체 상영 형식으로만 상영되고 있다. 현재 누적 관객 수는 독립영화 흥행의 상징인 1만여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10여 년간 정보기관 사찰에 시달려야 했고 암이라는 병마와도 싸워야 했다. 심지어 개봉 과정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가 기각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지난 14일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윤 감독을 만나 영화 제작 과정과 세월호라는 논란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눴다.
희생자 된 제자 여동생 보고 제작 결심
독립영화 흥행 관객 수 '1만여 명' 달성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나요?
"런던에서 공부를 하다가 IMF(외환 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학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사교육 쪽에서 일도 하고 <오마이뉴스>에서 시민 기자도 했습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시민 기자로 글을 계속 쓰니까 음악 영상도 찍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다큐멘터리 제작일을 하면서 2013년 아르바이트로 안산 디지털 미디어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는데 2014년 제가 가르치던 학생의 여동생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가 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독립영화 흥행 관객수인 누적 관객수 1만여 명을 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주 국제 영화제에 초청 됐을 때 사람들이 이젠 잘될 거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아무 배급사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 상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분들이 찾아와서 영화를 보시고 이건 알려야 한다며 전국 시민 배급위원회를 만들어 1500만 원을 모금해 주셔서 상영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4월 2일에 전국 동시 개봉을 하는데 독립영화가 개봉 전에 관객수 5000명이 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흥행이라는 기준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민분들께서 관객석을 꽉 채워주시는 것이 한 줄기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작비 마련과 홍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개봉할 때 저작권 구입비와 후반부 작업 비용이 하나도 없어서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친구들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돈을 모아줘서 해결하기도 했고 이후에 텀블벅으로 3000만 원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영화에서 인터뷰 한 사람들을 흑백으로 처리한 이유도 카메라를 다르게 쓰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어요. 영화 홍보를 하고 싶어도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받아 주지 않았고 정말 열악한 조건이었습니다."
정치적 이익 반한다며 인터뷰 거절한 정치인
생존 선원 조준기 씨 일관되게 외력설 주장
-많은 인터뷰 장면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인터뷰만 4년 정도 했는데 정치적인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거절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흔히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도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외력설(외부 물체와의 충돌설)과 내인설(내부 결함을 충돌 원인으로 주장)을 주장하는 두 부류로 나뉘어졌어요. 세월호 진상 규명 청문회에서 맹활약했던 민주당 전 국회의원도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에 대한 집회를 했었는데 현 민주당 어떤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문제 해결 안 할 리가 없다. 내가 책임지겠으니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도 말을 했습니다."
-세월호 선원 중 유일하게 조타수 조준기 씨가 영화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더라고요.
"당시에는 외력설을 입증할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고 원인을 조타수였던 조준기 씨에게 떠넘겨 5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사회적 참사특별위원회 재판 진술서에 써 있는 조준기 씨 전화번호를 입수해 문자와 전화로 명예 회복을 하자고 계속 설득했습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조준기 씨가 첫 청문회부터 계속 외력설을 주장한 진술의 일관성입니다. 사고 당시 세월호 내에 '기관장은 좌측 하단으로 나오세요'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저는 그 방송을 한 사람은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기관실과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원들이 전원 구조 됐거든요."
-정치권에 증언을 요청한 적은 없나요?
"문재인 정권 당시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사건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민주당 김모 전 의원은 처음부터 외력설을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인터뷰하려고 이 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내고 그분 보좌관이 제 지인과 친해서 지인에게 부탁도 해봤지만 문재인 정부를 욕되게 할 수가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당시에 조사국에서 조사 위원회에 서류를 올려보내면 조사위원회에서는 정무적인 판단만으로 계속 조금만 기다리라며 기각을 했습니다. 진실을 얘기해도 항상 정무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울지 않는 영화 만들려 담담하게 표현
세월호 발생 '10년'을 총망라한 영화
-극적인 느낌보다는 담담하고 차분한 느낌의 영화였는데 의도한 것인가요?
"못된 마음이지만 시민들께서 트라우마 때문에 볼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게 좀 싫었어요.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절대 울지 않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담담하게 조금은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생전에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이 유일하게 제 감정선이 담긴 부분입니다."
-기존 세월호 영화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최덕문, 박원상 배우가 출연한 '목화솜 피는 날', 설경구, 전도연 배우가 출연한 '생일'과 같은 극영화가 있고, '그날 바다' '다이빙 벨'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 외에는 희생자 부모님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있습니다. 제로썸은 '극저예산 영화일지언정 증언이나 자료들을 다 들여다보고 제일 의문이 남는 것에 중점을 두자'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발생 이후 10년을 총망라해서 정리하는 개념이라고 할까요? 당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있었는데 진상 규명 발표 뒤 해체가 됐습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자료와 사람들이 요청한 자료 이외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자료에 충실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MZ세대 관객들이 많았다면서요?
"2014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의문은 가지고 있었지만 정부나 방송, 신문에서 아니라고 하면 그걸 그냥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는 오래된 배였고 선장이나 해경이 무능해서 사고가 났겠지'라고 생각했지만 MZ들은 그런 고정관념이 없는 아주 깨끗한 시각으로 냉정하게 보더라고요. 자신들이 뭘 해야 될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까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제로썸 홈페이지도 만들어주고 '전 국민이 제로썸을 보는 날까지 청년 모임'도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3번이나 상영회를 한 24살 청년도 있습니다."
-영화 제목을 왜 '제로썸'이라고 정했나요?
"원래 제로썸은 경제학 용어로 한쪽의 이득이 다른 쪽의 손실로 정확히 상쇄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실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나서도 제목을 못 정해서 무제로 냈어요. 제목을 정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650만 국민들의 서명과 국민의 염원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가 행동했지만 정치권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건이 덮여버렸기 때문에 '침몰 10년, 제로썸'이라는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10년 간 정보기관으로부터 사찰도…
아이들이 도와줄 거란 믿음으로 버텨
-세월호 참사에 계속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의 매일 세월호에 관한 생각을 하며 자료를 모았습니다. 저는 어떤 일에 집중하면 끝을 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이 안 됐는데 이렇게 끝내면 매듭을 못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호 사건 당시 가르치던 학생의 여동생이 세월호 사건 희생자여서 안산에 있는 한도 병원 장례식장에 갔었는데 조문객 대부분이 어른들이 아니라 학생들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장례식장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간 사찰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2014년 당시 친구가 일본 니케이신문 기자였는데 그 친구가 AIS 항적도(선박자동식별장치) 실물을 일본으로 가져가서 조작인지 밝히려고 했어요. AIS 항적도를 안산에서 받아서 지하철을 타고 와서 사당역에서 내려서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께 신대방에서 내려달라고만 했는데 갑자기 신대방에서 세우지 않고 집이 있는 쪽으로 차를 돌리더니 '여기서 좌회전이죠?'라고 하면서 '선생님,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요?'라고 하더라고요.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입니다. 또 2018년에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을 두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더니 휴대폰 내부 저장 SD 카드에 있던 사진이 다 없어진 거예요. 분실하고 4주 정도 지나고 전화가 왔는데 제 SD 카드를 잠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주웠다고 하는겁니다. SD 카드만 보고 어떻게 제 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걸까요? 전화한 사람은 '윤솔지 씨 맞죠? 왜 이렇게 어렵게 사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살고 있던 빌라에 누가 돌을 던져서 통유리가 다 깨지는 일도 있었고 지난 11월 개봉 전에는 텔레그램 해킹도 당하고 20년 동안 쓴 제 이메일이 삭제 당하고 유튜브 접근도 금지되는 등 이해가 안가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힘들 때는 어떻게 버티셨나요?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소식이 없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세월호 영화 제작은 이제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힘들 때마다 아이들이 꼭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소식이 없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초청 발표 전날 밤에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부터는 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아도 더 이상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마다 뭔가 모를 힘이 느껴졌어요."
세월호 진상 규명 위한 디딤돌 됐으면
올해 말 인혁당 관련 영화도 개봉 예정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자꾸 세월호 사건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해 당시 일어났던 사실과 객관적인 위치에서 설득력 있게 문제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생각을 제가 10년 동안 노력해 온 것으로 증명하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반향을 일으켜 세월호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4월 2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전국 동시 개봉을 합니다. 관객 점유율이 40%가 되면 계속 상영을 할 수 있고 점유율이 저조하면 일주일 안에 내릴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제로썸 상영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20살 런던에서 유학할 때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인혁당 사건을 알리려고 문정현 신부님께서 오셔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이후 인혁당 사건을 마음에 오랫동안 담고 있었는데 작년에 인혁당 사건 마지막 생존자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지금 인혁당 관련 영화 작업도 하고 있는데 올해 말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무사히 개봉을 한 심정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감독은 "제로썸이라는 영화는 모든 걸 시민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모두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노력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 감독은 "최근 몇 년 동안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렇게 반응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고 해요. 한 가지 바람은 이번 영화가 반향을 일으켜서 국회에서 입법이 되거나 차기 정부에서 진상 규명 약속을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보다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도움을 준 모든 분들의 노고가 시민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윤솔지 감독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국민은행 822401 - 04 - 181881 < 제작사 네번째달 >
침몰 10년 제로썸 티저 영상. 2025.3.18. 제작사 네번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