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패배자는 미국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의 진단

러, 경제제재 버텨낸 반면 동맹국은 깊은 상처

미국은 우크라에 공급할 무기도 생산 못해

왜냐? 청교도주의 죽음 탓 기술자 숙련공 없어

그들의 번영은 달러와 외국 산업 노동력 덕

합법적으로 외국의 재산 빼앗는 일 드물지 않아

2025-02-26     한승동 에디터
프랑스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   아사히신문 2월 26일

인구동태와 가족구조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사회분석을 계속해 온 프랑스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74)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패배자는 미국”이라고 했다.

경제제재 실패-유럽이 더 깊은 상처

“우리는 지금 세계사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매우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하고 있다. 정치적인 여론조작과 심리적인 작전 때문에 아직 명확하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으나, 사실상의 패배자는 미국이다.”

토드는 26일 <아사히신문>이 내보낸 인터뷰 기사에서, 미국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손잡고 종전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상 러시아와 미국의 전쟁이었으니 당연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1953년 7월에 체결한 6.25전쟁 정전(휴전)협정의 주역이 미국과 중국(소련)이었던 것과 닮았다. 학계 일부에서는 6.25전쟁을 '미국-중국(소련) 전쟁'이라 부른다. 그 전쟁(6.25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와중에 남북한이 미국-러시아가 주역인 '그들의 전쟁'(우크라이나 전쟁)에 각기 무기 공급과 병력파견 등으로 읽혀 있다는 것도 너무 가혹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토드는 계속했다.

“미국이 주도한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실패했고, 러시아는 그것을 버텨냈다. (미국의) 동맹국인 독일 등의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 등으로)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2023년 우크라이나가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공세를 펼쳤으나, 미국이 지원한 그 군사작전이 실패한 것이 지금의 결과(패배)를 불렀다. 나는 이래야 한다거나 무엇이 정의라거나 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관점에서 얘기하고 있다.”

전쟁이 계속돼도 미국이 패배자라는 건 불변

<아사히>가 “25세 때 소련 붕괴를 예상했고,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미국 트럼프 정권 등장 등을 예측”했다고 소개한 토드는 미국 러시아가 종전협상을 서두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난다고 선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는 아직 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25% 정도는 남아 있다며, “미국이 빠지더라도 유럽 나라들이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패배자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2월 25일 러시아의 드론이 키이우 지역 마을을 공격한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25.2.25. EPA 연합뉴스

토드는 지난해 출간한 자신의 책 <서양의 패배>(일본어판)가 미국이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라며, 프랑스와 일본에서 수만부씩 팔린 그 책이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에선 아직 번역하겠다는 얘기조차 없다며 이렇게 자찬했다.

“지금까지 많은 내 책이 영역됐다. 지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은 삼가야겠지만, 그것(영역되지 않은 것)은 이번 책이 영미권에 대해 얼마나 불쾌하게 핵심을 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 웅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으로서 그것을 “최고의 영예”로 받아들인다며, 다분히 나르시시스트적 면모를 보였지만, 미국사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석은 날카로워 보인다.

영유아 사망률, 미국이 러시아보다 높다

“앞서 영유아 사망률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영유아는 어느 지역에서나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다. 그런 만큼 각각의 사회상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표다. 그 영유아 사망률은 러시아에서는 2000년부터 급속히 개선됐고, 2020년에는 러시아보다 미국의 영유아 사망률이 더 높아졌다.”

미국은 프로테슽탄티즘이 죽어버린 ‘종교 제로’사회

“이번 전쟁을 기화로 막스 베버의 선례대로 기독교 그 중에서도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이 세계사에서 자본주의의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삼 생각했다. 말할 것도 없이, 성경 읽는 것을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식자율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의 질(수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현대의 미국은 예전과 같은 프로테스탄티즘의 나라가 아니다. 나는 미국이 ‘프로테스탄티즘 제로’ ‘종교 제로’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 경제,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 2월 11일 워싱턴 D.C의.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2025.2.11. 로이터 연합뉴스

허무적이고 퇴폐적인 데카당스 사회, 미국

토드는 베버가 분석한 16~19세기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지금의 미국 복음파 (보수종교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신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때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덕적 규율을 지켰다. 하지만 지금의 다수 미국인들에게 신은 전혀 다른 존재가 돼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신일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지금 트럼프 정권의 핵심인물 중 한 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는 세계 최대갑부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효율화서비스부 수장이자 갑부인 일론 머스크에 항의하는 시위자가 미국 의사당 밖에서 머스크를 묘사한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2025.2.25. 로이터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는 데카당스의 전형

“<서양의 패배>에서 자세히 분석한 것은 현대 미국은 ‘종교 제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사회는 허무적이고 퇴폐적인 사회가 됐다.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어떻게 보더라도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티즘 신앙을 토대로 살아간다고 할 수 없다. 퇴폐적인 데카당스(décadence)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도 전형적인 데카당스 그 자체라고 본다. 그는 기업가, 산업인으로서는 재능이 있고 일정한 업적도 쌓았지만, 정치수완은 의문이다. 오직 파괴만 초래할지도 모른다.”

미국 국내산업 재건, 기술자 순련공 부족으로 불가능

토드는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관련해, 국가의 필요에 따라 국경을 지키고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면서도 “트럼프의 보호주의정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관세로 외국 제품 반입을 막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국내에서 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국민은 행복해질 수 없다며, 미국은 그렇게 할 기반 자체가 무너진 상태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생산 공급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지만, 미국은 국내산업을 재건할 수 없는 상태다. 이제부터 100년 세월을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는 것이 내 분석이다. 왜냐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자와 숙련된 노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빈 자리에 미국은 한국 대만 등의 제조업 분야 대기업들의 자본과 기술, 노동력을 끌어들여 메우려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고문인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의 공동 대표인 알리스 바이델과 함께 널뛰기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수레가 25일 쾰른 카니발 위원회의 올해 카니발 수레 발표회에 등장했다. 2025.2.25. AFP 연합뉴스

미국의 ‘번영’은 달러와 외국 산업 및 노동력 의존

“미국은 번영하고 있고 주가도 높아 일부 미국인들은 아주 유복하다. 그러나 그것은 물건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달러라는 세계적인 통화를 발행하는 덕이다. 달러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거꾸로 중국을 비롯한 타국의 산업에 의존하게 됐고, 우수한 젊은이들은 (제조업이 아닌)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분야로 빠져나간다. 미국의 번영은 국외의 산업이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나대면 다쳐-조용히 처신하며 지켜보는 게 유리

토드는 또 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투자 얘기를 하면서 미국이 합법적으로 외국의 재산을 훔쳐가고 있다고 했다. “존 갤브레이스의 아들로, 그 자신도 뛰어난 경제학자인 제임스 갤브레이스 교수가 <포식하는 국가>(일본어본은 <거대제국 아메리카의 붕괴>)라는 책을 썼는데, 육식동물처럼 미국이라는 국가는 합법적으로 외국의 재산을 빼앗는 일이 드물지 않다.”

1997년 말 외환위기('IMF 사태')가 터졌을 때 기업, 종자 등 한국의 국가자산은 헐값에 무더기로 외국에 넘어갔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수 조원이 날아간 외환은행 매각과 '론스타'의 '먹튀' 소동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토드는 지금 굴욕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미국은 본래 소중한 존재로 대해야 할 약한 파트너 국가를 마치 남을 괴롭히는 악동 같은 태도로 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럴 때는 나대지 말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대립이 더욱 격화될지 모르는 시절에 가능한 한 대립에 관여하지 말고 자국 산업 시스템이나 잘 지키라는 것이다. “지정학적인 대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말고, 미국이 쇠퇴해 가는 이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돼 갈지 신중하게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게 해 준 얘긴데, 한국도 새겨 들을 만한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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